나잇값을 생각하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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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는 것까지 보게 된다.

이건 도대체 아이들 볼까 부끄러워서 뉴스를 틀을 수도, 신문을 넘길수도 없다.

60년 넘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저질러온 어처구니없고,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들을

지켜보다 보면 저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인생에서 무엇을 

배워가며 살아온 것일까..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나이 마흔 다섯을 넘기고 나서부터 부쩍 살아온 세월을 가늠해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은 곧 살아갈 세월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말과도 같다.

뭘 모르던 어린 날에는 마흔을 넘은 어른들이 대단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야말로 '어른'인 줄 알았다.

옳고 그런 것들, 중요하고 하찮은 것들, 소중하고 귀한 것들.. 다 구별하며 제대로

사는 줄 알았다. 어른들이란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다.

 

내가 그 나이에 이르고 보니 말짱 다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나이를 먹는 것이 지혜가 쌓이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못된 생각이 굳어지는

일이기 쉬웠다. 나이에 어울리는 지혜를 갖추고, 능력을 갖추고, 인격을 갖추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주는 선물도 있다.

직장에도 다녀보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려보고, 아이도 기르다 보면 경험에서

얻어지는 배움들이 생긴다. 더디더라도, 어렵더라도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내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들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깨끗한 동네에서 살기를 원하면 나부터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으면 나부터 아이들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가는 동안 하나 하나 배우게 되었다.

배운다고 배운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을때 적어도

부끄러움을 느끼게는 되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게 나이를 먹는 일 이었다.

나이답게,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했을때 적어도 부끄러워 하게 되는 것..

이게 어른이었다.

 

그런데 나라의 어른이란 사람은 나이를 무엇으로 먹었는가.

부끄러움이 없다. 그게 가장 나쁘다.

옳고 바른 일을 하기를 바라기보다 그저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보고

잘못했을때는 최소한 부끄러워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이란 아이보다도 못하다.

 

오랜만에 정성들여 밥상을 차렸다.

김치부터 쌈장까지, 상위에 오른 모든 반찬이 다 내가 만든 것이다.

김치를 친정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먹기 까지

45년쯤 걸린 것 같다. 그나마 나잇값을 하고 사는 것이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다. 이 나이에 느끼는 내 자부심이다.

 

나물 맛 하나, 콩나물 국 한가지 맛있게 만들기까지 수없는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다. 긴 시간을 들여 애쓰고 애써가며

이것 저것 궁리하고 노력해야 이만큼의 맛도 이끌어 내게 된다.

거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림하는 주부도 아는 진리다.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그것이 내것인양 주무르고, 향유하고

함부로 하던 사람들의 부끄러운 민낮이 만 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인생의 그 수많은 날들을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토록 많은 일을 겪어오면서도 끝내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고, 스스로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헤아리며 사는 일이

어른의 기본인데 그 사람들 누구도 이런 기본조차 익히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다.

아직도 어른이 못된, 아니 사람의 기본도 못 갖춘 존재들이다.

 

나이를 제대로 먹어가며 살아야 겠다.

나이보다 더 나은 존재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나잇값은 하고

살아야겠다.

47년을 살아온 내 삶도 겸손하게 되돌아 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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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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