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살림은 부모의 양 날개로 난다 뽀뇨육아일기

요즘 회사에서 농산물을 가져오는 일이 잦아졌다. 매달 제주 농산물을 택배로 배송하는 일을 하다가 지난해 9월부터 인근 영어교육도시에 매주 먹거리를 직접 배달하다보니 잔여 농산물이 남기도 하고 집에 꼭 필요한 우유, 계란, 고기 등은 직접 구매하기 때문이다. 영국학교인 NLCS의 한 외국인 선생님이 부탁해서 시작하게 된 일인데 내게도 회사에게도 참 많은 경험과 기회를 안겨주었다.


<매주 영어교육도시에 배달되는 로컬푸드. 이 일때문에 요즘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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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장보기를 내가 하게 된 것이다. 보통은 마트에 가거나 생협에서 아내가 사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먹거리를 조달하다보니 장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회사에서 남는 채소를 가져오거나 먹거리를 사오게 되니 저녁 먹을 걱정을 덜게 된 것이다. 집에 가져온 식자재로 제일 먼저 만들어 먹은 것이 샌드위치인데 제주밀로 만든 덩어리빵을 자른 후에 토마토와 상치, 치즈를 넣고 꿀을 뿌린 후 맛있게 먹었다. 아이와 함께 만들어서 먹다보니 입이 짧은 뽀뇨도 곧잘 먹었다.

우리와 인연이 있는 그 외국인 선생님 부부의 초대로 집에 간적이 있는데 여러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설거지는 설거지기계가,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고 있었다. 집안일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최소화하여 다른 일에 집중하였다. 두 살배기 아이를 저녁 7시에 혼자 재우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개인에게 혹은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을 듯 보였다


<영국인 마일스 부부는 집에 초대된 우리를 위해 직접 소시지를 만들고 하루 종일 오븐을 돌렸다. 나중엔 직접 만든 베이컨 까지 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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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을 활용한 요리도 참 간단하였는데 손님이 온다고 아침부터 고기를 오븐에 구웠다. 독일 학센 요리를 닮은 저녁상이 내 입맛에도 맞았다. 옛날식으로 치자면 벽난로에 감자며 양파며 고기며 다양한 먹거리를 넣고 구운 것이 바로 이런 요리인데 나는 그 집에 다녀온 이후로 자주 오븐을 써먹는다. 돼지 등갈비나 안심을 칼로 얇게 펴고 채소를 씻어 오븐에 넣은 후 시간만 조정하면 되는 간단요리. 40분을 기다리는 동안에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요리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에 군침이 돌아 밥맛도 좋았다. 설거지 또한 내게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좋아하는 노래나 연주를 들으며 하는 설거지가 얼마나 삶의 여유를 주는지 모르겠다


<요리는 재료가 중요하다. 좋은 식재료를 만나면 요리와 식사시간이 모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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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의 성역할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스트라이커고 누가 수비수가 아니라 우리는 한 팀이고 서로의 상황과 분위기를 보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짜증날 때도 많다. 어쩌다보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때가 있는데 팀 중 한명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다른 한 명이 이를 환기시켜주면 된다. 아이와 부모 둘 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인데 성역할이 정해지다보면 혹은 특정역할이 정해지다보면 한 명만 천사가 되고 또 한 명은 맨날 잔소리만 하는 팥쥐엄마가 되고 만다.

친한 형이 형수와 남편은 밖에서 돈만 많이 벌어오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돈도 중요하지만 집안 내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육아와 살림은 아빠에게 한 팀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아이들이 올바른 성평등 의식을 갖춰서 성장하게끔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육아와 살림은 특히 아빠에게 더 중요하다. 아빠에겐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아이를 상대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기에 아빠가 체력을 기르게 하고 아이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가다듬게 한다. ‘이래선 안 되는데라는 기준이 스스로에겐 나태하게 적용되지만 아이에겐 엄하게 적용되는데 그 이중잣대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아빠가 살림에 참여하는 일은 엄마를 살림의 늪에서 구하고 우리 팀이 함께 의논하고 놀 시간을 늘린다. 결국엔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일이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며 아이가 커가는 소리를 듣는 일일 것이다


<뽀뇨는 요즘 마술에 관심이 많다. 색종이로 직접 마술재료를 만들 정도로 열심이다.나는 뽀뇨의 아빠이자 팀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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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