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을 깨운 ‘똥덩어리’ 짬짬육아

 





70a7546fe7d10d98afb8d6b4871b775e. » 토요일, 튜브형 욕조 안에서 녀석은 신나게 놀았다.



일요일 아침. 녀석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7시50분. 평소 같았으면 냉큼 일어났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어제 튜브용 욕조에 바람을 넣고 물을 붓고 녀석의 물놀이를 위해 너무 무리를 했다. 어젯밤 친구와 술 한 잔 하고 들어온 아내는 건넌방에서 자고 있다. 엄마가 안 보이자, 녀석은 아빠라도 일으켜 세우려고 이불을 잡아끈다. 난 마지못해 일어나 <교육방송>을 틀어주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애한테 항상 책이나 신문을 읽는 고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초심은 집 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아예 아이에게 티브이를 틀어주고 단 10분이라도 더 자려는 ‘불량아빠’가 됐다. 요즘 이러고 산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녀석이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는 한 마디 던졌다.

 “아빠, 똥 쌌어요.”

 “뭐? 똥 마렵다고? 그럼 똥 싸야지.”

 분명 녀석은 “똥을 쌌다”고 얘기했지만, 잠이 덜 깬 난 녀석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려고 주섬주섬 일어섰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살펴보니, 반투명 인견으로 만든 녀석의 잠옷바지 안쪽엔 똥이 묻어 있었다. 바지를 내리니 엉덩이와 다리에도 똥이 묻었다. 잠이 확 깼다.

 

 실수를 한 녀석의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아이를 방치한 게 미안한 난 그냥 웃기만 했다. 녀석을 욕실로 데리고 가 씻겼다. 다 씻고 마루로 나온 녀석은 갑자기 소파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또 한 마디 던졌다.

 “여기도 똥 있어요~.”

 

 혹시... 녀석의 뒤를 따라가 보니, 소파 앞에 어른 주먹만하고 시커먼 똥 두 덩이가 떨어져 있다. 단순히 똥을 바지에 지린 수준이 아니라 작정하고 마루에서 똥을 눈 것이었다. 너무 커서 맨손으로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도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모래놀이용 국자와 포크를 양손에 들고 살포시 들어올렸다. 생각보다는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사건 처리를 다 한 뒤, 녀석의 범행 경위를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녀석이 처음 “똥을 쌌다”고 신고할 때 즈음에 <교육방송>에서는 ‘모여라 딩동댕’이 방송 중이었다. 음... 녀석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외면했을 가능성이 컸다. 똥을 눴던 바로 그 지점 주변을 살펴보았다. 소파 위에 요즘 녀석이 다시 읽어달라던 <자동차백과> 그림책이 있었다. 그랬다. 녀석은 ‘모여라 딩동댕’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소파 위에서 <자동차백과>를 보다가 변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바지에 한 차례 똥을 지린 뒤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싼 게 틀림없었다. 녀석은 과거에도 무슨 일에 집중을 하면 오줌을 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또 다른 범행 동기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범생 아가’에서 ‘떼쟁이 형아’로 변신하고 있는 성윤군. 최근에는 엄마 아빠의 훈계성 발언에 “그렇게 나쁘게 말하지 마!”라고 응수하거나, 그 자리에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일이 늘었다. 한 번은 그런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방치해 놓았더니 녀석은 갑자기 엎드린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그날은 정말 화가 나서 많이 혼냈다) 자신의 불만과 저항을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가장 충격적으로 분출해버린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의 ‘똥 사건’도 어쩌면 휴일에 자신을 돌봐주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그저 똥을 쌌다는 사실만 아는 아내가 다시 녀석에게 “왜 똥 쌌냐?”고 물어보니 녀석은 쿨하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모르겠는데~.”

 

 똥을 싼 건 확실한데 왜 똥을 쌌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될 것인가...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녀석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똥 사건’은 없었을 거라는 점. 어쨌든 미안하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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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김 기자”보다 “성윤 아빠!” 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김태규 한겨레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