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짬짬육아

 





d2526a9f79e6c1585eb4196a08433ab2. » 대형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놀길래 "여기에 들어가서 출국하라"고 했다.



 “성윤아, 할머니 주말에 비행기 타고 외국 가신대. 울지 않을 거지?”



   몇 번이고 다짐을 받으려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성윤이도 아부다비 갈 거야”라고 답했다.



   헬기 엔지니어이신 장인어른께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 취업을 준비하시면서 올해 초부터 우리집에 와계셨다. 처음으로 안아보는 손자인 성윤이에 대한 사랑이 크셨는데, 함께 생활하면서 내리사랑은 더욱 깊어지셨다.



   장인어른께선 지난달 중순 출국하셨다. 그때부터 녀석은 ‘아부다비’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외할아버지는 ‘아부다비 할아버지’가 되었다. 녀석은 아부다비라는 발음이 재밌는지 “아부다비 할아버지”를 연신 부르면서 깔깔거렸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할아버지가 평소에 부르시던 설운도의 노래 <나침반>을 따라 부르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승화됐다.





[youtube pu9p6QhMdRc]



   외할머니와 성윤이와의 관계는 더욱 특별했다. 지난 5개월간 성윤이의 ‘제1보육자’는 외할머니였다. 녀석은 외할머니와 함께 잠이 들고 함께 깼다. 어린이집 등교 전 녀석의 아침밥도 외할머니가 챙겨주셨다. 어쩌다 엄마 아빠와 잠이 들면, 아침에 제 혼자 일어나 멀뚱히 앉아 있다가 외할머니 인기척이 들리면 “할머니~”하며 뛰어가던 녀석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이제 떠나신다니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단단히 준비시켜야 했다.





b9d717cccc8efcf3c0456a14cfbc03ea. » 할머니와 성윤이는 이렇게 작별했다.



   지난 토요일 인천국제공항. 이별의 시간은 찾아왔고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할머니 앞에서 녀석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울음은 길지 않았다. 공항 구내에 전시된 자동차를 구경하러 가자는 말에 녀석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내친 김에 을왕리 해수욕장에까지 가서 모래놀이도 신나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녀석은 씩씩했다.



   사실 장모님의 출국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나다. 장모님께서 든든하게 집안일을 봐주셨기에 야간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날개 달린 듯 취재원들을 만나고 다녔다. 주말에는 늦잠도 잤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맞이한 일요일 아침. 녀석은 또 먼저 일어나 앉아있었다.



  “성윤이 벌써 일어났구나.”

  “할.아.버.지 아.부.다.비 갔.어.”

  “그럼 할머니는?”

  “할.머.니.도 아.부.다.비 갔.어.”

  “그래, 그럼 우리도 나중에 아부다비 가자. 조금 더 자.”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누굴 깨울까’ 고민하는 듯했던 녀석은 갑자기 커텐을 젖히면서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오전 8시. 예전에 그랬듯이 내가 먼저 일어나 녀석을 마루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큰 맘 먹고 이번엔 계란말이를 처음으로 요리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일주일 먹을 밑반찬을 만들고는 밀린 일을 하려고 출근했다. 세 식구의 일상은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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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김 기자”보다 “성윤 아빠!” 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김태규 한겨레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