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용기를 내서 살고 있는 것이다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태희 분유랑 젖병은 식탁에 올려 둘게.
물 100mL 당 한 봉지라니까.
트림 꼭 시켜줘. 안 그러면 푹 못 자거든.

 

준영이 칫솔 치약이랑 로션은 식탁 위에 둔다~
간식 너무 많이 주지 말고.
세 네 시쯤 낮잠을 자야 하는데...

 

그리고 우리 준영이! 엄마가 아까 설명했지요?
오늘은 엄마 아빠만 뛰뛰빵빵 타고 서울 가서 일하고 올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랑 이모랑 언니 오빠랑 재밌게 놀다가 만나자.
엄마 뽀뽀, 한 번 안아줄래? 엄마 잘하고 올게~ 사랑해요 우리 딸!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미리 종이에 적어둘 걸 그랬나. 내 간절한 당부에 건성으로 어, 어 하는 엄마가 어쩐지 못 미덥다.
“너만 애 엄마냐? 나도 다 키워 봤거든! 넌 니 할 일이나 잘하고 와.”
나를 보는 엄마 표정이 딱 이랬다.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 있는 반신 거울을 보니 이해가 간다.
충혈된 두 눈에 광대뼈에 기미 자국이 선명한, 누가 봐도 피곤한 여자.


그래, 내가 지금 걱정할 건 외할머니를 보모로 붙들고 있는 두 아이가 아니다.
생애 첫 텔레비전 방송 녹화에 나선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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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첫째가 22개월을 막 지나던 작년 여름 둘째가 태어났고, 동시에 남편은 집 근처 버섯농장에 취직했다.

출판사 수입만으로는 더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 1인 출판사를 시작할 때부터, 아니 시골에서 살기로 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육아와 관련해서 나는 혼자서 뭘 해본 일이 없었다. 예방접종은 물론 하다못해 똥 묻은 아이 엉덩이를 씻기는 일조차 남편과 함께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하고 분담해오던 일을 혼자 하려니 외딴섬에 홀로 표류한 기분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을 나 혼자 돌보게 된 자체가 아니었다. 그 탓에 ‘남편과 공동육아를 하는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거였다.
처음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아이들이 낮잠 자는 동안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고, 밤중 수유가 끝난 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림을 그리든, 미끄럼틀을 타든 엄마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두 돌 아이,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젖먹이, 그리고 얼른 두 번째 책을 출간해서 작가란 이름에 힘을 싣고 싶은 나.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동안 몸과 마음이 빠르게 삭막해져 갔다.
결과가 긍정적이었다면 좋았을걸. 지금 쓰는 글들 이래 봤자 가계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들여 준비했던 공모전에서도 낙방했다. 어느 순간 나는 온종일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는 고약한 엄마가 돼 있었다. 잠든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미안해, 엄마가 내일은 좀 더 잘할게” 하는 일이 반복될 때면 이게 뭣 짓인가 싶었다.

 

한 여행채널 호주 편에 출연자로 초대된 건 둘째가 태어난 지 두 달쯤 됐을 때였다.
국내 최초 호주 일주 여행기,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 저자 안정숙.
난 이 대목에 대단한 자긍심이 있다. 호주는 국내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비인기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국내에서 출간된 호주 관련 책들은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정보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호주 여행기’ 시장은 열악했지만 밀어붙였다. 우리가 경험했던 호주 대륙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었다. 탐험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국내 최초 호주 일주 여행기’란 타이틀이 탐났던 것도 사실이다.

 

“역시 우리 전략이 먹혀들고 있지?”
“그럼, 호주 여행 얘기에 우리가 빠지면 섭하지!”

 

네가 최고야, 아니 당신 덕분이야.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북 치고 장구 치고. 차 안에 몰래카메라가 달려서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참 가관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우리 둘만 있으니 분위기도 달달했다.
“이 대목은 ‘~습니다’가 좋을까? 아니면 ‘~어요’가 나을까?”
밀린 이야기는 오는 길에 실컷 하기로 하고 일단 대본에 집중했다. 아이들 걱정 없이 일에 몰두한 게 얼마만이던가. 그렇게 싫었던, 정장 차림에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왠지 싫지만은 않다.

 

“아... 준영이랑 태희 보고 싶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인은 없고 두 대의 카시트만 덜렁 앉아 있는 뒷좌석을 힐끗 바라 본 남편이 중얼거렸다. 그 한 마디에 자화자찬이고, 둘만의 달콤한 분위기고 뭐고 다 끝나고 말았다.
마침 젖가슴이 찌릿찌릿하며 부풀어 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가 배고픈 시간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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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망설임 없이 좋습니다! 했다.

무명작가, 무명 출판사의 설움을 좀 벗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날이 되자 나는 괜한 일을 벌였나 할 만큼 긴장해 있었다.
출산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빠졌고, 퇴사한 이후 옷을 갖춰 입어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뭘 걸쳐도 어색하고 볼품이 없었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살찌우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틈만 나면 울부짖던 내가 정작 자신의 모습에 주눅이 들다니. 부끄럽고 못마땅했다.
내 유일한 무기, 자존감을 처참히 무너뜨린 일등공신은 언어의 급격한 퇴행이었다. 한때 말고문 선배로도 불렸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도대체 책은 어떻게 썼는지 신기할 만큼 내 언어구사력은 딱 두 돌 배기였다. 그마저도 둘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봐봐봐봐, 어부부부부” 하는 옹알이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지만.
아이들, 특히 모유를 먹는 둘째와 한나절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과연 엄마 젖만 먹던 아이가 분유도 잘 먹을까. 잠은 잘 잘까. 엄마를 찾으며 계속 우는 것은 아닐까...

 

방송 30분 분량에 메이크업 30분, 녹화는 1시간.
석 달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일단 20대 초반의 스타일리스트의 난감한 표정이라니. “피부가 너무 건조하죠? 머리카락도 뚝뚝 끊어지고. 출산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다섯 개의 의자. 사회자 옆, 맨 왼쪽 끝이 내 자리였다.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넣어 마이크를 연결하던 젊은 남자의 머뭇거림과 카메라 감독의 안정적인 눈빛.

조명이 뜨거워 출연자들은 큐시트로 연신 부채질을 했고, 나는 퉁퉁 불은 젖이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건 아닌지 가슴팍을 힐끔거리며 이런 녹화 따위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연기를 했다.
방송을 본 지인들은 알 수 없이 울컥하더라, 메이크업이 너무 진해서 쌍꺼풀 수술한 사람 같더라 하는 평들을 해주었다. 나는 스피커를 통해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오글거리는 일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사실 장모님한테 전화 왔었어.”
친정으로 돌아가는 차 안. 호주 여행할 때 들었던 노래에 맞춰 몸을 과장되게 들썩거리며 남편이 찍어준 사진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태희가 온종일 굶었단다. 젖병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어 숟가락으로 떠먹여도 뱉어내기만 하더란다. 하도 안 먹고 울기만 하니 수액이라도 맞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엄마가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걸 아빠가 잡아두었단다.
내가 신경 쓸까 봐 녹화가 끝나고, 저녁을 먹고, 차 안에 둘만 남고 나서야 입을 뗀 남편. 어쩐지 속이 안 좋다면서 저녁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녹화장 근처에 있는 선배를 만나 커피 한 잔 할 때도 자꾸 재촉한다 싶더니...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표현은 얼마나 적절한가.
엄마와 아이가 고작 한나절 떨어져 있는데도 어른 몇이 달려들어야 하는 일이 바로 육아다.
육아와 일. 일과 육아. 집 자체가 총체적 일터가 되어버린 내 속내도 복잡하지만 매일 아침 일터로 가야만 하는 엄마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아이가 아플 때마다, 아니 엄마 손을 꽉 쥐고 있는 손가락을 떼어 놓을 때마다 순간 그들 가슴엔 눈물이 흐르겠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는 아이를 깨워 젖을 물렸다.
얼마나 배가 고팠니. 엄마 젖을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아이는 돌덩이 같은 젖무덤이 채 말랑해지기도 전에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품에 안긴 아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고르게 내뱉는 숨, 파르르 떨리는 기다란 속눈썹, 앙다문 조그만 입술 위로 그 날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전문대학 재학생들로 인력을 충원해서 프로그램을 꾸려가는 가난한 방송사 소속 중년의 피디.

매력적인 가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부연 설명이 필요한 진행자.

문자 그대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니며 출연자, 소품, 저녁 메뉴까지 책임지던 보조 작가.
푸석한 내 얼굴을 도화지 삼아 열심히 실습하고, 완성된 내 얼굴 사진을 찍어간 스타일리스트 학생.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국내 최초 호주 일주 여행기 저자 안정숙.
유명한 방송국의 이름난 프로그램이 아니라 출연료도 없고, 촬영 장소도 협찬을 받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난 우리. 차라리 그게 다행이지 싶었다.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모든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를 낳을 용기, 아이를 낳지 않을 용기.
아이를 하나만 낳을 용기, 아이를 둘 이상 낳을 용기.
도시에서 살 용기, 시골에서 살 용기.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용기,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는 용기.
워킹 맘으로 살아갈 용기, 전업 맘으로 살아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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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는 달리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도 삶은 비슷했다.

책은 여전히 안 팔리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발 동동거리는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이 잘 때 틈틈이 다음 책을 준비하는 초보 작가로 산다.
다만 한 가지. 소중한 것들, 진짜 중요한 것들을 지키며 살고 싶은 마음만은 더욱 간절해졌다.

 

“작가님은 화순에서 뭐 하세요?”
“다음 책 준비해요. 그런데 두 아이를 돌보는 게 제일 큰일이에요.”

 

녹화가 거의 끝날 무렵, 잠깐 쉬는 시간에 사회자가 물었었다.
가만있기 뭐해서 물어본 말이었을 텐데, 앞 문장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나는 왜 거기서, 굳이, 내 정체성이 두 아이의 엄마임을 강조했던 것일까.

나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반짝반짝 눈이 빛나던 사람들.

용기를 내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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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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