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뽀뇨육아일기
2017.05.15 23:14 뽀뇨아빠 Edit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주에 정관수술을 한 것이다. 사실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아이 둘을 낳은 후 가족계획에 대해 더 생각하거나 아내와 의논하지는 않았지만 ‘둘째로도 충분히 족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아이 한명을 돌보는 것과 둘을 돌보는 것은 ‘1+1=2’가 아니라 과장 조금 보태어 ‘2의 3승’은 됨직한데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대학에 들어갈 때 우리가 몇 살인지 알아요?’라는 이야기보다는 사실 마흔이 넘은 아내가 출산을 했을 때 아내도 아이도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꾸는 꿈 또한 또다시 연기되거나 포기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내게는 큰 이유가 되었다.
결심을 하고도 수술을 곧바로 하지 못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에서 수술비를 지원하지 않다보니 비용이 수 십 만원이나 들었다. 빠듯한 살림에 그냥 피임기구를 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한 형은 “와이프랑 얼마나 하려고 수술을 하냐. 그냥 콘돔 써”. 형의 계산대로 하자면 콘돔 하나가 천원, 일주일에 평균 1번 관계를 한다고 했을 때 10년 치의 콘돔비용과 수술비용이 얼추 맞아 떨어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세월인지라 꽤 많은 시간이지만 사실 비용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그냥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예전에 친한 형이 수술을 했는데 무자격자가 시술하여 부작용으로 수술부위가 엄청 부어오른 적이 있다. 수술날짜를 잡았더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남자들이 대부분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남성 기능의 장애 우려’때문인데 아마 그 이유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클 것이다.
수술예약을 하고 일주일이 금방 갔다. 퇴근길에 비뇨기과에 들러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수술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세히 설명 안 해도 되는데..’ 이제 곧 수술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궁금했다. “저기요. 혹시 수술을 하고나서 다시 풀 수도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임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집니다.” 임신은 하지 않더라도 왠지 ‘임신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이미 수술실 문은 열렸고 나는 당당히 걸어 들어갔으나.. 수술 30분이 내게는 3시간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내가 지금까지 많은 수술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최고로 아픈 수술이었다. 가장 민감한 부위이다 보니 마취를 했는데도 마취가 안 된 듯 느껴졌고 의사가 사전에 수술과정을 설명한 순간들이 수술을 받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라 무서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수술이지만 윙~하고 돌아가는 수술 기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이 되고 너무 큰 소음인지라 귀를 막았다. 잔잔하게 들리는 수술실 클래식 음악이 수술기구의 굉음과 부조화속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났다. 엉거주춤 걸어 나오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내게 무슨 용기가 생겨 이런 수술을 하게 만드나 싶더라. 아내는 수술 잘 끝났냐며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약을 먹는 동안은 술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무알콜맥주를 몇 병 사다 마셨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새벽이면 오는 신체적인 반응 또한 수술 전과 마찬가지다. 수술을 하고 ‘임신’이 목적인 생물학적인 ‘남성’은 수명을 다했지만 아내의 ‘옆지기’로서의 사회적인 ‘남성’은 조금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직후, 비유하자면 수도꼭지에 남아있는 물 몇 방울이야기를 들은터라(정관수술을 하더라도 요도에 남아있는 약간의 정자로 인해 약 20회 정도는 피임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 몇 방울 생각이 나더라. 하지만 그건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더 행복하자. 행복은 욕심부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