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노래를 부르며 휴전선으로 떠나는 남북 젊은이들 연평도

제가 2009년 8월 <통일한국>이라는 남북관계 전문 월간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남한 청년들이 군대에 가면서 즐겨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를 북한 청년들도 군 입대를 앞둔 환송식에서 즐겨부른다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도 북한에 들어간 많은 남한 가요들처럼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떠나는 날의 맹세>가 그것입니다.

 

이 글의 말미에도 썼듯이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이 부모님께 인사한 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눈 채 마주보는” 현실이 참 가슴아픕니다.

 

이것이 최근 전해지고 있는 남북군사회담 소식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지난해 연평도 사태처럼 긴장이 고조된다면,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우리 젊은이들이 친구가 될 날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보근의 평화이야기 운영자 김보근 드림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하면, 모여 있던 친구들이 곧 한 목소리가 된다. 내일이면 군 복무를 위해 떠나갈 친구를 위해서다. 우리 주변에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은 남한에서 벌어지는 ‘군 입대 환송회’ 모습이 아니다. 바로 북한에서 진행되는 ‘초모생(군입대자) 환송식’의 한 장면이다. 남한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이 노래는 남한의 군 환송식에서 불릴 때는 제목이 <이등병의 편지>지만, 북한에서 불릴 때면 <떠나는 날의 맹세>가 된다. 김광석의 이 노래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달됐고, 이름이 바뀐 채 ‘초모생 환송식’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가 돼 있다고 한다(데일리엔케이 2008년 4월28일).

올해 들어 <떠나는 날의 맹세>를 부르는 북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북한 당국이 ‘초모(招募·신병모집) 사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국방’이 더욱 강조되게 되고, 이런 ‘국방’에 대한 강조는 젊은이들에 대한 초모사업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4월초 로켓발사를 한 이후 초모생 환영회가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북한에서 올해 초모사업은 로켓발사의 여파로, 첫 입소 날짜가 4월8일로 예전에 비해 늦어졌다고 한다. 또 행사가 예전에 비해 큰 규모로 진행됐는데, 이는 “국가에서는 ‘초모생들이 위성 강국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영식을 큰 판으로 조직하라’는 별도의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데일리엔케이 2009년 4월13일).

북한 당국은 또 초모사업에 열성으로 참여한 ‘모범 가정’을 소개하는 일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모범’을 창조함으로써, 초모생들을 늘리고, 사회적으로도 긴장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동신문> 7월1일치 기사 ‘혁명대학으로 떠난 오누이’다. 여기서 ‘혁명대학’은 바로 군대를 가리킨다. 이는 “인민군대는 혁명의 대학이다”라는 김정일의 어록에서 따온 말로서 “군사복무야말로 사회적 인간의 성장과 완성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교육단계”라는 뜻이다. 기사는 평안남도 평성시 양지동 144 인민반에서 사는 리성률, 리인숙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부부는 모두 제대군관과 제대군인 출신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남매를 모두 초모생으로 군대에 보냈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 금성이는 아버지가 섰던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고, 딸 금향이도 어머니가 섰던 초소로 떠나갔다.” 즉 아이들이 예전 부모가 근무했던 바로 그 군부대에 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두 부부의 특별한 소망에 따른 것이다. 두 부부는 자기들의 섰던 초소에 아들과 딸을 세우면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조국의 아들딸로, 혁명의 기둥으로 억세게 성장해갈 자식들의 희망찬 앞날을 확신”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매를 모두 군대에 보낸 이 부부의 사연에 대해 청진에서 무역업을 하던 40대 남성 새터민은 “북한에서 군대는 대학 진학과 입당, 그리고 농촌 탈출 등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북한의 대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또 농촌출신이 군대를 제대하는 경우,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진학·직장배치 등을 통해 도시로 진출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이건 이렇게 공식적인 노력과 선전의 뒤에는 비공식적인 행위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초모행사와 군입대’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군부대가, 리성률, 리인숙 부부의 바람과는 달리, ‘혁명대학’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량사정 등이 악화되면서 군에 간 많은 아이들이 영실이(영양실조자)가 되는 현실에서 상당수의 부모들은 군에 보내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286호(2009년 7월7일 발행)가 전하는 ‘이혼당할 위기의 군관들’은 특히 현재 북한 군대의 나빠진 식량상황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기사는 강원도 5군단 5사단 10련대와 7련대에서는 이혼 당할 위기에 처한 군관이 약 20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사연은 이렇다. 10련대와 7련대에서는 지난해 3월 식량 사정이 매우 곤란해지자, 38세 미만 젊은 군관들에게 아내를 아내의 본가(친정)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들은 아내를 보낸 뒤 5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여성들이 “더 이상 먹을 게 안 나오는 군관들과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급기야 아내가 돌아오지 않은 군관들이 아내를 찾아 처가에 다녀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혼자 돌아온 사람이 18명이나 됐다. 이에 따라 이 부대에서는 지난 6월10일, 이들에게 각자 자신의 아내를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선군 정치 령도로 인민군대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데 인민군 군관들에겐 결코 이혼이란 있을 수가 없다”며 휴가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탈영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오늘의 북한소식> 217호(2008년 9월24일 발행)은 강원도 원산시 칠봉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병훈련소에서 초모생들 30여명이 탈영한 이야기를 전한다. 발단은 같은해 7월22일 초모로 입대한 신병에게 지급된 군복 일체를 곧 제대할 군인들에게 주고, 제대군인들이 입던 낡은 군복을 신병에게 입힌 것이다. 당장 제대해야 할 군인들이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자, 후방부 피복공급장들의 제안에 따라 신병들의 옷과 바꾸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신병 중 30여명이 “배도 고픈데 군복 같지 않은 군복으로 바꿔 입으라고 한다”며 탈영했다는 것이다. 역시 식량난 속에서 군부대 생활이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평양의 한 기업소에서 핵심 간부를 지낸 40대 중반의 여성 새터민은 이런 군대의 현실과 군을 다녀와야 대학에 들어가는 북한의 교육현실 속에서 고민하다, 아들을 잠깐만 군대에 보냈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무조건 군대 다녀와야지 대학에서 받는 거예요. 저희 아들도 군대를 잠깐 다녀왔어요. 냄새 피우느라고, 대학가려면 그 경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잠깐 갔다가 와서 대학에 갔어요.” 이 새터민이 택한 방법은 ‘개별제대’, 남한에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경우 받게 되는 ‘의가사 제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개별제대’에 들어간 돈은 300달러였다고 한다. 대학 들어갈 때 주로 500달러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높지 않은 뇌물 수준이다.

하지만, 남북한 긴장 고조는 꼭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에서 그 만큼 긴장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남한에서의 긴장도 강화되기 마련이다. 남한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군 지휘부가 한 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말하면서, 군인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남한에서도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군에 입대할 것이다. <떠나는 날의 맹세>를 부르는 북한의 젊은이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남한의 젊은이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이 부모님께 인사한 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눈 채 마주볼 것이다. 그들 자신이 바로 그 노래 속의 ‘친구’가 돼야 하는데도 말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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