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천안함 보고서’를 기다린다 아침햇발

2010년 9월3일자 아침햇발

 

혹시나 하며 오늘도 <천안함 보고서>를 기다린다. 하지만 ‘역시나’다. 국방부는 이 보고서 발간을 여러 차례 연기한 끝에 8월말 배포를 예고했다. 그런데 9월이 시작됐는데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조만간 낼 것이란 말이 다시 떠돌지만 정확히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보고서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뒤틀린 한반도 정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남과 북은 현재 서로에겐 등을 돌린 채 각각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먼저 남한은 미국에 매달리는 양상이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에 실패하자 미국 쪽에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는, 유엔에 이어 미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면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미국의 청구서가 만만찮다. 자동차·쇠고기, 아프가니스탄 파병, 이란 제재 등 줄줄이 내줘야 할 것이 많다.

북한이라고 다르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근 창춘·하얼빈 방문은 중국의 동북3성 진흥전략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표시다. 2002년부터 본격화한 이 진흥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북한을 원자재 및 노동력 공급을 위한 ‘하위 파트너’로 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이루고자 하는 ‘강성대국’이 고작 동북3성의 하위 파트너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또 몇년 전까지 남한과의 경제교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대일 수교 때 들어올 배상금 등 여러 카드도 가지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이런 카드의 유용성이 크게 떨어졌고, 급기야 천안함 사건으로 쓸모없는 것이 돼버렸다. 남북은, 두 강대국의 자장에 급속히 빨려들면서 이렇게 ‘현재의 평화’뿐 아니라 ‘미래의 민족 비전’까지 잃어가고 있다.

그 핵심에 천안함이 있다. 그 이전까지 남북은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소통불능 상태에 빠지진 않았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은 정상회담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크게 좁혀버렸다. 남한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고 주장하고, 북한은 이를 모략날조극이라고 비판한다. 둘 중 하나는 분명 거짓말쟁이다. 그런데 서로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출구전략을 말하지만, 이런 상태에선 출구가 존재할 수 없다. 섣불리 정상회담 등을 출구전략으로 쓴다면 국민들 눈에 기만으로 비칠 뿐이다. 이런 막다른 길을 뚫는 유일한 출구전략은 ‘진실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천안함 보고서는 ‘진실의 출구’로 나가는 중요한 단서다. 국방부는 보고서에 합조단 발표 내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해왔다. 따라서 보고서는 ‘북한 어뢰설’의 진위를 좀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정작 이 중요한 보고서의 발간을 계속 늦추고 있고, 그사이 국론분열상은 더 심각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3월30일 합조단이 결성되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한달 보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반면 발표일로부터 지금까지는 무려 석달 보름이 다 돼가고 있다. 정작 중요한 판단은 얼렁뚱땅 해치우고, 그걸 정리하는 보고서 발간은 지나치게 지체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천안함 보고서를 하루빨리 내야 한다. 그리고 보고서는 철저히 국민검증의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이 보고서가 앞으로의 검증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김태호 총리 후보자처럼 각종 의혹만 더한 채 침몰해버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확인하는 것만이 국론 분열의 상처를 해소하는 해법이기에, 오늘 또다시 천안함 보고서를 기다린다. 얼어붙은 한반도의 출구를 찾는 마음으로.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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