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밥상 생생육아

내 밥상.jpg

 

갑자기 놀러온 딸 아이 친구까지 아이 세 명의 점심으로 급하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동안 내가 먹을 점심을 준비했다.

우선 마른 홍합 한 줌을 물에 넣어 불렸다.

미역도 한 줌 불렸다.

냄비에 멸치 다시 국물을 끓이는 동안 미역과 홍합은 부드럽게 불려졌다.

마른 홍합을 넣은 미역들깨국을 끓이려는 것이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일이 올 해는 몸 여기 저기 이상 신호로 찾아온다.

없던 통증도 생기고, 조금씩 불편해지는 곳도 나타나고,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몸의

이곳 저곳들이 저를 돌아보라고 내게 신호를 보내는 기분이다.

 

날은 춥다. 아주 춥다.

춥고 컨디션도 별로인 날, 아이들은 다 먹고 나 혼자 먹으면 되는 점심..

평소같으면 그냥 애들 먹였던 음식, 조금 더 해서 간단히 먹고 말았겠지만

나는 아픈 나에게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역국이다.

 

아이 낳고 먹었던 미역국..

생일이면 먹었던 미역국..

왠지 미역국을 생각하면 애틋해진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음식이랄까.

 

잘 우러난 멸치다시 국물을 다른 곳에 옮겨 놓고 그 냄비에

들기름과 다진 마늘, 그리고 불려진 미역과 홍합을 넣고, 홍합 우린 국물을

조금 넣어 달달 볶았다.

맛국물과 나머지 홍합 국물을 다 넣고 뭉근하게 오래 오래 끓였다.

국간장 조금, 액젓 조금 넣고 간을 맞추면서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었다.

그래도  싱거우면 마지막 간은 천일염 조금이다.

 

진하고 구수한 냄새가 부엌에 퍼진다.

먹지 않아도 벌써 힘이 나는 냄새다.

 

내 밥상3.jpg

 

현미잡곡밥과 미역국, 깍두기와 구운 파래김, 간장..

내 점심이다.

너무 간소한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주 충분한 밥상이다.

나는 혼자 앉아 천천히 따듯한 국물을 떠 넣는다.

맛있다.

맛있다.

 

점심시간은 훨씬 지나 있었다.

아이 키우는 동안 얼마나 자주 늦은 점심을 혼자 먹었던가.

매달리는 애를 업고 허겁지겁 부엌에 서서 밥 몇 술 입에 흘려 넣던 날들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 돌보느라 널뛰듯 살때는 그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수만 있으면 하고

바래기도 했었지.

어느새 그 세월이 지나갔다.

이젠 바쁘긴 해도 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먼저 먹고  나서 나 혼자 느긋하게 따로 먹는 것도 좋다.

 

전에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먹는 것에 더 소홀해지곤 했었다.

내가 해 먹는 것도 괜히 속상하고, 더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힘들기도 했고

밥이야 대충 먹고 쉬는 것이 더 좋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젠 몸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나한테 잘 해 주고 싶어진다.

우선 좋은 음식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이젠 좋은 음식이 뭔지 안다.

제대로 된 재료로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음식이다.

화려한 반찬이 많은 밥상보다 제대론 만든 한그릇 음식이 있는 밥상이 더 좋다.

 

산, 들, 바다가 모드 들어있는 한 그릇의 국..

들판의 모든 정성이 가득한 밥

잘 익은 김치

그리고 계절의 냄새가 그대로 담겨 있는 마른 김

간장.

 

완벽한 밥상이다.

 

천천히, 맛있게 , 감사하게 다 먹었다.

먹는 그대로 내 살이 되고 영혼이 되는 것 같은 음식들이다.

간장을 제외한 모든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새 기운이 차오른다.

 

아프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내 몸을 더 잘 살피게 되고, 내 일상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한다.

필요한 보살핌을 잘 주어야지.

잘 아프고, 잘 나아야지.

 

오래 애써온 나에게 이젠 정말 잘해주고 싶다.

자주 이렇게 나만을 위한 밥상에 정성을 들이면서 말이다.

 

 

 

 

Leave Comments


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Recen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