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마라톤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곤혹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늘어만 가는 뱃살 때문에 계절에 맞춰서 양복바지를 바꿔입을 때마다 호흡곤란 증세를 느낀다. 30대 중반의 나이... 기초대사량이 점점 떨어져 과잉된 영양분이 살로 간다는 ‘나잇살의 원리’를 철마다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거창하게 헬스클럽을 끊고 그럴 필요도 없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집앞 운동장을 뛰기로 했다. 운동장에 나가면 100명 중에 95명은 걷는다. 그러나 난 운동효과를 내기 위해서 500미터 트랙을 다섯 바퀴 돈다. 달리기를 건강관리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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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짜리 가출 선언

하루하루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 또 미루고, 심지어 절필까지 생각했던 나를 다시 베이비트리로 이끈 건, 녀석의 ‘폭풍성장’ 이었다. 엄마 아빠가 무릎을 치게 하더니, 더 나아가 엄마 아빠 뒤통수를 치는 녀석의 기이한 행적은 이를 기록으로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아빠의 의무감을 샘솟게 한 것이다.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가 침대에 같이 눕게 된 우리 세 식구. 녀석은 오랜만에 “자동차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졸음도 오는데 교훈적인 내용으로 쌩구라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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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성윤이 비비디바비디부!

8월이 되자 녀석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아부다비 가는 거야?” “응, 이제 두 밤만 자면 아부다비 갈 거야.” 녀석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름휴가 계획을 잊지 않고 그렇게 불쑥불쑥 아부다비를 말했다. 녀석의 바람대로 그날은 왔다. 8월6일 토요일 저녁, 10시간의 비행 끝에 열사의 땅, 아부다비에 도착한 것이다. 녀석은 꿈에도 그리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4개월 만에 상봉했다. 그 4개월 동안 녀석은 많이 컸고 많이 변했다. “우리 아가”라고 예뻐해 주면 “아니야, 형아야”라고 주장하고, “김성윤 형아!”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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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을 깨운 ‘똥덩어리’

  일요일 아침. 녀석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7시50분. 평소 같았으면 냉큼 일어났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어제 튜브용 욕조에 바람을 넣고 물을 붓고 녀석의 물놀이를 위해 너무 무리를 했다. 어젯밤 친구와 술 한 잔 하고 들어온 아내는 건넌방에서 자고 있다. 엄마가 안 보이자, 녀석은 아빠라도 일으켜 세우려고 이불을 잡아끈다. 난 마지못해 일어나 <교육방송>을 틀어주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애한테 항상 책이나 신문을 읽는 고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초심은 집 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아예 아이에게 티브이를 틀어주고 단 10분이라도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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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구와의 일전 ‘최후의 승자’는?

지난주 월요일, 성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는 12명 중 4명. 폭우가 쏟아진 탓에 나오지 않은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족구가 문제였다. 녀석은 어린이집을 강타한 수족구의 파상공세를 아슬아슬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지난 6월16일 오후 5시경. 아내가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윤이 수족구가 의심돼서 지금 격리시켜놓고 있대. 그런데 내가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어. 병원에 좀 같이 가 줘.” 격리돼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아내의 속 타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행히 바쁜 일이 없는 상황이어서 어린이집으로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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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의 길? 박명수의 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ㅁ마.”  “그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그 유치한 질문에 녀석은 한동안 이렇게 대응했다. 묻는 사람이 아빠든 엄마든, 누구를 앞에 놓느냐에 따라 녀석은 그 사람이 더 좋다고 답했다. “너도 옳고 그도 옳다”는 황희 정승식 대처에 나는 ‘애가 참 속이 깊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성윤이네 집은 권력 향배의 캐스팅보트를 쥔 녀석의 현명한 처신으로 3권 분립이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세력 판도에 변화가 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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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몰래 데이트’의 결말

2007년 10월의 어느 밤. 연애 감정에 막 불이 붙던 그때, 그녀는 기자실을 지키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난 타사 후배기자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달라”는 부탁을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내게 보이차 한 잔을 건넸다. 두런두런 미래를 얘기했다. 날은 서늘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날 우리의 비밀 데이트 장소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잔디밭이었다. 그후... ......   2011년 6월19일 일요일. 원래는 쉬는 일요일이었지만 출근했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의 회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3시30분에 시작된 회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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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던져도 재밌는 '한밤의 토크쇼'

 성윤이네 하루 일과 철칙 중 하나는 밤 9시가 되면 불을 끈다는 거다. 녀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둠을 두려워했지만 “불을 계속 켜놓으면 지구가 아파한다”는 엄마의 말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뒤에는 엄마나 아빠의 ‘자동차 이야기 쇼’가 시작되고 녀석은 유쾌하게 잠이 든다.   며칠 전엔 자동차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잠이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녀석이 깔깔거렸다.        “왜 웃어? 뭐가 재밌어?”  “가쓰오부시가 재미셔.”    말이 늘면서 녀석은 어감이 색다른 특정 낱말에 흥미를 보였다. 가끔씩 먹는 가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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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꿈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성윤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성윤이는~ 성윤이는~ 자동차가 되고 싶어요.”    “뭐야?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 박사겠지.”    “으응 아니야, 자동차 되고 싶어요.”     한사코 자동차가 되겠단다. 의지가 굳다. 아내는 “그래, 트랜스포머도 있으니까. 성윤이 훌륭한 자동차 되세요”라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참고로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 같냐”고 하니, 로봇 박사님이 될 거라고 했고, “아빠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될 거라고 했다. 헉!)     어찌 보면 자동차가 되겠다는 녀석의 포부가 그리 허무맹랑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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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성윤아, 할머니 주말에 비행기 타고 외국 가신대. 울지 않을 거지?”    몇 번이고 다짐을 받으려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성윤이도 아부다비 갈 거야”라고 답했다.    헬기 엔지니어이신 장인어른께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 취업을 준비하시면서 올해 초부터 우리집에 와계셨다. 처음으로 안아보는 손자인 성윤이에 대한 사랑이 크셨는데, 함께 생활하면서 내리사랑은 더욱 깊어지셨다.    장인어른께선 지난달 중순 출국하셨다. 그때부터 녀석은 ‘아부다비’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고, 외할아버지는 ‘아부다비 할아버지’가 되었다. 녀석은 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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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김 기자”보다 “성윤 아빠!” 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김태규 한겨레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