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긴 터널을 걷다 뽀뇨육아일기

1. 나

 

한동안 혼자서 생활해야 하는 마음이 약한 아빠에게 지난 며칠은 참 힘든 기간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오전에 한창 작업을 하다 잠시 페이스북을 보니 배가 침몰했고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행이다하고 집에 왔는데 그 이후로 나는 TV도 켤 수 없었고 인터넷 뉴스도 제목만 보았다.

SNS도 링크를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는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어떻게 혼자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그냥 묵묵히 일만 하다보니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몇 명이 여행을 오거나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시 그 이슈로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어렵게 눈을 부쳐야 했다.

 

다른 기러기아빠들은 과연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방법은

안보고, 안 읽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많은 글들의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아플 정도여서

이 고통을 전 국민들이 겪는다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다만 아내가 이 뉴스를 안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어느 새 글을 읽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는 마음이 또 아파온다.

처음엔 프로필 사진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관련 내용들만 SNS상에 계속 올라오는 것을 지울까도 생각해보았다.

공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슬픔에 젖을 시간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2. 아내와 아이

 

다행히도 어린이날 연휴에 본 아내와 뽀뇨, 처가 식구들, 부처님오신날에 본 창원 어머니는 건강하였다.

간만에 만났는지라 사고이야기를 꺼낼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이제 한달이 되어가는 둘째는 ‘당신이 바로 나의 아빠에요’라고 호출하듯 새벽에 울었는데

나는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어디서 아이소리가 새벽에 들린담. 아이 귀아파’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아내의 한마디가 내 처지와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하나 분유 좀 타주세요”

 

뽀뇨 낳고 4년이 지난지라 분유를 어떻게 타는지 까먹고는 허둥지둥 하니 아내가 일러준다.

 

 “물을 4눈금만큼 붇고 끓기 전에 분유를 두 스푼 타세요”.

 

밤에 눈을 땡그라니 뜨고 찡얼거리는 하나와 며칠 있으니 아내가 백일동안 처가에 있겠다는 것이

내게 잘 된건가도 싶었다.

하지만 아내와 뽀뇨, 하나와 헤어질 때의 마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 동안 혼자 지내며 게스트하우스도 가보고 매주 성당에 가서 슬로푸드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새로 이사온 곳에서 사람을 사귀고 마음도 다스려야 겠다는 생각에 성당을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에는 마흔이 되는지라 마흔 전에 나의 라이프스타일 정의 내리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도 막상 진행하려니 마음이 참 허하다.

뽀뇨가 나와 함께 일을 다닌지 돌 지나고 2년 정도라 나름 아이돌보기에 자신이 생겼는데

 나는 지금 아내를 위해서, 하나를 위해서, 뽀뇨를 위해서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밤 하나의 울음소리에 밤잠을 깨야 하는 아내에게 분유를 타줄 수가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한편으로 백일이 되어야 온다는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도 든다.

 

3. 엄마

 

외롭고 긴 터널을 걷다보니 막상 멀리 있다고 챙기지 못한 가족을 이번 연휴에 보고 왔다.

바로 내 어머니다.

내 아이와 하루만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창원을 들릴까라는 생각도 접었는데

부모마음은 똑같은지라 장모님이 “내일 창원에 엄마 보러 가야 되는거 아냐?”라고 넌지시 말씀을 해주셨다.

솔직한 마음은 아이와 아내와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안갈 수가 없었다.

 

허리수술을 한 후 제대로 서 있기도 불편하고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는 엄마.

전날 저녁을 같이 먹고 초파일 절에 가는데 낮에 본 엄마 얼굴이 많이 늙어 있었다.

 

 ‘내가 아이 생각하듯 내 엄마도 나를 끔찍이 위했을텐데’.

 

지금은 무뚝뚝하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장성한 아들이 되어버렸다.

초파일 절에 가기 전에 수염을 깎으라 마라 신경전을 벌이다가 면도하고 절에 오르니

동네 할머니들이 반갑다고 아들 낳았다고 축하한다며 손을 잡아주신다.

동네 절에서 내려오자 마자 다시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제주에 와서도 마음이 편치 낳아 절을 두 곳이나 찾았고

그 중에 또 어승생악까지 올랐다.

서귀포 약천사에서 백팔배를 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혼자 있는 동안이라도 어머니를 모셔야겠다.

 

<뒷산 절에서 본 마을 풍경>

봉강마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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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