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생존 방식

QuestionsBabysFirstYearNursingSecondBaby.jpg » "그땐 몰랐지. 그 안에 네가 있을 줄은." (출처: Mommy Guides) 둘째를 낳아서 처음 집에 데려오던 날. 배냇옷을 입히고 속싸개, 겉싸개로 고이 싼 작은 아기를 정성스레 안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집에 있던 23개월 큰아이의 얼굴엔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며칠만에 본 엄마·아빠는 너무도 반가운데, 아빠가 소중히 품에 안은 게 뭔지 너무 궁금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빠 품을 엿보려고 폴짝폴짝 뛰었다.
 
아기를 안은 채 바닥에 앉으니 그제야 첫째의 눈높이에 동생이 들어왔다. “아기가 왔지? 동생이야. ‘동생’ 해봐.” 희미한 웃음이 번지는 것도 찰나, 첫째는 손가락을 내밀어 자는 아기 볼을 쿡 찔렀다. 놀라서 “아기한테 그럼 안 돼” 했지만,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아이는 손을 자꾸 내질렀다. “아기는 뽀뽀해줘야지.” 첫째는 마지못해 허리를 숙여 둘째의 이마와 뺨에 뽀뽀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뀐 건 아니었다. 뽀뽀 한번 쓰다듬기 한번을 번갈아 몇차례 하더니, 갑자기 이마를 꼬집어버렸다.

“으앙!”
그게 시작이었다. 둘째는 그 뒤로 내내 꼬집히고 맞았다. 자다가도 당하기 일쑤여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깨있을 때도 혼자 뒤집지 못해 허공만 바라보던 때라, 그저 무방비 상태였다. 얼굴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지금도 사진을 보면 얼굴에 손톱 자국이 선명하다. 동생 생긴 첫째의 심정은 ‘첩 생긴 본처 마음’이라던가, 아무리 나무라고 타일러도 첫째는 동생을 예뻐하지 않았고, 둘째는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둘째가 백일이 되자, 그제야 첫째는 다소나마 폭력을 거뒀다.

아픈 기억은 가슴 속에 상처로 남고, 애써 지우려 해도 몸에 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 작은아이는 두돌이 되어가는 지금도 잠귀가 예민해서 자주 깬다. 아이는 엄마·아빠보다 형을 무서워하고, 형에게 혼나거나 형과 싸우다 맞을 때 가장 서러워한다.

첫째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당연스레 받아들이지만, 둘째는 형과 경쟁해서 엄마·아빠 사랑을 쟁취하려는 게 보인다. 그래서 둘째는 형의 허점을 찾아낸다. 엄마·아빠가 좋아할 법한데 형이 하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둘째는 훨씬 애교가 많다. 다른 가족이나 친지를 대할 때도 한층 사교적이다. 아프거나 속상한 엄마를 위로할 줄도 안다. 

걸음마나 말을 배우는 것도 첫째보다 둘째가 빠르다. 첫째와 같이 놀고 싶은 욕구 탓에, 빨리 배우려 든다. 첫째의 장난감이 작은 자동차에서 큰 자동차로, 귀여운 캐릭터에서 로봇으로 가는 식으로 차차 발전해간 것과 달리, 둘째는 형과 공유할지언정 ‘풀 라인업’을 이미 갖춘 터라 책도 장난감도 자잘한 건 훌쩍 뛰어넘는다. 둘째 키우는 게 수월타더니, 형을 따라잡으려는 동생의 본능 덕인 모양이다.

첫째의 마음도 점점 누그러지는 것 같다. 큰아이는 동생에게 자꾸 묻는다. “아빠가 좋아, Truth-About-Having-Another-Child.jpg » "앞으로 형아 말 잘 들어야 해." (출처: Popsugar)엄마가 좋아, 형아가 좋아?” 예전엔 둘째가 ‘엄마’라고 하고 첫째가 “난 아빠가 좋은데”라고 하더니, 요새는 둘째가 ‘아빠’라고 하고 첫째는 “난 엄마가 좋아”라고 한다. 이 질문이 정답이 있는 질문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큰아이는 “형아가 좋아”란 답이 듣고 싶어 같은 질문을 연거푸 던지는데, 동생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이다. 사실 큰 녀석은, 한동안 동생이 보이지 않을 때면 슬픈 표정으로 동생 어디 갔냐”며 울먹이는 따뜻한 형이기도 하다.

둘째가 커가면서 두 녀석의 싸움도 늘고 집안 평화는 계속 위협받는다. 둘째도 제법 형에게 대들고, 분을 못 이겨 성질을 부린다. 그러나 첫째는 친구들이 없을 때도 곁을 지키는 둘째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다. 엄마, 아빠, 동생 모두가 노는 게, 혼자 노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 속에서 나오는 여러 ‘화해’ 제안을 보면, 해결 방법이 없진 않은 것 같아 대견하고 다행스럽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4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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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