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하는 일 알고보니, 뜨아 책읽기

스테인리스로 가득한 영안실. 어느 미국인이 한국인에게 청소를 제대로 못했다고 꾸짖는다. 한 쪽에 먼지가 쌓인 포름알데히드 병을 들어보이며 '먼지가 쌓여 있으니 버려'라고 명령한다. 한국인은 그것을 여기서 버리면 한강으로 곧장 흘러들어간다고 항변하지만 미국인은 '한강은 넓다'며 '마음을 크게 가지라'며 오히려 큰소리다. 순간 소심한 남자가 되어버린 한국인은 수십병의 포름알데히드를 싱크에 쏟아 넣는다. 1300만명이라는 기록적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괴물'의 첫장면이다.

이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2000년 미8군에서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 20박스를 하수구로 버린 것이었다. 포름알데히드는 전세계적으로 규제하는 유해물질로 농도에 따라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암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이를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수구에 버린 것은 서울시민에 대한 엄청난 범죄였다.

누가 이 사건을 알렸을까? 바로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이었다. 녹색연합은 1996년부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미군 기지 주변의 풀숲을 뒤져 하수관을 찾아 수질을 측정하고, 기지 주변 민가의 옥상에 올라가 뙤약볕 아래서 소음을 측정하고...'(본문 227쪽) 그런 조사들을 묶어 최초로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조사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단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사건들은 알지 못한 채 영영 묻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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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인
녹색연합 지음/북센스 15,000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책의 추천의 말에서 '오늘날 우리가 꼭 되새겨봐야 할 한반도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이며,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녹색연합은 올해로 21년째 되는 '노장' 환경단체로 20주년을 기념해 활동해 온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추려 책으로 냈다. 이 책에는 박원순 시장이 추천하는 것처럼 생태이야기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책은 '숲길에 대한 예의'로 첫번째 장을 시작한다. 그들이 말하는 숲길은 '하루 80명만 지나갈 수 있고... 오직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산새소리, 구름과 바람 소리만 존재하는 길'이다. 2007년부터 준비한 울진의 '금강소나무 숲길'이 많은 논의를 거쳐 그렇게 변한 것이다. 녹색연합과 (사)울진숲길, 산림청, 울진군, 지역주민이 모두 힘을 합하여 만든 '주민 참여형 숲길 제1호'이며 전국의 숲길에 모범이 될만하다며 스스로 말한다.

'걷기 열풍'이 불며 수많은 '길'이 생겨났고 부작용도 줄줄이 드러났다. 곳곳에서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녹색연합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로 '울진 숲길'사업에 참여했고 훌륭한 성과를 낸 것이다. 또, 멀리만 갈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찾아다녔는데 서울성곽 순례길이 그렇다. 이 길과 관련해서는 <서울성곽 순례길>이라는 안내지도를 제작해 관광안내소 등에 배포하기도 했고 <서울성곽 걷기여행> 단행본을 내며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리기도 했다. (다만, 책 내용에 '왜 걷게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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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숲길은 '주민 참여형 숲길 제1호' 길이다. 왕래가 거의 없고, 멸종위기인 산양이 살고 있는 이 길에 지방도 고시가 된 것을 '걷는 길'로 바꾼 것이다.



백두대간 보호법에 관한 그들의 활동은 진심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1995년부터 백두대간의 자연생태계를 파악하고 보전대책을 세우기 위해 꾸준히 관찰하고 논의'한 결과 2003년 11월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길이 약 670km, 넓이 26만 헥타르가 '백두대간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백두대간 보호구역은 '세계적으로 드문 거대한 자연벨트'라고 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백두대간이 그런 엄청난 법률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거니와 그런 보호구역을 만드는데 조그마한 환경단체의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도 잘 알지 못한다. 이 법 덕분에 우리나라 국토의 생태축인 백두대간이 막무가내 개발로부터 일정부분 보호되고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체계적인 관리가 부족해 훼손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로드킬, 천성산 꼬리치레 도롱뇽, 살아있는 화석 산양, 광산, 골프장, 무분별한 도로건설, 점박이 물범, 태안 유조선 기름유출 사건, 갯벌 이야기, 4대강 사업 관련 활동, 군소음 이야기, 비무장 지대, 핵에너지, 마을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 등 읽을거리가 아주 많다. 20년간의 활동 중 몇가지를 추려낸 것이라서 그런지 그냥 넘길만한 부분이 없다. 모두가 중요한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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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캠페인을 벌인다. 위 사진은 설악산 대청봉.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화가 치미는 것이다. 하나같이 '나'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파괴는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즉 '환경'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사라지고 그런 생태계에 속한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활동가 30여명 내외의 크지않은 환경단체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환경문제들을 다뤄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이 많지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단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또 이들을 후원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그나마 희망을 갖는다.

자연의 파괴를 막고 자연스럽게 사는 일, 환경단체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실천해야할 일이다. <아름다운 지구인>이 우리나라 곳곳에 생겨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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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채색입니다. 봄마다 피어나는 새싹처럼 조화롭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