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섯, 기타와 바람나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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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다섯이나 있던 친정에서 자라면서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오는 동안

주변에 기타치는 사람을 볼 기회가 드믈었다.

90년대에 대학은 통기타를 치는 낭만따위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차라리 풍물패가 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랬던 내가 기타를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교수님들의 부르심으로 과의 실험실 조교로 일하게 되었을 때 였다.

실험실 한 구석에 낡은 기타가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구것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타였다.

아마도 오래전에 어떤 선배가 치다가 그대로 두고 졸업을 한 후 그곳에

오래 방치된 듯 했다.

 

실험실 조교라는 자리는 그닥 바쁘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기타를 만지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기타 교본을 빌려서 코드 하나씩 서툴게 익혀 가던 어느날,

아마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을 것이다.

신학교에서 사제가 될 과정을 밟다가 늦깎이로 대학원에 들어온

남학생이 있었다. 학부생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았던 그는 시간이 나면

자주 실험실에 놀러오곤 하였다.

그날도 기타를 안고 퉁겨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실험실에 들어와

나를 보더니 잠시 기타를 자기가 쳐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선선히 건네주었더니 그는 잠시 현을 고르더니 깜짝 놀랄만큼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곡은 'Rain drops' 낙숫물'이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듯

맑고 경쾌한 곡이었다.

 

어떻게 연주사는 거냐고, 나 좀 가르쳐 달라고....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기타를 좋아했고,  나중에는 기타를 가르치던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낙숫물'이라는 곡을 배웠고, 그 후에 몇 곡의 곡을 더 배우는 동안

우린 깊어졌고, 내 집착도 같이 깊어지다가 그 사람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함께 기타를 치던 아름다운 추억도 있었으나 힘든 시간이 더 많았던 연애였다.

 

그 사람을 잊으면서 기타도 잊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의 어느 비내리는 주말, 늘 가던 인사동

골목을 접어들다가 입구에 있던 '삼익 악기사' 진열대에 놓인 기타들을

보게 되었다. 그냥 구경이나 할까 매장에 들어갔다가 나올때에는

기타 하나를 안고 있었다.

장미목으로 만든 클래식 기타였다.

매장 직원이 잠시 연주를 해 주었는데 가슴이 철렁할 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났고, 오래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가난한 사회복지사의 월급으로 그 시절 15만원짜리 기타는 비싼 물건이었지만

할부로 갚아 가면서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기타는 다시 잊혀 졌다.

장미목 기타는 오래 먼지에 쌓여 있다가 이따금 아이들 장난감으로 만져지곤 했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늘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바쁘고 고단했다.

올해 여섯살된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하루  여섯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게 되자 나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든 마을 조합일에 열심을 다 했다.

조합에서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기타교실에서 강사를 맡아 주셨던

선생님과 인연이 되었고, 그 분이 마을 노래모임을 조직하게 되었을때

기꺼이 회원이 되었다.

마을 노래 모임은 처음엔 노래만 하다가 지난 9월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모임으로 바뀌어 일주일에 한 번 두시간씩 기타를 배우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마흔을 넘긴 중년 회원들과 가르치는 재능이 뛰어난 선생님과의

만남은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나누는 장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찌감치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남편 저녁상을 봐 놓고

마을 공간에 가서 배우는 기타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오래 잊고 있었던 기타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무럭 무럭 샘솟아

바쁘고 고단한 일상속에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었다.

실력도 쑥 쑥 늘었다.

 

지난 10월 늦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엄마, 부모들을 위한 안내서를

기획한 한 출판사로부터 장시간의 인터뷰를 한 댓가로 제법 두둑한 인터뷰료를

받게 되었을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맘에 두고 있던 고가의 기타를 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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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울림이 좋은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고급 기타였다.

첫 책을 내고 받은 인세로 야마하 중고 피아노를 사들였던 이후

내가 모은 돈으로 장만한 두번째 악기가 된 셈이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배워서 평생 친구로 삼을 생각으로 장만한 기타다.

고급 케이스에서 조심스럽게 기타를 꺼내 품에 안고 현을 퉁길때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진다.

 

명품백이나 의류, 악세사리 따위엔 평생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도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은 중고 가게에서 건진 2만원짜리 가죽가방이지만

아주 만족하며 쓰고 있다.

그러나 악기는 기왕이면 좋은 것으로 잘 배우자는 마음이다.

좋은 기타가 생긴 후에 기타를 배우는 시간과 연습하는 시간에 더 공을 들이게

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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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쯤 되고 보니 무엇이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귀하고 고맙다.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상황이 안되거나, 아이들이 어리거나, 좋은 선생님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없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유들로 어려운 날들을 오래

살아왔다.

이제 마을에 공간이 생겼고, 같이 배우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재능과 열정이 뛰어난 선생님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말 사람에게 진정한 배움은 마흔부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나이, 나를 위해 투자할 생활의 여유도 있고

시간의 귀함도 아는 나이가 되니 어떤 것을 배워도 진심이 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흔 여섯이 되어서야 오래 마음에 품고 있던 기타를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무엇을 배우는데 늦은 나이란 없다.

이 나이에 기타를 배워서 무얼 하겠냐고 물을지 모르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시간의 행복은 비할데가 없다.

가끔 우쿨렐레를 배우는 큰 딸과 협연도 한다. 어떤날은 아들의 오카리나 연주도

더해지고 막내의 명랑한 노랫소리도 함께 한다.

기타 치는 엄마와 세 아이들의 연주와 노래가 어울리는 시간은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내 나이 언제든 새로 도전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에 눈을 반짝이고 몸을 기울이며

살고 싶다. 지금은 기타지만 언젠가 스킨스쿠버가 될 수 도, 첼로가 될 수 도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산다는 것... 멋지지 않은가.

 

지금 나는 기타와 사랑에 빠져있다.

중년의 아줌마에겐 아주 근사한 바람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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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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