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학부모회장!! 생생육아
2016.03.31 12:5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학부모회장되면.... 바쁘겠지.. 바빠지겠지...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이거, 진짜 바쁘다.
3월 개학하기 전부터 업무 인수인계가 시작되더니, 바로 교육청 연수에,
1년 활동 계획 수립에 정신이 없었다.
3월이 되고 본격적인 학사일정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학부모회도 덩달아 바빠졌다.
학부모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학부모 동아리 홍보 및 모집이 시작되었고
학부모 연수 1년 계획을 세우고 일정 잡고, 강사 섭외 하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6일엔 학부모 총회가 있었고,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1박 2일로 대의원 워크샵이
있었다. 29일엔 학부모 동아리장들 회의가 있었고 30일엔 1,2학년 학부모들 대상으로
교장 선생님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큰 일정들만 이렇지, 각각의 일정을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해서 학부모 회장인
나를 비롯, 부회장과 간사는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 회의를 가져야만 했다.
학부모 회장 앞으로 보내지는 공문들도 만만치 않다.
교육청이나 각 단체에서 주최하는 공모 사업이며 교육 연수들에 참여하라는
공문들이 수시로 오는데 검토하고, 의논해서 어디까지 참가할것인지를
결정하고, 각 공문이 요구하는 양식에 맞추어 준비하는게 보통 까다로운게 아니다.
다른 학교 학부모회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예 학교에서 다 결정해서 정해진 것만 내려보내주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는 학부모회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폭이 큰 편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참 좋지만 모든 자치에는]
그에 걸맞는 노력과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 매일 매일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다.
처음 시도해본 1박 2일 대의원 워크샵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혼을 쏙 빼 놓았던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 있었던 교장선생님과의 간담회는 순수하게 학부모회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혁신 학교에 대한 이해가 다양한 1.2학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교의 최고 운영자인
교장 선생님과 격 없는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자리였다.
특별히 이번 간담회는 5학년, 6학년, 혹은 자녀들을 이미 졸업시킨 경험이 있는
선배맘들 여섯명을 패널로 불러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궁금한 학교 생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터라 신경 쓸 게 많았다.
세 아이 깨워서 샌드위치 만들어 먹이고 큰 아이 먼저 전철역까지 태워다 주고
집에 와서 두 딸들 준비를 시키는데 제일 바쁜날 꼭 말썽 부리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일곱살 막내가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도 간담회 때문에 서둘러 준비해서 아이들과 같이 등교를 해야 하는데
이룸이 옷이 도무지 결정이 안된다. 이럴땐 정말 아이의 의견이고 뭐고
꽥 소리 질러 상황을 정리할 수 밖에 없다.
거실의 이부자리도 못 개키고 사방에 입고 벗은 옷가지들이 널려 있고
식탁은 네 식구 아침 먹은 흔적이 고스란한데 아무거도 정리 못하고
널을 뛰듯 목욕탕과 안방을 오가며 씻고, 입고, 챙겨서 나왔다.
두 아이들을 각 교실로 넣어 놓고 학부모 임원들을 만나 간담회
준비를 하는데 학교를 들어올때 갈아 신을 실내화들이며, 음료며
패널들 이름표며, 자리 배치며 간담회 한시간전까지 할 일들이 정신 없었다.
학부모들이 도착하고 패널들이 자리를 잡고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보고, 중간 중간 질문을 받고, 너무 길게 이어지는 답변들은 적절히
개입해서 정리도 하며 2시간 넘게 이어졌다.
학기초답게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문제, 혁신학교가 학력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들, 학교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폭력에 대한 방안들, 고학년들의 공부와 중학교 진학 후의 모습 등
참여한 부모들의 열정과 답해주는 선배맘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허물없이 친근하게, 그러나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학부모들을 대해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학기말에 어떻게 변화되어 수렴되는지 방학전에
한 번 더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고 행사를 마쳤다.
허위허위 돌아와 집안을 치우고 윗밭에서 강낭콩을 심고 계시는 친정 엄마와
농사계획도 세워보고, 네 마리 개들에게 물을 부어주고, 닭장에서 알을 거둬왔다.
내가 정말, 학부모 회장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고 몸이 바쁜데
농사철은 이미 왔고, 개들은 매일 아우성이고, 수탉들간의 서열경쟁이 시작된
닭장은 바람 잘 날이 없는데다 본격적으로 암탉들이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사료도 푹푹 줄어가니 농협자재창고를 드나들며 사료 사오기도 벅차다.
이번주 금요일엔 임원단들과 교장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 자리가 있다는데
내가 우아한 곳에서 맛난 밥 얻어 먹는 동안 우리 세 아이 저녁은 누가
차려주나.
열살, 열 네살 두 아이는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으라고 하면 되는데
매운 라면 못 먹는 막내 저녁은 어떻하나. 친구네 집에 가는 것도 싫다하니
어쩔 수없이 모임 장소에에 데리고 가게 생겼다.
4월엔 독서대전도 있고, 5월초에 있을 운동회 준비도 들어가야 하고
학부모 연수도 있구나.. 아이고...
슬슬 꽃망울이 터지는 봄 날, 세 아이 모두 학교에 보내 놓고나면 느긋하게
영화도 보러 가고, 시내에 옷 구경도 하러 가고 싶은데, 친정 언니가
극구 추천하는 대치동 주노 미용실 원장에게 커트도 받으러 가고 싶은데
(언니 말에 의하면 47년째 못 찾고 있는 내 머리 스타일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거란다)
도무지 시간이 없다.
아침에 열어본 공문은 두 건 다 월요일까지 마감인데 의논하고 작성할 틈도 없겠다.
잡지사에 원고도 보내야 하고, 출판사와 계약한 내 두번째 책 준비도 슬슬 들어가야 하는데
회장님이 하실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내 스마트폰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신속하게 확인하고 처리하는 것도 서툴러서 매 순간 낮설어지는 내 폰만 탓하고 있는
지경이다. ㅠㅠ
올 해 바쁘게 열심히 살고나면 내년엔 정말 안식년이라도 가져야지... 싶지만
내년엔 막내가 입학을 하게 되니, 다시 1학년 엄마가 되어 바쁘겠지.
이게 내 삶이다.
내 친구가 사위를 봤다는 연락을 해 오는데 도무지 나이들 틈이 없는 일상 말이다.
그나저나 친정 언니들은 나만 보면 한숨이다.
학부모회장이 옷이 그게 뭐냐, 머리가 그게 뭐냐, 생얼이 왠 말이냐...
청담동 며느리 패션은 인터넷 검색하면 바로 뜨는데, 학부모 회장 패션도
따로 있나? 있으면 뭐하나.. 매일 머리 감는 것도 귀찮은 내가 회장다운 옷 차림 따위
신경쓸 마음도 없으면서...
매일 운동화에 헐렁한 바지 입고 아이들과 열심히 같이 등교하며 학교일을 하는거다.
엄마들과 재미나게 동아리도 하고, 학교일에 더 많은 학부모들이 몸과 마음을 내게
하는 일에 골몰하다보면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구성원들 모두 조금 더 행복해질테니
나이를 잊고 1년 동안 열심히 뛰어야지.
바쁘다, 바뻐, 학부모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