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독배’와 여인의 눈물 아침햇발

  2010년 10월15일자 아침햇발
 
여인이 눈물을 떨궜다.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몇해 전 탈북여성을 인터뷰할 때다. 북한이 시장 활동을 용인한 2002년 7·1 조치 이후 주민들의 삶에 대해 묻던 참이었다. 시장에 뛰어든 여인은 열심히 뛰었고, 먹고살 만해졌다고 했다. 희망도 보았단다. 하지만 2005년 이후 규제가 심해지면서 삶이 점차 어려워졌다. 발을 동동거리고 뛰어다녀야만 겨우 굶지 않을 수 있었다. 식당영업을 해보려 ‘뇌물을 고이고’ 계약을 했는데, 때맞춰 강화된 규제 탓에 장사밑천만 날렸다. 결국 여인은 ‘사랑했던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북한의 ‘3대 세습’ 논란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이 여인의 눈물이다. 비판하는 쪽이나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하자고 주장하는 쪽 모두 나름의 원칙과 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쟁의 한 축엔 분명 눈물짓던 여인, 바로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여인처럼 시장에서 활동해온 북한 주민을 필자는 ‘시장세력’이라 부른다. 이에 반해 당·군·관료 간부층과 노동자·교사 등 지식인층을 ‘정통세력’이라고 해보자. 2000년대 들어 북한의 가장 큰 사회변화는 정통세력만 존재하던 곳에 시장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크게는 7·1 조치의 영향이다.

 

정통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김정일 정권은 때로는 시장세력을 포용했고, 때로는 배척했다. 포용의 시기에 여인과 같은 시장세력은 삶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희망을 봤다. 하지만 정통세력이 시장세력을 배척할 때 이들의 생활은 팍팍해졌다.

 

김정은은 과연 시장세력을 포용할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 이것이 ‘김정은 논쟁’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돼야 한다. 이것만큼 북한 주민의 삶을 비롯해 한반도의 장래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경제체제인 북한에서 시장세력 포용은 ‘독배’로 느껴질 수 있다.

 

정세를 살펴보자. 9월 말 열린 당대표자회는 당 강령 서문에서 ‘공산주의사회 건설’과 ‘사회주의 완전 승리’라는 문구를 뺐다. 이는 김정은이 시장세력을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더 열어준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도 14일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북한 개혁의 새 국면’ 칼럼에서 장성택 등 개혁적 인물이 중요 직책을 맡은 점 등을 들어 “경제개혁과 북-미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흐름의 중요한 승리”라고 대표자회를 분석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중국을 살펴보자.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초창기에 정통세력과 시장세력의 갈등이 존재했다. 어떻게 이 갈등을 풀었을까? 답은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정통세력과 시장세력이 공존할 만큼 파이를 키웠다. 그 공존은 오늘의 중국을 만든 원동력 중 하나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마중물에 해당하는 외부의 투자였다.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도 발전하는 중국을 보면서 독배를 마시는 것이 유용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대미 적대관계 속에서, 정통세력과 시장세력의 갈등을 극대화할 과감한 개혁조치를 쉽게 취할 수 없을 뿐이다.

이제 ‘김정은 논쟁’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어떻게 하면 김정은이 시장세력을 포용하게 할 수 있을까? 세습은 비판하되 쌀은 주자, 규제가 아닌 경협을 확대하자. 햇볕정책을 다른 말로 풀어쓴 이 정책들이 김정은에게 독배를 들 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

 

그 독배는 북한 인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고, 북한 지도부에는 체제 안정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남한 주민들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줘야 하는 통일세가 아닌, 주머니를 더욱 볼록하게 할 경협 상대방을 얻게 된다. 남한 지도부도 동북아정책에서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햇볕은 여전히 모두를 승자로 만든다.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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