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마다 집집마다 참말 다른 명절 풍경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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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풍경은 지방마다 집집마다 참으로 다양하다.

딸들이 다섯인 우리 친정은 명절이 한 번 지나면 딸들이 모여 각기 다른 시댁의 명절 풍경을

놓고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우곤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양할까..... 매번 감탄하게 된다.

 

강릉 시댁에 와서 처음 지낸 추석에 큰댁에서 감자 송편을 빚으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 내게 감자송편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따금 사 먹던 맛난 음식일 뿐 이었다.

송편을 빚는 방법도 송편 속에 넣는 소도 친정과는 정말 달랐다.

친정에선 꿀이나 설탕을 넣은 깨 송편을 반달모양으로 빚었는데  강릉은 밤을 넣은

밤 송편을 주로 빚는다. 큰 밤은 절반을 자르고 작은 밤은 통째로 넣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만든다. 그래서 동글동글한 송편이 만들어진다.

쌀과 밤 맛이 나는 담백한 송편이다.

그러나 밤 송편을 빚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일일이 까야 하는지 며느리들도 아들들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애를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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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중요한 음식이 '메밀적'이다.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쭉쭉 찢은 신김치와 쪽파를 얼기 설기 얹어 얇게 부쳐내야 하는데

얇으면서도 찢어지지 않게 부쳐내는게 보통 내공으로는 어림 없다.

며느리 셋 중에 결혼 20년 차 베테랑인 형님이 메밀적을 부치는데 안 찢어지게 일곱장을

부쳐야 제사상에 올릴 수 있다보니 늘 메밀적을 부치는 자리에선 '아이고' 하는 탄식과

'이번엔 성공이다!'하는 함성이 번갈아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친정에서 살 때는 제사가 간단했다.

일가 친척은 너무 멀리 살고 있어 명절이라고 찾아 오는 일이 없어서 늘 우리 가족끼리

단출하게 지내곤 했었다. 제사상에도 꼭 올라야 하는 기본적인 음식들을 식구들이

먹을만큼만 해서 지내곤 했기 때문에 딱히 복잡하거나 어려울게 없었다.

 

시댁은 일가가 크고 가까이서 살아서 명절이면 40여명 가까운 친지들이 큰댁으로

모여 제사를 올렸다. 늘 명절 전날 큰댁에 가서 제사 음식을 함께 만들곤 했는데

작년 여름에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는 며느리 셋이 우리 제사 음식을

만들게 되었다.

다행히 일찍 시집와서 어머님께 살림을 제대로 배운 형님과 천성적으로 일머리가

있고 손이 빠른 동서가 있어 제사 음식을 척척 해 낸다. 결혼 12년 째 지만

여전히 손이 느리고 일머리가 서툰 나는 쩔쩔매며 두 사람을 돕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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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음식이란 얼마나 손이 많이 가야 하는지...

동그랑땡 하나만 해도 재료를 손질하고 섞어서 치대고, 동글게 빚어 밀가루와

계란물을 입혀 타지 않게 지져내기 까지 수없는 손길이 가야한다.

다 만든 음식을 제기에 올리는 일도 얼마나 까다롭고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하는 사람도, 거드는 사람도 긴장에 긴장을 하며 온 신경을 다 집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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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부쳐내는 음식이 일곱가지에, 삼색 나물 무치고,  어물을 삶고

탕국을 끓이고, 산적을 굽고, 떡을 쌓고, 삶은 계란을 모양 내어 잘라 올리고

일곱 과일에 삶은 문어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게 시댁의 제사상이다.

미리 장을 보았어도 재료를 다듬어 만드는데 세 며느리가 하루 꼬박 일 해야 한다.

과정 과정마다 남편들이 부지런히 시장을 오가며 빠진 재료들 사 오고

밑 손질 해주고, 잔심부름 해 가며 부지런히 도와야 그마나 해 낼 수 있다.

 

그래도 세 며느리가 속 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것도 제사 음식 만드는

시간이다. 함께 앉아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며 그동안의 사연들을 나누는데

몇 달씩 서로 안 보고 사는 사이에도 어쩌면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같이 걱정해주고, 고민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챙겨 주면서 힘도 얻고

마음의 짐도 던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자리도 이  때다.

나와 동갑이지만 8년 먼저 시집을 온 형님과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여고시절부터 서방님과 알고 지낸 동서는

내가 모르는 가족들의 역사를  줄줄이 읊어 준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추석에 한복을 입고 어머님과 둘이 큰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야 했는데 그때만해도 큰댁이 옛날 집이어서 한복을 입고

재래식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죽을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제일 늦게 시집을 온 나는 정말 편하게 시집살이를 하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힘드니 원 참....

 

어머님 돌아가시고 한 번의 설과 두 번의 추석이 지났다.

그동안 서너번의 제사를 며느리 셋이서 잘  치루어 냈다. 매번 힘들기는

하지만 앞장서는 형님과 힘이 되는 동서가 있으니 이만하면 나도

참 운 좋은 며느리구나... 싶다.

 

몸은 고단하고 힘은 들지만 이렇게 같이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모시면서

사연과 애정을 함께 버무려 만든 음식을 같이 나누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더 가깝게 이어주는 것이려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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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래도 철 없는 며느리인 나는 내년 설과 추석은 며칠이나

되는지 벌써부터 헤아리고 있다.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인 내가 이다음에 혹 시어머니가 되면

아들네가 언제 내려올까, 얼마나 있다 갈까 노심초사 하게 되려나..

 

부담은 덜고 행복은 더 커질 수 있는 그런 명절... 열심히 고민해야겠다.

미래의 내 며느리를 위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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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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