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잘린 내 콧수염 뽀뇨육아일기
2016.02.15 22:43 뽀뇨아빠 Edit
설 명절 기간에 고이 고이 기르던 콧수염을 잘렸다. 내
손으로 자른 거지만 자의에 의해 자른 것이 아니기에 ‘잘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난데없는 콧수염’을 기르기로 한 것은 요즘 내가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이고
약간의 신변의 변화를 가지고 싶어서였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우울함, 감기,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러저러한 반성과
앞으로 살아갈 고민 아닌 고민들 때문에 늘 그렇긴 하지만 올해는 오래 가는 듯하다.
집에 올 때 특히 명절에 집에 올 때는 머리도 깎고 목욕도 하고 새 옷도 입고 오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엄마는 내게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서울생활하며 내 궁핍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그냥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혼을 하고, 제주로 내려가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내 외모를 마을 사람들에게 창피할까봐 더 신경이 쓰이는 듯 이야기하는 엄마가 싫었다.
나이 마흔이 되어 ‘머리 깎으러 엄마와 같이 미용실 가자’는 이야기를 듣거나
‘새 옷을 사두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퍽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막내로 큰 탈 없이 자라 만만하게 보이기 싫어서인지 ‘쓸데없는 고집’은 오래도 간다.
‘난데없는 콧수염’을 하고 집으로 향할 때 엄마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콧수염을 얇게 정리하고 턱수염 또한 아주 조금만 남겨두었기에
적어도 ‘얼마나 바쁘면 수염도 못 자르고 왔냐’는 이야기는 듣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콧수염에 대한 첫 반응은 난데없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창욱이는 마을에서 돗자리 펴고 관상 보는 사람으로 알겠네”
군산공항에 마주나온 장모님이 내 얼굴을 보더니 하시는 말씀.
차타고 전주 가는 길에 두 번이나 이야기를 하시는 걸로 봐서 신경이 조금 쓰이긴 했다.
그 길로 다시 차를 창원으로 몰아 엄마 집을 도착했는데
밤이 늦다보니 엄마가 뭐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에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오후에 목욕탕을 가는데
콧수염이 눈에 거슬렸는지 엄마가 대놓고 이야기를 했다.
“목욕 가서 제발 좀 콧수염 깎아라.”,
“엄마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지 말고 깎아라. 무조건 깎아라”.
차로 북면온천 목욕탕을 가는 20분 동안 깎아라, 못 깎는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감정은 화산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내일 차례 지내고 바로 처가 갈끼다”라고 말하고 아들을 데리고 욕탕으로 향했다.
깎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의 순간이었지만 욕탕문으로 향하는 순간
감정의 피치를 올렸던 내 고집이 수그러들고
엄마와의 갈등을 조정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왠지 모르겠지만 세 살배기 아들과 처음으로 목욕탕을 간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리라.
콧수염을 자를까, 턱수염을 자를까를 잠시 고민하다
수염이 듬성 듬성 난 콧수염을 골라 잘랐다.
이상하게도 욕탕엔 내 나이 또래의 남자 몇몇이 모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먼저 목욕을 마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아내가 먼저 알아보곤 웃는다.
엄마는 “아이고 이제 우리 아들 같다. 깎으니까 얼마나 좋노”라고 했고
나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이렇게 ‘난데없는 콧수염’은 사라지고 턱수염은 살아남는 줄 알았다.
근데..
얼굴만 보고 가자던 큰누나와 막내누나, 큰자형과 조카들이
늦은 오후에 집으로 왔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마디씩 했고
화재를 돌리면 ‘기승전턱수염’이 되는 통에 결국엔 턱수염까지 내 손으로 자르고 말았다.
큰 자형이 왜 수염을 기르는지 물어봤고 나는 나름 기분전환을 위해 기르는 거라 대답을 했건만
‘안 자르면 처가에 못 보내준다’는 자형이야기에 결국엔 잘랐다.
“나는 고향집에 갈 때 일부러 좋은 옷에 좋은 차를 몰고 간다.
처남이 모양이 초라해서 집에 오면 엄마 어깨에 얼마나 힘이 빠지겠노.
처남은 처남 생각만 하지 말고 엄마 생각 좀 해라”.
엄마와 기운을 빼며 콧수염을 자른 통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얼굴 붉히기 싫어 자르긴 했지만 기
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그 콧수염이 뭐가 그리 대수인지.
별거 아닌 것이기에 가족들은 자르라고 하고 나또한 별거 아닌 것이기에 왜 참견하냐고 하고.
‘수염 기르는 것은 자기의 의지이자 자유’라는 아내의 동의로 시작된 수염,
처가인 전주로 가는 길에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부모 입장에서 이해가 되는데 누나나 자형의 반응은 의외였다’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이 참 고맙다가도
가끔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번 설에는 개인의 자율성을 위해서라도 가족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염은 결국 기를 것이다. 내가 마음에 들 때까지는..
아마도 마음에 든다면 막내의 투쟁은 계속되지 않을까.
<나는 수염 기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줄 몰랐다. 추석전에 아마도 포기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