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못난 찌질함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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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아침 씩씩대며 집을 나섰다. 옴팡진 감기에 걸린 온가족을 뒤로 한 채 나선 출근길에 마음이 가벼울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씩씩대는 건, 그냥 속상해서다.

“도대체 날 뭘로 보고!”(씩씩)

5분 전 상황. 긴 코트를 입으려 보니 맨위의 단추가 없었다. 며칠 전 단추가 떨어진 걸 알고 아내에게 수선을 부탁했는데…, 쩝. 할 수 없이 전날 입은 얇은 코트를 다시 꺼냈다. 아무래도 추울 것 같아 스웨터도 입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아내가 부스스 깼다. 

“나 갔다올게.” 
“잠깐만.” 
“응?” 
“색깔 안 맞아. 스웨터 다른 거 입어.”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퉁명스레 내뱉는 아내의 그 말이 참 야속했다. 예전엔 출근하는 거라도 보겠다고 일어났건만, 녹화있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코디해준다며 미리 풀세트를 걸어뒀건만, 언제부턴가 이렇게 돼버렸다. 못내 스웨터는 갈아입으면서도, 결국 입밖으로 한마디 새어나왔다.

“애들 감기인데 가습기도 안 켜놓고 뭐했어.” 

감기에 걸렸는데 이불도 안 덮고 자는 두 아이가 가뜩이나 눈에 밟힌 터, 소심하나마 나름 역공이었다. 본인도 감기에 걸린 아내는 
“알았어” 
하고는 다시 누워버렸다. 
“코트 단추도 그대로던데?” 
답이 없다. 승부는 원점. 야속함은 풀리지 않아 씩씩대며 집을 나섰다.

아침식사는? 진작에 내가 차려먹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우린 결혼할 때부터 식사준비나 설거지, 청소 등의 담당을 정한 바 없다. 맞벌이 부부는 서로 바쁘니 ‘빵꾸’가 나기 십상이다. 밥짓기 전담인 아내가 매일같이 야근이면 남편 밥은 어쩌나? 분리수거를 맡은 남편이 그날마다 회식이면 재활용쓰레기는 어쩌나? 그냥 뒀다간 감정만 상하기 마련이다.

우린 그냥 ‘시간 있는 사람’이 하기로 했다. 신혼 때부터 아침식사는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준비했다. 주로 내가 일찍 일어나선 없는 실력으로 밥상을 차렸다. 저녁은 대개 밖에서 해결했고, 좀 일찍 퇴근한 아내가 세탁기를 돌리기도 했다. 다만 아내가 ‘거부’를 선언한 음식물쓰레기와 화장실 청소 따위는 내가 전담했다. 우린 서로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모순이 생겼다. 밤낮없이 육아에 시달리던 아내, 집에 하루종일 있었다고 설거지와 청소도 맡아야 할까?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아이를 맡아키우던 나, 아내 퇴근 때 저녁을 차려야 할까? 결국 육아를 전담하는 쪽을 ‘시간있는 사람’으로 볼 것인가의 고민이었다. 딱히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나마 나도 육아휴직으로 역할 교대를 해봤으니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생각해보니, 둘째 출산 뒤 프리랜서로 돌아선 아내의 육아전담이 길어지고 있었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늘 바깥일을 한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시간 없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도 내 것만 준비할 뿐이다. 매일 늦은 밤에나 들어오니 설거지나 빨래를 해본 지도 한참이다. 주말에 아내가 일하러 가면 두 아이를 혼자 볼 때도 있다. 그제야 그게 힘들어서 아내도 ‘시간 없는 사람’임을 겨우 깨닫지만, 그때 뿐이다. 그게 평소 아내의 일상이라는 생각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 씩씩대며 집을 나선 지 2분도 되지 않아 나의 찌질함을 반성했다. 밤에 집에 와서 바로 잠들지 않고 가습기를 켜겠다며, 주말엔 빨래와 설거지를 하겠다며 다짐도 한다. 아내에게 문자도 보낸다. 
“주말에 단추 달러 수선집 갈 건데, 다른 옷 고칠 거 없어?” 
답이 온다. 

“내 코트도 단추 떨어졌어.” 
미안. 쩝. 아! 미안!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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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