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 죽음을 돌보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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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고 예절교육을 받으러 가는 여섯살 막내와 둘째를 학교 근처까지

태워다 주고 큰 길로 돌아 오는 길이었다.

도로 앞 쪽에 뭔가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검은 비닐봉지인 줄 알았다. 가까와지면서 비닐봉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였던 것이다.

천천히 그 옆으로 돌아가면서 살펴 보았다. 토끼인가? 까만 강아지인가?

 

우리집 쪽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는 차들이 쌩쌩 다니는 그런 도로가 아니었다.

저수지를 지나 고개 넘어 마을로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저수지 근처에 식당이 늘면서 외지인들의 출입이 잦아지고 있는데 아마 어떤

운전자가 급하게 차를 몰다가 길을 건너던 동물을 못 보았던 모양이다.

백 미러로 멀어져가는 검은 형체를 바라보는데 마음이 급해져왔다.

그대로 두면 큰 차가 지나가면서 사체가 엉망으로 훼손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홉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큰 아이가 집에 있었다.

"필규야.. 할 일이 있어. 길가에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가 있는데 그대로 두면

다른 차들이 그 위로 지나갈지도 몰라. 우리가 치워주자"

" 네 엄마.. 뭘 준비할까요?"

".. 장갑 하고... 삽, 삽도 가져가자. 삽 위에 올려서 적당한 곳에 묻어 주자"

필규는 재빠르게 준비하고 삽을 챙겨 차에 올랐다.

 

2년 전쯤 역시 동네의 다른 길가에서 로드킬 당한 아기 고양이를 보고

내게 잠시 차를 세워줄것을 부탁했던 큰 아이였다.

왜 그러나 했더니 아기 고양이를 풀 숲에라도 옮겨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두면 큰 차들이 아기 고양이 위로 지나갈지도 몰라요. 그럼 안되잖아요"

나는 차를 잠시 멈추었고 필규가 내려서 죽은 아기 고양이를 살그머니 들어

풀숲에 내려 놓는 것을 두 여동생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오빠야.. 아기 고양이가 정말 좋아하겠다"

"그럼.. 오빠가 구해준거지. 아기 고양이 영혼은 하늘나라도 잘 갔을꺼야"

두 여동생들은 이런 말을 하며 다행스러워 했다.

그날.. 나는 내 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지나치며 불쌍하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사체를 잘 치워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차를 몰아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사체는 그대로 있었다. 승용차 한대가 옆으로 돌아 지나가더니

그 다음에 오는 큰 탑차는 신경도 안 쓰고 그 위를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차가 커서 사체는 온전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차들이 늘어날 것이다.

빨리 치워야 했다.

 

"고양이네요."

필규가 담담하게 말했다.

머리를 부딛친 듯 정수리에 상처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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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낀 손으로 살그머니 들어 삽 위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삽을 들고 찻 길을 벗어났다.

잠시 보도블럭 위에 두고 묻어 줄 곳을 찾아 보았으나 길가는 호박이 심어져 있었고

그 아래는 다들 농사를 짓는 텃밭과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눈에  띄는 곳에 그냥 두고 오면 사체가 부페하면서 역겨운 장면이 연출될 위험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길 안쪽 나무 아래 마른 풀이 베어 쌓아 둔  곳이 있었다.

풀을 걷고 그 안에 고양이를 살그머니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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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풀을 충분히 덮어 주었더니 고양이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졌다.

딱히 사람들 손이 타는 곳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파헤쳐질 까닭도 없는 곳이다.

고양이는 그 안에서 천천히 천천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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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위엔 희미한 핏자국만 남았다.

필규와 나는 학교로 향했다.

마을버스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천천히 운전을 했다.

 

"엄마는 운전을 하게 되면서 엄마가 운전하는 차가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생기는 것이 제일 무서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

사람은 물론 말할것도 없지만 동물들도 마찬가지야.

내겐 편안한 이동수단이지만 잘못하면 생명을 죽일수도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운전할때마다 생각하지.  그러니까 정말 조심스럽게 되도록이면

서두르지 않고 운전을 잘 해야 하는데.. 가끔 엄마도 급하게 서두를 때가 있더라.

아마 그 고양이를 죽인 운전자도 그랬을꺼야.

한적한 도로니까 일부러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따른 일에 신경쓰다가 길을 건너는 동물을 못 알아차렸을 수도 있고..

그래도 만약 자기가 죽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내려서 최소한 길가에라도

치워웠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죽은 것도 가여운데 그 위를 다른 차들이 지나간다는 것은.. 너무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니까..

 

그나저나 고양이가 오래 오래 너를 지켜주겠다. 잘 보내주었으니까.."

 

이렇게만 할했지만 니가 이런 일에 선뜻 나서주는 아이라서 참 기뻐..

라는 말도 마음으로 함께 건네고 있었다.

 

시골에서 사는 일은 일상속에서 죽음을 마딱뜨리는 일이었다.

앞 집 암캐가 낳은 새끼들이 얼어 죽어서 마음 아파 하고, 뒷 집 개가

쥐약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산책하는 길가 화단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딱따꾸리를 만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의 첫 개가 죽었을때 필규는 윗 밭에 묻어주고 매일 꽃다발을 놓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길가에서 주워온 아기새가 다음날 죽었을때는 주저앉을만큼 많이

울었다.

우체통에서 자라던 아기 딱새가 죽었을때도 누구보다 정성스런 무덤을 만들어 준

것도 필규였다.

기르던 닭들이 죽을때마다 뒷 마당에 필규가 만든 무덤들이 늘어났다.

그 모든 죽음들을 필규는 기억하고 있다. 2년전에 풀숲으로 옮겨 주었던 아기 고양이들도

물론 잊지 않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들여다보고 잘 돌보는 법을 터득하는 동안

필규는 아홉살에서 열 세살 큰 아이로 자라났다.

게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빨리 졸업해서 스마트폰 선물을 받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약하고 가여운 것들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은 고스란히

살아있는 아이인것이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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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필규네 반, 반모임이 있어 저녁때 찾아갔던 교실..

칠판 구석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는지 매일 매일 숫자를 지우고

새로 적는 아이가 필규라는 말을 선생님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울컥했었다.

9월 반모임이 있었던 어제 칠판에는 기울어가는 배 옆에 노란 리본.. 그리고 523일이란 숫자

가 적혀 있었다. 매일 매일 하루가 지날때마다 새로 지우고 적어가는 필규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가 하라는 말도 안 했는데 어느날부터 칠판 한쪽에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아들.. 그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흐르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날짜를 적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필규는

".. 그냥이요"라고만 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이었던 올 해 4월 16일부터 적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자주 잊고 있었는데 너는 매일 기억하고 있었구나.

사실 그 죽음들을 기억해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데 너는

묵묵히 숫자를 새로 적어가면서 너 자신은 물론 선생님과 모든 친구들에게

매일 새롭게 세월호를 기억시키고 있었구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자주 부딛치고 실망하는 날들이었지만

어쩌면 내가 매달리는 것은 너무나 사소한 내 욕심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열세살 사내아이에게 죽음을 돌볼줄 아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크고 가슴 아픈 죽음이나 길가에서 일어난 작은 죽음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래.. 그래.. 그런 마음이 있으면 충분하지..

그럼 마음 품고 살수 있으면 되는거지.

 

문득 눈  앞이 환해진다.

 

다시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마음 여미는 가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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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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