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아 생생육아

IMG_1876.JPG

 

아이의 그림책 중에 <울지말고 말하렴>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꼭 이책은 아니라도 어린 아이 키우는 집에는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한두권씩은 꽂혀있을 것이다. 또박또박 말하기보다 먼저 떼를 쓰고 징징거리는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한 교육용 그림책이다.

 

친구 딸에게 물려받은 책인데 우리 아이도 이책을 좋아해서 한동안 많이 읽어줬다. 그리고 아이가 울면서 떼를 쓸 때는 "울지말고 말하렴, 곰돌이도 울기부터 하니까 친구들이랑 엄마가 못알아듣잖아. 또박또박 말해야지"라고 아이한테 자주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이가 울 때가 예쁘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 입을 삐쭉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때로는 아이를 울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늘 예쁜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장난감 가게에 구경 갔다가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까 본 장난감을 사달라고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때문에 진땀을 흘린 적도 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별로 울면서 떼부리는 일이 많지 않은데다 아기 때에도 영아산통이 있다거나 하지 않아서 특별히 많이 우는 아기는 아니었기 때문인지 나의 울음 안테나는 그리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엄마가 울음에 관대하다 보니 아이는 종종 우는 척을 한다. 눈은 가만 있는데 입만 삐죽삐죽거리며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럴때는 적당히 무시해주면 아이도 금방 제풀에 떼가 꺾인다.

 

사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볼 때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짠한 느낌이 있다. 짠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은 아닌 듯한데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니가 이렇게 맘편히 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 지금 실컷 울어두렴 이런 생각이 든달까.

 

싸나이는 세번 눈물을 흘린다 어쩌구 하는, 참으로 올드한 마초 경구는 물론, 웃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따져보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들고 철이 든다는 건 더 이상 사소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일 때는 장난감 조립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울음보를 터뜨리지만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다투면서 먼저 울면 지는 거라는 걸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일에 눈물을 흘렸다가는 '울보'라는 놀림거리 별명을 얻게 되니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을 참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이렇게 울음을 참는 법을 배우면서 성인이 된 다음에는 정말이지 좀처럼 울 일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해 울 일이 없다기 보다는 속상하거나 울고 싶어도 눈물을 참는 법이 아주 익숙해진다. 직장상사에게 비난을 들었다거나 하던 일이 잘 안풀린다고 울었다가는 찌질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십상 아닌가. 그러면서 눈물은 올킬 수준의 엄청난 좌절을 겪었을 때나 통용되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고 그저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의 카타르시스를 확인하는 유희적 수단이 되버리는 것 같다. 사실 나이가 들어도 울고 싶은 순간은 얼마나 많은가. 그럴때마다 우리는 어른의 규범을 떠올리며 꾹 참고 지나가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 때는 울음이 불만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가장 쉬운 자기표현의 수단이지만 나이들면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으로 한참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뜻대로 안되서 또는 밤에 자기 싫은 데 엄마가 불을 껐다는 등의 티끌같은 이유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아직 자신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의 본성이 재밌기도 하고 일면 부럽기도 하다. 이제 너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참는 법을 배우겠지, 라는 생각도 들면서 좀 더 내키는 만큼 울게 내버려두고 싶다.  더불어 아이가 커나가더라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그런 어른이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IMG_1876.JP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