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 엄마 미안해요 뽀뇨육아일기

“집에 가거든 수미가 불편한지 아닌지 잘 살피고

어떻게서든 빨리 창원으로 보내드려라. 엄마한테 내가 분명히 말했다.

 (모든 며느리는) 시어머니하고는 단 하루도 있고 싶지 않다고”.

 

출장길에서 만난 누나의 이야기가 귀에 박혔다.

 

‘시어머니하고는 단 하루도 있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의 결혼한 남자라면 누구나 상상을 한본 해본다.

커오며 부모님께 받은 여러 가지 자산들을 언젠가는 갚을 날이 올 것이며

그때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며 살리라.

‘아내의 동의’는 전혀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고서.

그리고 실제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자면

이것이 자기만의 욕심이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다는 점을 이내 깨닫게 된다.

 

참 모순적인 이야기지만 누나는 내게 한가지 더 강조하였다.

 

“우야, 너의 가족에 엄마가 항상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너는 잊어선 안된다. 알았지?”.

 

내 가족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왜 엄마와 아내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누나 또한 며느리면서 딸인데도 말이다.

지난해에 나는 모든 아들들이 한다는 상상을 혼자 해보고서

고부지간이 함께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결론 내렸다.

엄마도, 아내도 함께 있는 두 달동안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누나들이 신신 당부를 했듯 올해도 잠시 손자만 보고 다녀가실 예정이던 엄마.

엄마가 살림을 도와주셔서 나는 혼자서 보내던 삶을 잠시 연장할 수 있어 좋았는데

며칠이 지나자 지난해 처럼 서로 지치지나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누나가 “수미가 시그널을 보이면 엄마한테 귀뜸을 줘서 창원으로 돌아가시도록 해라”라고 조언을 받기는 했지만

아내는 적어도 엄마에게 불편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내가 며칠 늦게 들어오다보니 아이 둘을 재우는 문제로 아내의 짜증이 가득했을 뿐.

지난해와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으려고 집에 일찍 들어와 내 역할에 집중한다.

뽀뇨를 붙잡고 잠재우는 역할까지 하는 것인데 그 전 시간까지는 엄마가 많이 도와주어

아내의 ‘하나’보기가 한결 수월한 듯하다.

 

아내의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밥을 한끼도 거르지 않는 엄마의 식성 때문이다.

특히 밥을 꼭 먹어야 하다보니 매일 매끼 시어머니 밥상을 차려야 하는 아내가 얼마나 고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엄마와 밥을 먹으며 선언(?)을 한 것이

 

“엄마, 매일 한끼 특히 아침은 밥 대신 빵이나 과일을 먹자. 과일 사는데 엄마가 (돈을) 좀 보태주면 좋겠네”.

 

그냥 하는 말투로 편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불편했는지 방으로 일찍 들어가셨다.

저녁에 들어와보니 아내가 왜 친정에 이야기를 했는지 장모님이 사위 혼내준다고 전화를 바꿔보라고 하셔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내 편을 든다고 했는데 내가 많이 잘못한건가?’.

‘내 가족인 엄마를 위해서라면 내가 아침 한끼 정도는 밥상을 차리겠다라고 했어야 했나’.

‘이놈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밥하기 싫어서 너 먹기 싫어하는 빵을 대령하든, 밥을 굶기든..’

하는 엄마의 원망소리가 귓속에 멤돌았다.

 

결혼을 하며 나는 이기적이게도 결혼식 부주까지 탈탈 털어 살림밑천으로 삼았고

멀리 제주까지 이사 와서 엄마 마음을 편치 않게 하였다.

살아오며 부모님 뜻을 크게 어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집을 꺾으며 살지도 않았다.

결혼을 하면서는 한번도 머릿속에 ‘엄마’를 입력하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그 엄마가 요즘 자연스럽게 울타리에 들어와 계신다.

얼마나 더 계실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에는 편하게 모시고 싶다.

 

나의 가족, 엄마.. 미안해요.

 

<엄마가 '하나'를 목욕시키고 두건을 둘러주셨다. 아내가 100일 기념으로 집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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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