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발견한 곳, 지리산 능선에서 [5월 13~15일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캠페인 후기] 지리산케이블카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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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령에서 바라본 왕시루봉 능선

 

지나고 나면 세상의 모든 일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봄은 그리움을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겨울이 지나갔네, 봄이 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 여름이다.

해서, 봄은 항상 아쉽다.

 

3월초 지리산자락엔 산수유꽃과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었던 만큼

칙칙한 회색빛깔 산자락에 피어난 노랗고 흰빛은 경이롭게 신선했다. 

 

산수유꽃과 매화꽃이 벚꽃, 진달래꽃, 개복숭아꽃에게 봄의 자리를 물려줄 즈음 묵은 논엔 자운영이 피어난다.

5월은 지리산자락에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봄은 끝났다고 여겨지던 5월 중순,

지리산케이블카 반대를 위한 걸음이 있던 날, 

지리산국립공원 능선을 걸으며 '이제 봄이구나!' 싶었다.

 

5월 13일 이른 6시 30분 노고단대피소 앞에서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기획단'(이하 기획단) 출정식을 했다.

홍현두 단장 (원불교 구례동원교당 교무)은 2박3일 동안 지리산케이블카가 가지는 문제점을 알리며 기운차게 걷자 하였다. 

최화연 사무처장 (지리산생명연대)은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멀리서 온 분들과 함께 하니 든든하다 했다.

김광철 운영위원장 (지리산사람들, 구례산동수평교회 목사)은 지리산에 4개의 케이블카가 추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지리산권이 평화롭게 공존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했다.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묵상과 몸 풀기 체조 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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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은 산동온천에서 노고단까지 4.5km나 되는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노고단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제를 지내던 곳이다. 

제를 지내던 자리에 철탑을 박고 5층 높이 정류장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지리산신이 노할 일이다.

 

5월 13일 노고단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철쭉이지 싶었는데, 진달래였다.

1507m 노고단에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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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고개를 지나 돼지령으로 갔다.

겨울을 나며 돼지령 가는 길 조릿대와 참나무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을까? 

참나무는 북풍한설에 뿌리를 보호해준 조릿대에 대한 고마움을 잎을 피우지 않는 것으로 답하고 있는 듯 했다.

참나무는 더 많은 햇살을 조릿대에게 주고 싶을 것이다.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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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령을 지나니 진달래꽃이 많아지고 겹겹이 산 능선이 보였다. 

지리산능선을 걷다보면 유장하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하게 된다.

봉우리와 계곡 이름을 몰라도 끝없이 펼쳐진 능선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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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 삼거리가 나왔다.

1732m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남원시는 반선에서 반야봉까지 장장 6.7km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반야봉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천왕봉이 지리산 최고봉이라면 반야봉은 지리산의 중심이라고 한다.

노고단, 벽소령, 세석, 장터목, 천왕봉 등 지리산 어디에서나 모습을 보여주는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지금은 노고단이고, 반야봉이고 높은 곳은 어디나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시대다.  

어머니산이라고 민족의 영산이라고 하는 말은 그냥 하는 얘기인가 보다.

어이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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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은 3개 도, 5개 시군, 15개 읍면에 걸쳐 있다.

삼도봉에는 지리산국립공원이 3개도에 걸쳐 있음을 자랑하는 표시가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이 3개 도에 걸쳐있으니 케이블카도 3개는 있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욕망과 욕심의 끝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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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면 300만을 넘는 사람들이 지리산국립공원 능선을 걷는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공식 통계와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로 지리산자락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와

지리산자락에서 나는 것은 뭐든지 신뢰가 간다는 도시민의 이야기는

지리산권이 지속가능하게 행복하기 위해선 멀리서 온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먹으며 지리산을 느껴야 함을 말해준다.

케이블카가 지리산을 걷고, 지리산에 머물고, 지리산에서 나는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명선봉을 올라 연하천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꽃밭이었다.

현호색꽃과 얼레지꽃이 있는 게 아니라 쫙 깔려 있었다.

지리산능선에서 만나는 현호색과 얼레지, 노랑제비꽃 무리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꽃들에게 내리는 햇살과 바람에 집중하며 걸었다. 따스하고 시원했다.

케이블카도 댐도 잊게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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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대피소에서 낮밥을 먹고 서명을 받았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요?, 놀라는 분들도 있고,

이미 서명했다며 지금 상황은 어떠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지리산능선에서 만난 사람들의 99.99%는 지리산케이블카, 국립공원케이블카에 반대한다.

 

황사가 걷히며 파란 하늘이 드러나자 봄빛은 더 진해졌다.

회색에서 연두로, 연두에서 연초록으로,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짙초록으로,  

나무에 따라, 방향에 따라, 햇살에 따라  

봄날 지리산은 초록이 낼 수 있는 다양한 빛깔로 반짝였다.  

멈춰서 볼 수밖에 없다. 넋놓고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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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내려가고 노을이 지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반야봉에도 어둠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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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기획단은 어머니품, 지리산안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시작 묵상을 한 후 세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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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어제보다 오늘, 지리산은 더 봄빛이었다. 

현호색꽃은 더 환하게, 엘레지꽃은 더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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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장터목대피소와 제석봉, 지리산 최고봉 1915m 천왕봉이 보였다.

제석봉은 천왕봉에서 직선거리로 500m쯤 되는 곳이다.

제석봉은 한민족의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로 전해지는 단군에게 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청은 중산리에서 제석봉까지 5km가 넘는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구례, 남원, 산청이 케이블카를 놓겠다니 함양도 질수 없다며 백무동과 제석봉을 오가는 케이블카를 추진 중이다. 

지자체들간의 행태를 보노라면 지리산자락 5개 시군, 15개 읍면 모두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게 아닐까 헛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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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와 철쭉, 진달래가 다툼 없이 살고 있는 세석평전에서 낮밥을 먹은 후 지리산케이블카 반대 선전홍보활동을 하였다.

반달곰가면을 쓰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세석대피소에 있던 모두가 서명에 참여하였다.

인터뷰하는 분들은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를 했다.

케이블카타고 씽 올라왔다 휭 내려가는데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한다고요? 장애인과 노약자 전용 케이블카라면 모를까 개발을 위해 끌어다 붙이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 해도 나무 자르고 시멘트 부어야 정류장을 지을 거 아닙니까?

지리산인데, 케이블카는 절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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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평전을 떠나 한신계곡을 따라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오늘처럼 어제도,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지리산엔 많은 사람들이 다녔을 것이다.

지리산이 있어 수많은 시와 노래, 그림과 몸짓이 만들어졌고, 지리산이 있어 뭇생명들과 민초들은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은 외침과 분노로서 지켜지는 게 아님을 알았다.  

각자의 마음 안에 살아 숨 쉬는 지리산을, 지리산으로 향하는 애틋한 마음을 연결하면 된다. 

그러면, 지리산은 지켜진다.

 

백무동이 가까워질수록 초록빛은 진해졌다.

5월 중순, 지리산은 봄과 여름 두 계절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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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기획단은 백무동에서 야영을 했다.

함양경찰서는 대규모 집회를 하나 싶어 다녀갔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도 몹시 긴장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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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백무동 입구에 판넬을 전시하고, 서명용 탁자를 설치했다.

 

뭐예요? 

세석과 장터목으로 오르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4개나 추진하고 있어서요, 반대서명 받고 있습니다.

서명용지는 환경부장관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네?! 지리산에 케이블카라고요, 여기다 이름 쓰면 되나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지리산과 케이블카는 함께 하기 힘든 단어였다.

붙들지 않아도, 애원하지 않아도 이름과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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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다.

가치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다양한 의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자연생태를 보전하고, 국립공원을 지키라는 의무를 부여받은 환경부가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에 앞장서는 건,

이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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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기획단은 3월 12일 천왕봉 아래 중산리에서 발족식을 했다. 

기획단은 구례, 남원, 산청, 함양 등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과 서울, 익산 등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기획단은 일상적인 케이블카 반대활동과 함께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지리산권 5개 시군을 돌며 기획 행사를 하고 있다.

3월 12일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 소풍, 4월 9일 지리산 봄 문화제에 이어

5월 13~15일 기획단은 지리산능선을 걸으며

지리산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서명을 받고 몸자보를 달아주는 활동을 했다.

기획단은 걷고, 웃고, 먹으며 지리산케이블카 반대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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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 기획단은 기대하지 않았던 봄을 선물로 받았다.

지리산케이블카에 반대하지 않아도 좋다.

지난 봄을 기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지리산능선을 걸어보길 바란다.  

노고단에 올라도 좋고, 연하천에 들려도 좋고,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걸어도 좋다.

한신계곡으로 오르며 여름에서 봄으로 계절을 거꾸로 느껴도 좋다.

어디를 가도 지리산이 있음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기획단 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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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