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소리 실전편] 2. 교구가 아니라 철학 생생육아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몬테소리 유치원이나 몬테소리 교구는 제법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접근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장 잘 갖고 노는 장난감이 있어 선생님에게 슬쩍 물어보니 몬테소리 교구 전문 판매점에서 나온 것인데 가격이 한화로 7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참고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정부 보조 무상 어린이집일 뿐, ‘몬테소리 어린이집’이 아니다. 그런데도 원목으로 만들어진 교구나 놀잇감들은 대부분 몬테소리 교구 제작 업체를 통해 들이는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몬테소리, 하면 흔히 시중에 판매되는 몬테소리 교구나 몬테소리 유치원 등 일종의 브랜드가 되어 버린 몬테소리 교육을 떠올리기 쉽다. 요즘 한국에는 유아기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몬테소리 홈스쿨’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는 모양이다. 아마 방문 교사가 집에 와서 몬테소리 교구를 가지고 도형이나 수 개념 등을 가르치는 것 같은데, 이런 고가의 교구와 커리큘럼에 과연 몬테소리의 철학이랄까 정신이 얼만큼 반영되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거기서 몬테소리의 철학, 정신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업계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자기 주도 학습’ ‘놀면서 배우는’ 이라는 문구인데, 내가 보기에 유아기 아이에게 몬테소리 홈스쿨을 시킨답시고 교구를 갖춰놓고 ‘학습’에 가까운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몬테소리 철학에 모순된다. 아이는 놀면서 배우기도 하지만 안 배우기도 한다. 그냥 놀기만 할 때도 있고, 그냥 막 노는 것 같은데 뜻밖에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기도 한다.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 몬테소리가 수십년 전 세워 둔 교구 활용법을 보면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교구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면 아이가 같은 교구를 활용해 고난이도의 작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흥미가 있는지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흥미가 떨어져서 아이가 작업을 그만두면 그만둘 수 있게 하고, 다음 작업까지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다음 작업을 교사가 시연해보이는 것 까지가 교사의 역할이다. 그리고 아이가 유독 흥미를 느끼는 작업이 있다면 그 작업을 아이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방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유아기의 특성을 정말로 고려한다면, 굳이 번듯한 교구를 다양하게 갖춰놓고, 방문교사를 붙여 학습하듯이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아이가 관심 있어 하고 스스로 해 보겠다고 나서는 활동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기꺼이 보아넘겨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 몬테소리 교육법에서 중점은 학습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법을 익히게 하는 데 있었다. 이탈리아의 빈민가에서 부모 모두가 일터에 나간 뒤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위생 관념과 생활습관을 반복적으로 지도하고  발달 단계에 맞는 활동을 준비해 주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 몬테소리 어린이집 ‘까사 데 밤비니(Casa Dei Bambini)’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백여 년 전 이탈리아 빈민가의 노동자 가정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많은 것을 부모가 대신 해 주며 학습에만 몰두하는 환경에서 자라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고, 다음 세대 아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게 자라나고 있다. 유아기 아이 뒤를 따라 다니며 밥을 떠 먹이고, 아이가 입을 옷을 대신 골라 입혀주던 부모의 상당수가 청소년, 성인이 된 자녀의 어질러진 방을 치워주고 닦아주면서 자녀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며 살아간다. 몬테소리 교구, 교재, 몬테소리 유치원 등에 대한 관심과 열광 뒤에 학습, 조기교육, 영재교육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그리고 아이/자녀를 어른/부모의 통제 아래 두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교사는 준비된 환경을 제공해 줄 뿐 아이 스스로 익히고 배우게 해야 한다던, 아이마다 각자에게 맞는 때와 방향이 있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던 몬테소리의 철학은 다 어디로 갔을까.


틈틈이 몬테소리의 교육법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한 지 두 해쯤 되었지만, 우리 집엔 이렇다할 교구가 없다. 우리 형편에 맞지 않게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지만, 굳이 몬테소리 교구나 놀잇감을 구하려 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몬테소리 접근법을 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발견해 아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주고 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소재를 활용해 교안을 짜고 교구를 자체제작 하는 일을 즐겼기 때문인지 내 아이와 이런 작업을 하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찰, 자율, 본보기 같은 몬테소리 접근법의 중심 철학을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가 아기였을 적부터 해 온 일이 아이가 노는 공간, 아이와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변경하는 일이었다. 책이든 장난감이든 얼마든지 스스로 꺼내어 갖고 놀 수 있게 하고,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라는 게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도록 했다. 공작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글씨를 쓰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게 하면서 아이가 직접 도움을 청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굳이 개입하지 않는 것도 몬테소리의 영향이다. 또 계절에 맞는 옷을 선별해 거실 한 쪽, 아이 손에 닿는 곳에 넣어두고 아이가 직접 그날 그날의 옷을 골라 입게 하면서 아이의 선택을 가급적(!) 존중하려고 애쓴다. 물론 가끔 빨간 티셔츠에 빨간 바지를 입겠다고 하면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어 슬쩍 다른 색깔 티셔츠를 권해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내가 몬테소리 접근법을 대할 때 방점을 찍는 곳은 교구나 커리큘럼이 아니라 몬테소리의 생각, 철학이다. ‘아이에겐 저마다 때가 있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존중하라’는 몬테소리 교육 철학의 기본 원칙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너무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양육자의 삶은 중요하지 않단 뜻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철학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몬테소리의 교육 방침에서 그 중심은 결코 ‘아이’에게 있는게 아니라 개개인의 실제적 ‘삶’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때의 ‘삶’에는 아이 뿐 아니라 양육자의 삶 역시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결정적으로 몬테소리 교육법을 호평하게 된 이유도 이런 접근법이 아이가 일찍부터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 스스로 다음 과제를 찾고 수행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양육자의 수고를 일찍, 많이 덜어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령 혼자 옷 입는 법을 알려주고 몇 분이 되었든 기다리며 혼자 해 보도록 내버려두니 아이는 단 며칠만에 혼자 입고 벗는 일을 익혀 내 수고를 덜어주었다. 갑자기 글씨를 쓰고 싶어해서 간단히 쓰기 연습지를 만들어주니 40여 분이 걸리는 통학길 버스 안에서 혼자 열심히 쓰기 연습을 시작한 지도 며칠 되었다. 물론 40분 내내 조용히 혼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의 호기심과 장난과 에너지를 기꺼이 보아 넘기고 함께 놀며 관찰하고 존중하려 애쓴다. 물론 엊그제처럼 대여섯시간을 내내 밖에서 놀아야 하는 때는 “으아 정말!” 소리가 절로 터져나오지만, 그래도 괜찮다. 요즘은 놀이터에 같이 가면 짬짬이 벤치에 앉아 책 읽고 뜨개질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기도 하니까. 육아의 굴레에 갇혀 살다 보면 시간 참 더디 간다 싶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분명 조금씩 자라고 있다. 몬테소리의 철학을 나의 육아 철학으로 삼으니 아이는 결국 자라서 내 품을 떠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게 된다. 결국 아이를 돌보는 일은 차차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나도 아이도 서로에게 너무 많이 얽매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며 각자 삶의 의미와 원동력과 균형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아이와 나에게 주어진 이번 생의 목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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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런 놀이기구도 혼자 오르 내리니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해도 되고, 좋다! 얼른 얼른 더 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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