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냐 자전거냐 생생육아 칼럼

다엘의 학교 아이들 사이에 게임 열풍이 불었다.
디지털 기기를 접하면서 게임이나 카톡을 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이로 인해 학생들 간에 소외와 갈등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학교에 오면 규칙상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아이들이 모여서 게임 얘기에 몰두하는 일이 잦아졌다.

 

교사회에서는 이런 상황에 제재를 가하는 대신
‘게임 뇌’의 문제점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 해결하게끔 기다려 주었다.

 

고학년에서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하지 않는 아이는 다엘 뿐이었다.
토론 시간 중 ‘게임에서 이기면 기분이 업 돼서 좋다’고 한 친구의 말에
다엘은 ‘기분은 업 되지만 시력은 다운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접점을 찾았다.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대에, 10분만 게임 얘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학년모임에서 부모들도 다양한 입장을 나누었다.
여학생들 사이에는 카톡으로 인해 마음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남학생들은 게임을 절제하지 못하거나 불량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문제점,
한편으론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아이들이 이를 적절히 다루면서 절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 등
부모 자신의 생각과 자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좀더 고민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의 토론은 밤 깊어서 까지 이어졌고
나는 고령의 체력을 감안하여 먼저 일어섰다.

 

대안학교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한계 바깥을 수시로 엿볼 수 있다는 점,
나처럼 외골수에다 끝까지 참석 못하는 부모도
왕따 시키지 않고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포용하는 것.

 

며칠 후,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한 아이와 다엘,
이렇게 두 명은 선생님의 칭찬과 함께 친구들의 박수를 받았다.

 

스마트폰이나 게임보다도 요즘 다엘은 다른 일에 흠뻑 빠져 있다.
오래된 자전거가 망가져서 부품이 따로 놀길래
얼마 전 새 자전거를 사줬더니
밤이나 낮이나 목숨을 걸고 타고 노는 것이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검붉게 멍이 들 정도로.

 

등교할 때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가고
집에 와서는 가방을 던져놓고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해 놀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요즘은 친척 집에서 주 1회 알바 노동을 시작했다.
노동 조건 계약을 하면서 다엘에게 자신의 일당을 제시해보라 하니
‘천 원’을 불러 바로 낙찰됐다.
헌 책을 분류하고 묶어서 중고서점에 내다 팔 수 있게끔 돕는 일인데
무거운 책 운반까지 거뜬히 하고 있다.

 

알바.png » 다엘이 첫 알바로 분류하고 묶은 헌 책 더미.

 

육체노동이 좋다고 평소 말한 대로
다엘은 지치는 기색 없이 열심히 일 하면서,
일당 천 원에다 많은 선물과 저녁까지 얻어먹고
뿌듯한 얼굴로 돌아오곤 한다.

 

한편으론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별개로
다엘에게 원천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차단한 데서 오는 부작용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음성적으로 접하거나
남보다 뒤늦게 하게 됐다는 보상심리로 더 몰두할 가능성은 없을까?
친구들 대화에 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더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디어에 접하게 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독일의 뇌과학자 슈피처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마치 맥주와 와인이 우리 사회와 문화의 일부이니
어린이들에게 유치원에서부터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르치기 위해
맥주와 와인에 먼저 적응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는 것이다.

 

반기술주의의 극단적 사고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수많은 사례와 엄격한 실험 결과들을 가지고 차분히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한국 학생들의 상황에 대해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의 디지털 미디어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 한국의 경우, 2010년에 이미 학생들의 12퍼센트가 인터넷에 중독되었다. 한국에서 ‘디지털 치매’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한 값을 이미 치른 것이다.’ (책 ‘디지털 치매’ 중)

 

섬찟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부모의 길은,
다른 이들의 선택에도 관심을 갖되
자신이 최종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냥 가는 것이다.

 

주류가 아닌 쪽을 택하는 건 늘 모험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것도 그랬고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지금의 결정도 그렇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뭐가 보일지 잘 모르지만
뒤따라 가면서 본 아이의 모습이 건강하다면
흔들리지 않고 가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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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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