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품위!

항상 인심이 넉넉한 친구가 홍합을 한 박스 보내줬다. 워낙 손이 큰 친구라 사흘 밤낮으로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다. 당장 홍합을 다듬어서 한 솥 끓였다. 우리 세 식구 원 없이 먹었다. 그 다음날 남은 홍합을 또 삶아 먹었다. 다시는 홍합을 못 먹는다고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만큼 질리도록 먹었다. 이제부터 먹는 홍합은 한계효용이 급격히 감소될 것이 뻔 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홍합주간을 선포하고, 친구, 이웃들에게 ‘홍합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우리집 문을 두드리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마침 이웃에 사는 언니가 전화를 했다. 저녁에 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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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어로 완전무장

우리 딸은 늘 하의실종이다. 내년 3월이면 세 돌이지만, 아직도 위풍당당 기저귀를 차는 신세다보니 옷을 안 입는 게 저나 나나 편한 까닭이다. 빨간 다리를 내놓고 다녀도 집안이니까 괜찮은가보다 하고 그냥 나둔다. 문제는 외출할 때다. 집에서 워낙 시원하게 지내서 그런가 옷을 겹겹이 입히면 참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 폭풍식사로 살이 붙을 대로 붙은 상황인지라 두꺼운 옷이 불편할 만도 하다. 그런 걸 이해한다고 쳐도 한겨울에 홑겹으로 입혀서 나가면 아동학대로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한 노릇. 현관 앞에서 입히려는 자와 입기 싫다는 자의 실랑이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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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푸어의 역습

어제 컴퓨터를 켰다가 ‘베이비 푸어’라는 기사에 딱 꽂혔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허니문 푸어에 이은 새로운 푸어족의 등장!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가난뱅이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나 보다. 사실 나는 ‘베이비 푸어’라는 이 말이 낯설지 않다. 내 블로그에 ‘마이 푸어 베이비(우리말로 하면, 오~불쌍한 내 새끼라는 뜻)’라는 꼭지에 글을 쓴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단어 구성이지만, 정 다른 의미다. 내가 말하는 ‘푸어 베이비’는 가난하지만, 그러니까 뭐가 많이 없고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고 건강한 아기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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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12월이면 딱 두 돌이 되는 예음이가 피를 본 것이다. 유치부에서 놀다 신발장에 부딪혔다고 했다. 사색이 된 엄마와 달리 예음이는 의외로 덤덤해 보였다. 예음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갔다. 얼마 후에 예음이는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돌아왔다. 역시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예음이 엄마는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왜 아니겠나? 예음이는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피가 많이 나는 걸 보니 겁이 났다고 했다. 1년 전에 나도 그랬다. 이른 봄이었다. 소율이를 안고 살얼음이 녹지 않은 음지의 비탈길을 걷다가 쿵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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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의실종 종결자가 되었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햇빛에 나가서 많이 놀리세요!”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병원 신세를 진 날, 2시간의 상담(수다) 끝에 담당 의사가 내린 처방전이다. 아, 이 병원은 정확히 한의원이고, 곧 의사는 한의사다. 나는 병원보다는 자연치유력에 의지하는 편으로, 웬만해서는 병원 신세 안 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꼭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한의원에 먼저 간다. 다른 이유보다는 병원 냄새는 불안하고, 한약 냄새는 편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아이의 무릎 뒤 접히는 부위가 빨갛게 일어났고, 아이가 가려워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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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 사이, 고냐 스톱이냐?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언제 둘째 가질 거냐고. 요즘 인사 대신 듣는 질문이라서 아예 모범답안까지 마련해두었다. 그런데 남편과 내 대답이 다르다. 내 대답은 ‘생길 때 되면 생기겠죠?’인데, 남편의 대답은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절박한 속내가 담겨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오랜만에 친구가 놀러 왔다. 또 예상질문 나오신다. 남편이 또 하늘타령을 한다. 그런데 이 집요하고 거침없기로 유명한 이 친구가 거기서 멈출 리 없다. “왜요? 자주 안 해요? 일주일에 얼마나 하는데요?” 원래 이런 류(?)의 이야기는 내가 떠들면 떠들지, 남편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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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는 변태인가?

젖을 빨리고 싶은 건 왜 그럴까? 젖을 찾지 않은지 반년이 넘어간다. 그렇게 틈만 나면 물고 빨고 주물럭거리던 젖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건지 참 신기하다. 젖을 떼고 나니 후련한 것도 있지만, 가끔은 허전한 생각이 든다. 뽕으로 한껏 부풀렸다가 뽕을 뺀 것마냥 매가리 없이 푹 꺼진 가슴 때문일까? 탯줄에 이어 젖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한 결합체였던 우리가 물리적으로,심리적으로 점점 분리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알수 없는 허전함은 완전한 휴식과 해방의 '최종병기'가 사라졌기 때문인 거 같다.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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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키우는 ‘태평육아’, 그...

 젖도 밥도 그냥 지 맘대로…씻기는 것도 웬만하면 그냥  때가 되면 하겄지, 지가 크는데 진로방해하고 싶지 않아 결혼은 안 했지만, 아기가 생겨 아기를 낳기로 했고, 아기를 혼자서 키우기는 싫으니까 육아 공동체를 꾸려서 살고 있다. 질풍노도의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았다. 여전히 철이 안 든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안정기에 접어든 때여서 그런가? 아니면 워낙 아무런 준비도, 정보도 없기 때문에 뭘 몰라서 그런가? 아이 키우는 일이 그냥 천하태평이다. 남들은 나를 보고, 철학이나 신념이 강해서 그러는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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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세 명의 아웃사이더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모범생(?)으로 살고 있는 나는 꼬마 때부터 내놓은(!) 아이였다. 패밀리비지니스로 두부집을 하던 부모님이 워낙 바쁘신 터라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 전까지 3년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호사를 누렸다. 흑백에서 칼라로 넘어가던 그 당시에는 어린이집 다니는 것 자체가 호사여서, 지금도 소꿉친구들을 만나면 '난 어린이집 다닌 아이' 신분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동네골목을 전전하는 내 친구들이 더 부러웠다. 나는 어린이집의 그 어떤 프로그램도 크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없다. 나는 선생님의 지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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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뽀로로 앞에서 와르르...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예배가 있는 날이다. 보통은 집에서 모이는데, 지난 주에는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학원에서 모였다. 학원이라 그런지 아이들 놀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아이들을 잘 놀려야 어른들이 제대로 수다를 떨 수 있다. 빔 프로젝터가 있는 방에는 뽀로로 상영관이 마련되었다. 큰 화면에 불까지 끄니, 제법 영화관스러워졌다. 방에 불을 끄니 아이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뽀로로는 좋지만, 깜깜한 게 무서운 22개월 예음이가 제일 먼저 밖으로 뛰어 나왔다. 뽀로로는 당연히 좋고, 깜깜한 것도 괜찮은데, 낯을 좀 가리는 서현이도 얼마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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