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하는 작은 학교 운동회 생생육아
2015.05.14 14:3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5월은 바야흐로 행사의 달이다.
각족 체험학습, 소풍,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체육대회며 운동회가 이 달에 다 몰려있다.
5월 1일은 둘째 윤정이와 막내 이룸이의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전엔 운동회를 하고, 오후엔 장터를 하며 하루 종일 신나게 노는 날이었다.
지난해엔 평일 오전에만 잠깐 운동회를 하고 끝나서 서운했었는데, 새 교장선생님이
오신 후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아빠들도 올 수 있는 날로 바꾸고
오전, 오후 하루 종일 즐기는 운동회로 바뀌었다.
운동회 전날엔 엄마들이 모여 행사장을 꾸미는 일을 도왔다.
교사들과 함께 만국기를 달고 운동장 곳곳에 십여개의 행사용 텐트를 치는 일을 도왔더니
운동회 하기도 전에 어깨가 뻐근했다.
날은 좋았다.
2학년인 윤정이도 신나했지만 이번 운동회가 처음인 이룸이는 며칠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어했다.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체조도 하고, 달리기를 할 생각에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모른다. 나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막내가 운동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병설유치원 6세반 제일 앞줄에 선 이룸이는 어찌나 체조를 잘 따라하는지
지켜보는 남편도 입을 다물줄 몰랐다.
한눈 안 파는 것만해도 기특한데 동작도 정확하고 순서도 정확하고
아, 하여간 막내는 보고만 있어도 흐믓하다.
단체 체조를 마친후에는 학년별로 운동장 곳곳에 마련된 놀이마당을 돈다.
유치원 아이들은 한쪽 구석에 마련된 부스에서 솔잎싸움도 하고
바람개비도 만들고, 과자따먹기도 했다.
비석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한 윤정이는 딱지가 마음대로 안 뒤집어지자
그냥 웃는다.
경쟁하고 보여주는 운동회가 아니라 모두가 제 나이에 맞는 놀이들을
즐기는 운동회다. 부모들이 도우미가 되어 아이들 모둠을 이끌고
놀이마당을 돌아 다닌다.
나도 유치원 부스 하나를 맡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물총놀이도 있고, 사방치기도 있고, 사진속의 아이처럼
버나돌리는 코너도 있다. 주로 전래놀이를 이용한
놀이마당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코너들로 이루어져 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아버지회 회원들이 강냉이와 호박엿을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남편도 큰 아이 1학년일때 이 코너에서 솜사탕 기계를 돌린적이 있다.
덕분에 운동회 내내 달달한 호박엿과 구수한 강냉이를 실컷 먹었다.
아버지들은 행사 진행도 돕지만 이렇게 재미나고 즐거운 내용들로
운동회를 한층 더 신나게 한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달리기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시작되는 달리기에서 이룸이는 남자 아이들과
함게 뛰어 당당히 2등을 했다.
늘 잘 다리는 아이들과 한 조가 되어 2년째 꼴찌를 하는 윤정이도
표정은 밝았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학부모 달리기 선수로 나갔다.
올해부터 열심히 걷고 있고 운동도 틈틈히 해서 은근 자신 있었는데
달리기를 해 보니 몸이 가벼웠다. 달리다가 장애물을 통과해서
가발을 쓰고 달려야 했는데 금색 가발 하나 집어들고 신나게
돌리며 1등으로 들어왔다.
윤정이와 이룸이가 너무 좋아했다. 보람이 있다.
내친김에 내년에도 달려볼까? 생각중이다.ㅎㅎ
오전 운동회의 마지막 순서는 강강술래였다.
풍물패의 장단에 맞추어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 모두가 다 손을 잡고 운동장에
커다란 원을 그려가며 강강술래를 돌았다.
내 아이 손과 다른 아이 손을 함께 잡고, 교장 선생님부터 사서 선생님까지 모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하나가 되어 즐겁게 운동장을 돌았다.
가끔 줄이 끊어지기도 하면 까르르 웃으며 달려가 다시 손을 잡곤 했다.
대학시절 축제때 대동놀이에서 즐겨본 이후 처음 해보는 강강술래였다.
아이들은 급식을 하지만 부모들은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반별로 어떤 반은 단체로 김밥을 주문하기도 하고, 시내에 있는
도시락집에서 단체 도시락을 맞춘 반도 있었지만 이렇게 커다란
함지막을 들고 와서 비빕밥을 해 먹는 반도 여럿이었다.
참기름과 나물을 넣어가며 열심히 비비는 모습은 우리 학교
운동회만의 흐믓한 광경이다.
반별로 모여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즐거웠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운동장 곳곳에 마련된 텐트에서 장터를 열었다.
엄마회에서 준비한 분식코너와 아이스 커피 코너도 인기였고
책사랑회에서 준비한 동화구연장에도 아이들일 바글거렸다.
아이들도 각자 준비해온 물건들을 늘어 놓고 백원 이백원을
외쳐가며 열심히 팔았다.
윤정이 여름 샌들과 이룸이가 겨울에 입을 옷들을 많이 건졌다.
쿠키를 구워와서 파는 엄마들도 있고 자신이 다 읽은 책을 가져와
무료로 가져가라는 학부모도 있었다.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고학년도 있고, 케릭터 카드를 잔뜩 들고와
교환을 하는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다양한 아이템들로 물건을 만들고 사고 팔면서 오후를 즐겼다.
신나게 먹고, 신나게 팔고, 또 사고 돌아다니면서 흥정하고 고르는
시간이었다.
모든 행사를 마친 후에는 운동장의 쓰레기를 줍고 행사장을 함께
정리하는 것으로 운동회를 마감했다.
내가 어릴때에는 부채춤이며 포크댄스며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운동회 프로그램 연습을 몇날며칠씩 하곤 했다.
우리 순서가 끝나면 먼지나는 운동장 구석에서 다른 학년 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다가 가족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곤 했었다.
요새는 많이 달라져서 전 학년이 함께 하는 운동회가 드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오전만 하고 급식 하고 끝나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운동회에서 소외되는
아이들 없이 모두가 다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
달리기가 있긴 하지만 1등이나 꼴등이나 모두 잘 달렸다는 도장을 받고
다함께 급식을 먹는다.
달리기를 할때 장애가 있는 아이랑 함게 뛰는 아이들은 골인점을
먼저 통과하지 않고 그 아이가 들어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두 함께
골인점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 나를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특수 교사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할때는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은 언제봐도 감동스럽다.
모두가 다 참여하고 모두가 다 돕고 즐기는 운동회,
그것이 말로 진정한 운동회가 아닐까.
내 아이만큼 다른 아이도 응원하고, 살펴가며 함께 즐거운 운동회..
준비도 정리도 함께 하는 운동회..
아이들이 그런 운동회를 누릴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런 운동회를 만들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는 자리여서 더 좋다.
공부도 좋지만 아이들의 학창 시절이 무엇보다 즐거운 행사와 경험들에
대한 추억이 풍성하기를 바란다.
이번 운동회도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