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자, 걷자. 한 눈 팔며 걷자!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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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월요일부터 제법 큰 결심을 실천 중이다.

세 아이와 걸어서 학교에 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정이가 다니는 학교까지 그전까지는 차로 데려다 주었다. 큰 아이는 집 앞

삼거리에서 9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보통은 차로 윤정이를 먼저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다시 큰 아이를 보내는 식이었다.

그런데 윤정이가 2학기부터 9시 등교가 되면서부터는 종종 걸어서 학교에 다니곤 했다.

8시 30분 쯤에 집에서 나오면 9시 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큰 아이는 저 혼자 있다가 9시 버스를 타고 가기 시작했는데 얼마전부터는 집에 혼자

있다가 나가는게 싫다고 걷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나도 틀어진 골반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많이 걸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터라 기꺼이 세 아이와 아침을 걷게 되었다.

 

우리 식구는 공통적으로 아침 잠이 많다. 나도 세 아이들도 걸어서 가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한시간쯤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 한다. 졸려하는 아이들 깨우고, 아침 먹이고

씻고, 학교갈 준비 마쳐서 8시 25분쯤 집을 나서려면 푸닥거리를 하는 것 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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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서면 세 마리 개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붉에 익어가는 꽃사과 열매 아래를 지나 언덕길을 내려간다.

언덕길 한켠에는 돼지감자꽃이 한창이다. 윤정이는 오빠 밭의 토란잎이 시들고

있다고 소리치고 아직도 토마토가 잔뜩 매달려 있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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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학교에 가는 일은 한 눈 팔며 가는 길이다.

길가에는 한 눈 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걷는 일이란, 논에는 벼들이 익어가고 밭에는 김장무와

김장배추가 한창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제보다 더 컸다고 알아채는 일이다.

갑자기 폴짝이며 나타나는 풀벌레들에 놀라고 발길에 채이는 도토리를 잡으러 뛰어가는 일이다.

새들이 우르르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오르고 동네 어르신이 탄 차가 지나갈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마른 밤송이를 발로 차며 걷다보면 심심할 틈이 없다.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 이름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큰 아이다.

요즘 한창 이쁘게 피어 있는 고마리꽃으로 우리는 종종 꽃다발을 만들며 걷는다.

길가에서 가장 큰 강아지풀을 발견했다며 오빠가 뽑는 사이 동생들도 제 맘에 드는

강아지풀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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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엔 어디나 거미줄이 널려 있다.

제일 흔한게 알록달록한 무당거미다. 어디에 있는 무당거미가 제일 큰가

아이들끼리 얘기하다가 호기심 많은 큰 아이가 거미줄을 강아지풀로 살살 흔들어 본다.

'거미는 거미줄에 느껴지는 진동으로 먹이가 걸린것을 안대요. 제가 한번 강아지풀로

흔들어 볼까요? 거미가 오는지 안 오는지..'

세 아이는 잠시 거미줄 앞에서 숨을 죽인다.

책으로 배운 것을 자연속에선 온 몸으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지식과 체험이

함께 만날때 온전한 배움이 된다는 것을 세 아이와 걸으며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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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유난히 피곤하고 졸려서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어떤날은

투닥거리고 싸우느라 한 아이가 삐지기도 하지만 걷다보면

또 다른 일에 마음이 뺏기고 그러다가 어느새 풀어져 다시 웃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 한 눈 팔지마, 똑바로 걸어. 앞만 보고 걸어!' 이런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아이랑 걷는 일은 수없이 많은 것에 한 눈 팔며 가는 일이란 것을 아주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고 늘 느슨한 시간속에서 아이들을 키워 오는 동안

아이의 눈에는 하찮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보도블럭의 갈라진 틈이 신기하다며 마냥 쭈그려 앉아 들여다보고, 내 눈엔

도무지 시덥잖은 돌맹이에 마음이 뺏겨 줍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 눈 팔지마'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보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들 눈을 한 방향으로만 고정시켜 놓을 수 없는 것 처럼

움직이고 뛰고 싶은 아이들을 가만히 있으라고 할 수 없는 것 처럼

아이들은 제 눈을 빼앗고, 제 마음을 매혹시키는 수많은 것들에 기꺼이 한 눈 팔며

마음을 주며 커야 한다.

 

가장 좋은 일이 함께 걷는 일이다.

시골길이 아니어도 좋다. 늘 익숙한 동네라도 매일 다른 무엇을 아이들은 발견한다.

도시 한복판에도 꽃은 피어나고 바람은 불고 새들이 날고 계절의 색과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함께 걸으며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눈을 끄는 풍경에

함께 눈길을 주다보면 아이와 더 가까와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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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가 다니는 학교가 가까와오면 아이들은 발걸음을 서둘러 뛰어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들이 사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맬라뮤트와

진돗개가 사는데 아이들은 검고 흰 털이 나 있는 알래스타 맬라뮤트에게

2010년 5월에 세상을 뜬 우리들의 첫 개 '해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죽은 해태와 비슷하게 생겼다.

처음엔 경계하며 짖던 개들도 이 길을 오가며 아이들이 이름을 불러주고 이뻐하는 동안

우리에게 마음을 열게 되어 이제 우리가 가면 꼬리를 치며 달려 온다.

동물을 사랑하는 세 아이들이  동네 개들에게도 애정을 주고 이뻐해 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뭉클하다.

 

학교 정문 앞에 서면 늘 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지킴이 할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인상 좋으신 지킴이 할아버지는 '윤정이가 내 친구'라며

웃으셨다. 2학기에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은 아침마다 교문에서 전교생을 맞아주신다.

윤정이와 교문앞에서 헤어지고 잠시 기다리면 대야미역을 9시에 출발한 마을버스가

학교 앞으로 와서 우리를 태운다.

넷이서 정답게 걸었던 길을 마을 버스를 타고 다시 되 짚어 간다.

집 앞 삼거리 정류장에서 나와 이룸이만 내린다. 큰 아이를 태운 마을버스는

구불구불 덕고개 언덕길을 올라 사라진다.

 

집을 나설땐 긴팔 옷을 입었다가 걷다보면 다시 벗게 되지만 날을  하루하루

서늘한 가을속으로 깊어질 것이다. 눈이 오면 털신을 신고 걷자고 했다.

넷이서 눈싸움을 하며 걷다보면 후끈 더워질 것이다.

가끔은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나오면 매일 매일 색과 냄새를 달리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또 어느새 수많은 풍경들에 한 눈을 팔게 되는 것이다.

 

큰 아이가 산속의 학교를 졸업하고 먼 곳의 학교를 다니게 되면

넷이서 정답게 걷는 일은 끝날것이다. 그땐 셋이서 걸어야지. 이룸이까지

언니 학교에 입학하면 두 아이를 보내고 나 혼자 다시 걸어서 집으로

올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미 지나온 풍경과 아직 보지 못한 풍경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손을 잡고 함께 걷자.

일하는 부모들이라면 주말을 이용하면 된다. 멀리 가지 말고 집 근처 가까운

곳을 손 잡고 걷자. 되도록 많이 많이 한 눈 팔면서 되도록 많이 많이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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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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