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냐 친구냐를 부모에게 배우는 아이들 그림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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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우리 마을에는 유난히 귀뚜라미가 많아서

날이 어두워지면 베란다 창틀에 난 비 구멍으로

귀뚜라미들이 집 안으로 속속들이 들어온다.

 

하루 평균 다섯 마리 정도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데

펄쩍 펄쩍 뛰고 날아다니는 이 귀뚜라미들을

어떻게 잡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입구가 넓은 플라스틱 통으로

귀뚜라미가 있는 자리를 덮은 다음

밑에 판판한 판을 귀뚜라미 아래로 밀어 넣어서

통과 바닥의 판을 같이 들고 밖으로 나가

풀밭에 보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벌레나 곤충을 잘 못 잡는 내가

너무 긴장을 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도 덩달아 무서워하고 도망을 가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은 귀뚜라미가 들어오면

“놀러 왔어?”

하고 말하며 조심히 플라스틱 통을 덮어

판을 받쳐서 들고 풀밭에 나가

잘 가!” 하고 보내주는 것을 보더니

 

아이들도 같이 잘 가! 또 만나!” 하고 인사를 하고

예전처럼 무서워하면서 도망가지 않는다.

 

귀뚜라미가 들어온 것을 보면 여전히 놀라기는 하지만

빨리 없애야 되는 무서운 적이 아니라

잠시 우리 집에 놀러 왔고

우리가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풀로 다시 보내 주어야하는 친구로 생각한다.

 

내가 귀뚜라미를 1층 풀밭에 혼자 버리고 돌아올 때면

바다가 엄마, 잘 가라고 인사했어?” 하고 꼭 묻고

풀밭으로 돌아간 귀뚜라미를 보고는

다행이다~ 아휴~ 잘됐다~!” 하고 행복하게 웃는다.

 

하루는 늦은 밤에 귀뚜라미를 발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내주려고 플라스틱 통을 덮어두었는데

하늘이가 일어나서 귀뚜라미를 보자마자

우따미 보내줘~ 우따미 보내줘~”해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

귀뚜라미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귀뚜라미가 집에 들어올 때 마다 싫어하고

잡아서 보내주면서도 다시는 오지 마!” 라고 했다면

아이들은 지금처럼 귀뚜라미한테 다정한 인사를 할까?

 

내가 귀뚜라미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아이들은 고스란히 배우고 따라하니

귀뚜라미를 적으로 만드느냐 친구로 만드느냐는

온전히 부모가 보여주는 태도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중에는 내 옆에 있는 친구와 내가 적이냐 친구냐

내 주변 나라와 내가 적이냐 친구냐도

아이가 부모에게서 배운

작은 귀뚜라미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 일거다.

 

이런 배움들이 아이들의 삶을 만들고

이 아이들의 삶이 세상을 만들 것이기에

어찌 보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가장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참 부끄러운 모습이 많지만

참 미안한 모습이 많지만

 

귀뚜라미를 다정하게 맞이하고 보내주는

내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 모습을 배우고 따라하는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힘을 내어 내 삶의 자세를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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