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몰래 데이트’의 결말 짬짬육아

2007년 10월의 어느 밤. 연애 감정에 막 불이 붙던 그때, 그녀는 기자실을 지키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난 타사 후배기자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달라”는 부탁을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내게

보이차 한 잔을 건넸다. 두런두런 미래를 얘기했다. 날은 서늘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날 우리의 비밀 데이트 장소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잔디밭이었다. 그후...



...... 



 2011년 6월19일 일요일. 원래는 쉬는 일요일이었지만 출근했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의 회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3시30분에 시작된 회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저녁 메뉴로 돈까스를 준비했다며 나를 유혹했지만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밖에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성윤이한테 ‘아빠 회사 가볼까’ 하니, ‘아빠가 성윤이 보고싶대, 엄마! 아빠 회사 가자’ 이러네 ㅋㅋ.”



텔레파시가 통했나. 내가 보고 싶어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회의가 늦게 끝날 것 같은데, 자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자꾸나. 그래, 어서 오너라.



“성윤아~.” “아빠!”



녀석과 난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 광장에서 부자 상봉의 기쁨을 맛봤다. 녀석은 내게 물었다.








0b64a36b393ea69ef55aa81312a08390. » 부자상봉의 기쁨









“여기가 아빠 회사야?” 

“음... 아빠 회사는 아닌데 음... 그냥 아빠 회사라고 하자.”



출입처의 개념을 설명하려면 말이 복잡해질 것 같아, 일단 그렇다고 했다.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

<SBS> 기자는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 앞에서 생방송 준비를 했다. 녀석은 휘황찬란한 조명보다는

중계차에 더 관심을 보였다. 검찰청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130여명의 평검사들이 출근한 검찰청 사무실

곳곳엔 불이 켜져 있었다. 녀석이 물었다.



“아빠! 지구가 아픈데 불이 켜져 있네.” 

“응, 여기 검사들이 오늘 회의를 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회의하고 있는 거야?”

“응, 그래.”








629d947efa95ab85456a56f13b0250ad. » 지구가 아픈데... 불이 켜져있네요.









뉴스 생방송이 끝나자 아내는 뽀로로 탱탱볼을 꺼냈다. 그러나 근엄한 검찰청에서 탱탱볼 축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대신 녀석과 손을 잡고 검찰청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렇게 녀석은 1시간 동안 ‘아빠 회사’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휴일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일도 하면서 짬짬육아도 할 수 있었던 보람찬 하루였다.

평검사 회의는 밤 11시30분에야 마무리 됐다.



아내와 내가 몰래 데이트를 했던 유서 깊은 이곳에 언젠가는 녀석이 성지순례하듯 찾아오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었는데 바로 이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 속삭였던 그때도 좋았고,

탁 트인 광장에서 셋이 깔깔거릴 수 있는 지금도 좋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김 기자”보다 “성윤 아빠!” 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김태규 한겨레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