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 사이 생생육아
2013.11.05 10:3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남편이 출장 간 집에서 아들하고 티격태격 했다.
녀석이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도무지 방에 틀어박혀 레고만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딸들은 어려도 내가 얘기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아들은 언제나 제 사정만 제일 중요하고 내 잔소리도 좀처럼 수굿하게 듣는 법이 없다. 그러니 늘 아들하고는 쉽게 삐걱거린다.
한참 서로 감정이 상해서 격한 말을 주고받고 있는 와중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곱 살 둘째 딸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이어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더니 남편은 대뜸 ‘아들한테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이러는 거다. 딸하고 전화로 이야기하는 중간에 내가 필규에게 화 내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자초지종도 모르면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니 순간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더라도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잘 달래서 얘기해’ 한다. 남편이 말하는 뜻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들은 특히나 말로 야단치고 잔소리 하는게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감정이 상하면 잘 통제가 되지 않는다. 제 잘못은 잘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랑 싸울 땐 치사하게 내가 실수한 것도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아들의 태도는 더 얄밉다. 그래도 남편은 항상 내가 너무 다그치니까 내게만 아들이 더 삐딱하게 구는 거라고 말한다. 자기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과 전화를 바꾼 남편이 ‘아빠는 네 편이야’ 하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온다. 아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과자를 잔뜩 들고 있었다. 아마 아들이 나 몰래 전화로 부탁한 모양이다. 과자를 본 아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역시 아빠는 최고야’ 신이 난 얼굴이다.
남편은 아들에게 늘 관대하다. 화도 잘 내고 소리도 잘 지르는 나에 비해 남편은 좀처럼 목소리가 높아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아들과 싸우면 아들을 가만히 불러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면서 엄마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은 늘 남편 몫이다. 내겐 사달라고 졸라도 잘 안 통하는 물건이나 간식도 남편은 잘 들어준다. 그러니 늘 아들과 아빠 사이는 훈풍이 분다.
가끔은 좀 억울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세 아이 키우면서 남편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좋을 때가 더 많다. 똑같이 화내고, 똑 같이 소리 지르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집은 정말 매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 사람이 화내도 한 사람은 같이 휩쓸리지 않고 아이들을 보듬어주니 내가 아이들과 한바탕 악다구니를 하며 폭발을 해도 갈등과 감정은 금방 진정이 된다. 내가 늘 악역만 맡는 것 같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좋은 일, 기쁜 순간도 더 많이 누리고 있으니 불평할 일은 아니다. 동성이기에 본능적으로 서로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나와 딸들 사이에서 저 혼자 남자인 아들 역시 평소에 억울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 같은 남자인 아빠와 통하고 아빠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게 때로 두 남자는 세 여자들 사이에서 동지가 되고 한 편이 되어서 힘을 얻고 안심이 된다. 아빠와 아들 사이는 이래서 중요하다.
얼마 전부터 자전거를 저 혼자 타게 된 아들을 위해 남편도 결혼 10년 만에 자전거를 샀다. 주말엔 차에 자전거를 싣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아들과 단 둘이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겠단다. 도무지 운동엔 관심이 없던 남편이 쑥쑥 크는 아들 덕에 달라지고 있다.
아빠와 아들 사이.... 팍팍 더 밀어줘야겠다.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5일자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