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방법 생생육아


한 해의 마지막날, 매년 그랬듯이 거실에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
카매라를 셋팅해 놓고 타이머를 눌러 사진을 찍을때마다 누군가는 장난을 치고,

누군가는 화를 내느라 들썩들썩 아우성이었다. 매년 비슷한 풍경이다.
웃고, 장난치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벌떡 일어서고, 다시 앉고, 또 웃고, 또 화내고, 삐지고
성질내고.... 이렇게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때  그래도 다시 한번 더 찍자고 마음을 모아서

이 사진 한장  건졌다.  다섯 식구가 한 장의 사진속에 보기 좋게 들어앉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찍고 나면 뿌듯하다. 한 해, 다들 많이 컸구나 느껴진다.
남편도 나도 애 많이 썼구나.. 싶다.
1년 동안 잘 간직하며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볼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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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가족 상장 수여식.
한 사람당 네 장의 상장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수여한다. 상 이름과 내용은 그 사람이 정한다.
매년 어떤 상을 받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제일 먼저 막내 이룸이가 오빠에게 상을 주었다.
이룸이가 오빠에게 준 상은 '꽃미남 상'

      

' 이 사람은 너무 나도 잘 생겨서 이 상을 수여합니다'
이룸이가 이 글을 읽는 동안 필규는 온 몸을 비틀며 몸부림쳤다.
"으악.. 이 상 받기 싫어. 난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안들려"
늘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말하는 막내는 작년까지도 오빠와 결혼하겠따다고 하더니
올해 드디어 '강 다니엘'로 결혼상대를 바꿨다. 그래도 최고의 꽃미남은 여전히 오빠란다.
귀여워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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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가 내게 준 상은 '웃긴 실력 상'이다.
'이 사람은 웃긴 실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겨 주었으므로 이 상을 수여함'
언제나 저를 웃게 하는 엄마로 인정해 준 것 같아 마음이 흐믓했다.
아빠에게는 '폭신이 상'을 주었다.
'이 시림은 배가 폭신 폭신 해서 이 상을 수여함'
아빠의 넉넉한 배를 사랑해주는 이쁜 마음이다.
언니에게는 '우쿨렐레 상'을 주었다.

      

언제나 가장 참신하고 예측 하기 어려운 상을 주는 필규는 올 해 아빠에게 '침묵은 금이다'상을 주었다.
'위 사람은 나와 엄마가 싸울때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 하였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이 내용을 듣다 푹 웃음이 터졌다.
필규랑 싸울때마다 방관하는 남편이 늘 야속했는데 필규는 그게 고마왔떤 모양이다.
하긴 남편이 침묵을 지켜주어서 싸움이 늘 더 커지지는 않았다. 잊지못할 상 이름이다.
그리고 아들이 내게 준 상은.....
'짜증의 제왕상'이다. ㅠㅠ
지난해에는 '잔소리의 제왕상'을 받았는데 2년 연속 이모양이다.
'위 사람은 거의 매일 화를 내었지만 언제나 쉽게 풀어줘서 이 상을 드립니다' 란다.
흠... 그래도... 워... 결국에는 칭찬인거지? 나쁜 말은 아니지? 버럭 거리고 금새 깔깔거리는
엄마인걸 뭐.... ^^
이룸이에게는 '생기발랄 상'을 주었다.
'위 사람은 언제나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개구장이 막내 동생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윤정이가 오빠에게 받은 상은 '가운데 상'이다.
'위 사람은 나와 이룸이 사이에서 고생하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아아... 녀석... 이런 생각을 다 해주네. 기특하다.
늘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서 힘든 윤정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이다. 윤정이도 뭉클했겠다.
상 제목과 내용을 보면 1년 동안 필규 마음이 자란 부분이 또 보인다.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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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장을 가장 정성스럽고 재기발랄하게 만드는 사람은 윤정이다.
이번에도 그 상에 맞는 그림도 그리고 가장자리도 이쁘게 장식한 윤정이의 상장은,윤정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윤정이가 내게 준 상은 '우리집 의사상'이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아플때마다 항상 옆에서 돌봐주어 뜨거운 모성애를 보여주어 이 상을 드립니다'
여름에 세 아이 모두 수두에 걸려 학교에도 못 가고 앓았을때 내가 애써준 것을 고맙게 여겨준 것이다.
아빠에게는 '우리가족 사랑상'을 주었다.
'우리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셔서 이 가족사랑상을 드립니다.'라는
글 아래 아빠 품 안에 있는 네 식구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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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특한 딸에게 상을 받은 남편은 윤정이를 꼭 안아 주었다.
윤정이가 이룸이에게 준 상은 '드디어 학교상'이다.
'우리의 이룸이는 올 해 학교에 들어가 행복한 1학년을 보내서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써 있었다.
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즐겁게 잘 다녀준 동생을 인정해 준 상이다.
오빠에게는 '만능 엔터테이너'상을 주었다.
'우리 오빠는 중학교에서 연극, 영어, 기타, 그리고 학원 바이올린 까지 다재다능해 이 상을 드립니다'
라고 했다. 저를 자주 힘들게 하지만 오빠의 노력과 성과는 늘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따듯한 윤정이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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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남편과 나는 내내 냉전중이었다.
그래서 가족상장 수여식도 망치늰게 아닌가 내심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가족 사진을 찍기 전까지도 남편의 얼굴은 몹시 굳어 있었는데 카매라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장난치며 투닥 거리는 아이들 모습 보며 마음이 풀렸다. 나는 안심을 하고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상장을 만들었다.
내가 남편에게 준 상은 '바다같은 배려상'이었다.
'당신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언제나 관대하고 큰 인내를 보여줍니다.
그 마음이 모든 식구들을 넉넉하게 품어줍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그 사랑과 배려에 같은 마음으로
보답할께요. 사랑해요' 라고 적었다.
남편은 몹시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받았다.
남편에 대해서 정말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한 해 동안 진심으로 남편의 애정과 인내, 보살핌에
큰 힘을 얻었다.
새해에는 새 마음으로 더 사랑해야지.. 이 사람..

      

윤정이게는 '쑥쑥 성장상'을 주었다.
'윤정이는 올 해 연극, 우쿨렐레, 바이올린, 수영, 어린이 사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든든하고 예쁜 소녀로 자라난 우리집 큰 딸은 언제나 엄마, 아빠의
자랑입니다. 사랑해'라고 적었다.
윤정이는 기쁘게 환하게 웃었다. 나는 꼮 안아주었다.
내년에는 열두살이 된다. 내 첫 딸.. 이만큼이나 대견하게 자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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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에게는 '사랑의 공기상'을 주었다.
'이룸이는 아빠나 엄마가 지쳐있거나 몸과 마음이 슬프고 힘들때마다
제일 먼저 다가와 안아주고 위로해줍니다. 따스한 공기처럼 마음을 채워주는 이룸이가 있어
늘 힘이 됩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막내를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룸이는 엄마 아빠의 기분을 잘 살피고 잘 느낀다. 내가 남편과 싸우고 우울할때면 언제나 이룸이가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준다. 남편에게도 그렇다. 이 어린 딸에게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마음을 자주 의지했는지 모른다. 1년 동안 가장 눈부신 성장으 보여준 막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필규에게는 '최우수 연기상'을 주었다.
'필규는 학교 축제에서 1년간 열심히 연습한 연기로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늠름하고 멋지게 자라주는 모습이 언제나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은하계에서 제일 잘생긴 우리 아들, 사랑합니다'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필규는 은하계에서 제일 잘생긴 아들이라는 대목에서 그만 못 참고
몸을 배배 틀며 뒹굴었다. 가족에게 잘 생겼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보이는 반응이다.
훗.. 녀석, 속으로는 좋으면서..ㅋㅋ

12월 30일날 있었던 학교 축제에서 필규는 1년간 연습한 연극 '동막골'에서 촌장역을 훌륭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연기를 하는것은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질색해 하던
아들은 긴장과 떨리는 것을 무릎쓰고 제 역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그 무대를 위해서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성향과 얼마나 싸워왔을지,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얼마나 애써 극복했을지 느껴져서 뭉클하고
대견했다. 백상연기대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상..
남편에게 상장을 받을땐 언제나 조금 떨린다. 1년동안 내가 못한것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게 늘 후하다.
이번에도 ' 오직 한결맘 상'을 내게 주었다.
'2017년 한 해 우리 가족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준 은혜 함께 간직하고파
이 상을 드립니다.'
아... 찔린다. 사실 한결같지 못했는데.. 늘 정성을 다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리라. 뜻밖에도 남편은 가족 모두에게 상장과 더불어
상품으로 핫팩과 램프 기능까지 있는 아이리버 보조 배터리를 준비해서 아이들을 열광하게 했다.
흥..언제나 새로운 물건으로 아이들 마음을 빼앗는 남편이다. 그래도 이번 선물은 나도 기쁘게 받았다.
센스있는 선물이었다.

새해에는 쉰 둘이다. 우리 남편...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도 열심히 도와줘야지.

남편은 세 아이들에게 모두 '늘 한결같은 마음상'을 주었다.
이룸이에게는 늘 우리가족을 웃게 하는 이룸이의 명랑함을 칭찬했고, 윤정이는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4학년 생활을 잘 마쳐준 성실함을 짚어 주었다. 필규에게는 학교와 집에서 열심히 생활해준 모습을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에겐 나보다 늘 넉넉하고 다정한 아빠의 상장은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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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하는 남편 손을 꼭 잡고 부부사진을 찍었다.
2016년 보다 2017년에 우리는 더 사이가 좋았다. 새해엔 더 좋을 것이다.
서로의 소중함을 나이가 들수록 새삼 더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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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그리고 이 아이들...
나를 제일 힘들게 하고, 나를 제일 벅차게 하는 이 특별하고 소중한 영혼들...
1년 동안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마음은 또 얼마나 깊어졌는지 감동하고 감동했다.
수없이 다투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이 셋은 서로를 몹시 아끼고 좋아한다.
자랄수록 우리 부부에게 든든하고 유쾌한 친구들이 되어간다. 그게 참 뿌듯하고 고맙다.
여덟살, 열한 살, 열 다섯살도 좋았지만 아홉살, 열두살, 열 여섯살의 날들은 더 신나고
재미난 이야기들로 채워갈 것이다.
고맙고, 고맙다.
사랑한다.
      

내 아이들을,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들어주고 살펴주며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수많은 이웃들의 애정과 관심에 감사드린다.
새 해에도 열심히 뜨겁게 살아가며, 사는 내내 마음의 키가 커 지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 공간을 아껴주는 모든 분들의 새 날에 밝은 빛이 함께 하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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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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