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 지은 '밭'이 생겼어요!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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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봄은 요란한 농기계 소리로 온다.

경운기며 트렉터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또 봄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속에 이미 새 봄은 와 있는 것이다.

 

우리도 농사준비에 들어갔다.

작년에는 여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해 농사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올해는 퇴비도 넉넉하게 들여 놓았고 작년보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보리라 결심했다.

 

올해는 매년 잡풀만 우거지던 마당 아래 밭을 제일 먼저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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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마당 아래 밭을 갈아 나무 판자로 길죽한 상자모양으로 다듬었다.

아이들만의 밭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농삿일에 시큰둥하던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자기만의 밭이 생긴다고 하니까 달려들어 도왔다.

필규는 아빠와 함께 밭 둘레에 나무 판자를 대는 일을 열심히 거들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이 농삿일을 좋아할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어쩌다 하는 농사체험은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있지만

농사가 일상이 되는 아이들에겐 그저 일일 뿐이다.

 

시골에 이사오면서부터 텃밭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첫해만 신나서 달려들었을 뿐

재미와 흥미가 사라지자 귀찮고 힘든 일이라며 질색을 했다.

농작물보다 더 잘자라는 풀들과 풀모기에 시달리며 밭일을 하는 것은 어른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다보니 아이들이 밭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이가 달렸다고 좋아하고, 토마토가 익었다고 기뻐했다.

감자같이 많이 심은 작물을 캘 때는 다 같이 돕기도 했다.

그렇지만 작고 아담한 자기만의 밭이 생긴다는 것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나보다.

아이들은 서로 제 밭이 더 이쁘다고, 더 멋지다고 자랑하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흙 사이의 돌을 골라내고 이따금 나오는 쓰레기 조각들도 주워 냈다.

'내 밭'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밭이라는 생각이 이제껏 무심하게 보던 땅을 새롭게 한다.

그만큼 특별한 애착과 애정이 기울여지는 것이다.

 

제일 첫 번째 밭은 필규것, 두번째 밭은 윤정이, 그리고 이룸이는 제일 넓은

밭을 엄마와 함께 짓기로 했다.

밭을 다 일군 다음에는 저마다 자기 밭의 이름을 지었다.

남편은 나무를 잘라 멋진 팻말 세 개를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과 집 주변의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아이들이 지은 이름을 이쁘게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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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 밭 이름은 '하늘'이다. 하늘처럼 마음이 넓은 윤정이 답게 제게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밭에 제일 많이 들락거리며 벌써부터 제일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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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규 밭은 '초록'이다.

초록으로 무성한 밭을 일굴 모양이다.

학교에서도 텃밭 교육이 있는데 어딜가나 농삿일이라고 툴툴대지만 제것에

대한 애착이 큰 아이인만큼 믿고 있다.

 

이룸이 밭.jpg

 

이룸이는  제 밭에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다처럼 넓고 큰 밭을 만들겠단다.

수박도 심고, 참외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옥수수도 심겠단다.

풀이 나기 시작하면 일이 넘칠텐데 어린 이룸이는 그저 제 밭이 제일 넓은게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심기만 하면 다 잘 자랄 줄 안다. 심지어는 귤도 심겠단다.

이룸이랑 같이 짓는 밭 농사는 땀 깨나 흘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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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든 아이들의 밭은 아이들이 늘 노는 마당의 나무집에서도 금방 내려다 보인다.

학교에 오고 갈 때마다 들여다 볼 수 도 있다.

아이들은 제 밭에서 자란 푸성귀들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아이들의 맑은 눈에는 벌써부터 이 밭에 풍성한 푸른것들이 보이는 모양이다.

 

'초록, 하늘, 바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들의 밭이 올 한해 기쁜 땀과 정성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돌볼 생각이다.

 

새힘이 불끈 솟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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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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