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정, 기른 정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참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지요? 

몇달 간 여러 변화를 겪으며, 제대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제 글은 못 올리고 댓글도 못 달았으나, 마치 맨 처음 베이비트리에 드나들던 때처럼(큰 아이 낳고 혼돈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화장실에서, 버스 안에서 틈 날 때마다 여러분의 글을 읽고 있었답니다. 특히 일부러 제 책을 찾아 읽어주셨던 분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날 여러 의미가 담긴 눈물을 쬐끔 흘렸어요. 감사합니다^^

 

'낳은 정, 기른 정'은 신순화님 댁 닭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어머 어머, 어쩜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비슷하지? 했던 글이에요.

연재 중인 월간 <성모기사> 8월호에 게재된 내용이고요(http://www.ikolbe.com).

사실 이 글도 5월에 썼으니, 벌서 두 달이 지났네요.

곧, 지금 화순댁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건강한 여름 보내고 계시길 바라며.

 

안정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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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기에 불이 들어온 지 정확히 3주 뒤, 그의 말대로 병아리들이 알을 깨부수고 바깥으로 나왔다.
오직 적당한 수분과 따뜻함, 일정한 시간만으로 생명이 피어난 것이다!


삐약삐약삐약삐약, 병아리들은 정말 이렇게 울었다.

음색 자체가 소프라노인 데다 삐약과 삐약 사이의 간격이 무척 짧고 경쾌해서, 마치 스타카토로 탄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 작고 가냘픈 몸체건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어찌나 탁월하던지. 부화기에서 나오자마자 가느다란 다리로 작은 상자 안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게 놀라워 한참을 지켜보았다. 남편은 잘게 간 현미와 맑은 물을 담은 종지를 상자 안쪽에 내려놓고 담요 몇 장을 상자 위에 덮은 다음, 내 책상 아래 있던 전기난로까지 끌어다 놓은 다음에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부화시킨 병아리 네 마리, 시부모님이 장에서 사 오신 암탉 두 마리,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가 선물해 주신 폴리시 암수 한 쌍. 요 앙증맞은 생명체들은 초여름 옥수수처럼 쑥쑥 자랐다. 어쩌다 보니 내 주먹만 하던 몸뚱이가 멜론만 하게 커졌고, 곧 제대로 목청을 뽐낼 준비에 들어갔다.
종자도, 태어난 곳도 모두 제각각이건만 한 뱃속에서 나온 언니 동생같이 사이가 좋았다. 뒷마당에 풀어놓으면 자기들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다니며 벌레나 허브 잎사귀를 뜯어먹었고, 지렁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한꺼번에 달려들어 맹렬한 사투를 벌이며 놀았다. 그때가 기회다 싶었던 딸아이는 엉덩이를 맞대고 모여 있는 닭들 사이로 돌진해보지만, 고작 두 돌배기 아이에게 꽁무니를 잡힐 만큼 어리숙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병아리들이 가장 따르는 건 역시 모이 담당, 남편이다. 그가 뒤뜰에 나타나면 여덟 마리의 닭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 무사처럼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구구 구구구구 일제히 같은 소리를 내며 기쁨을 표시한다. 그러면 그는 능숙하고 여유로운 몸짓으로 모이와 물을 하사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는 어쩐지 그와 닭들이 정다운 연인 사이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닭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기쁨은 갓 낳은 달걀이 수북이 쌓인 바구니를 볼 때다. 태어난 지 6개월쯤 되자 암탉들은 알을 낳기 시작했는데, 껍질이 어찌나 야물고 단단한지 사기그릇 모서리에 대고 탁, 탁 힘차게 몇 번을 부딪쳐야 겨우 금이 간다.
달걀의 생명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프라이팬에 떨어뜨렸을 때. 되직한 흰자는 와락 퍼지지 않고 커다랗고 탱탱한 노른자는 봉긋 솟아 있는데, 반대쪽으로 뒤집어도 어지간해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점성이 강하다.
“우리 꼬꼬야들이 낳은 달걀이랍니다.”
손님들 상에 고작 달걀부침이나 달걀찜, 달걀말이를 내놓으며 마치 대단한 예술작품을 내놓는 듯 환희에 찬 얼굴을 한 여자가 바로 나다. 서울을 떠나던 2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성비가 너무 고르지 못하단 것. 이상적인 수탉 대 암탉 비율은 1:10 정도라는데, 우리 집 성비는 무려 1:1. 수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잡아먹어 부러! 수탉 많이 둬봤자 득 될 거 하나 없어.”
동네 사람도, 가끔 다녀가는 부모님도 볼 때마다 한마디씩 얹었다. 아니, 자식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털을 벗겨 푹 삶아 먹으라고요?
그때마다 나는 단호히 머리를 흔들지만 그렇게 확고하지도 않은 것이 이대로 가다가는 암탉들이 다 대머리가 될 지경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잠깐 닭들의 교미 과정에 관해 설명을 해야겠다.

암탉 등에 올라탄 수탉은 두 발로 암탉 어깻죽지를 누르고, 부리로는 머리를 물고 교미를 한다. 올라타서 날개를 펄럭이며 균형을 유지하고 다시 바닥에 내려오기까지 고작 2, 3초 남짓. 그 정도 갖고 일이 제대로 성사되겠나 싶을 만큼 순식간인데, 워낙 비율이 안 맞다 보니 암탉들의 머리와 어깻죽지 털이 벗겨져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다. 게다가 수컷 한 마리가 발동을 걸면 다른 놈들도 덩달아 올라타려고 힘겨루기를 하는 통에 일단 누군가가 교미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면, 올라타려는 놈, 그 위를 덮치는 놈, 도망가는 놈, 울부짖는 놈, 그 꼴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내 아이와 천방지축 날뛰는 개까지 닭장 주변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 나는 이 불한당 같은 수탉들이 하도 밉고 못마땅해서 당장 잡아먹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서 겨우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나, 푸드덕 내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와 금방이라도 쪼아댈 자세를 취하는, 나를 업신여기는 태도. 무엇보다 암탉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대도 끝끝내 올라타고야 마는 모진 수컷본능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생명의 씨앗이 담긴 알을 쏙 빼가는 인간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그러므로 자기보다 몇 배는 커다란 사람에게 날아들어 대차게 발길질을 해대는 건 제 새끼를, 식구들을 지키기 위한 수컷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인간으로부터 닭의 권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리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발정 난 수컷이 아니라 늠름하고 용맹스러운 전사처럼 느껴지고, 그런 녀석들을 잡아먹네 마네 하던 것이, 감히 주인도 몰라보고 달려든다며 쟁기를 들고 뒤쫓던 내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은 수컷 네 마리 중 두 마리를 비어 있는 토끼장 우리에 격리해두는 걸로 적당히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이 방법도 오래는 못 갈 것 같다. 살가죽이 벗겨지도록 올라타는 놈들이 뭐 그리 좋다고. 떠나간 수탉들을 향해 애처롭게 우는 암탉들을 보면 마치 내가 과년한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딸의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 방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운 독한 어미가 된 것만 같으니까.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부화기에서 태어난 닭들 나이가 돌 하고도 두 달이 지날 무렵. 사나흘에 한 번씩 풍성한 달걀 바구니를 선물해 주던 남편이 어느 날 빈손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알을 품으려나 봐.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꿈쩍하지를 않아.”


그의 말대로 알을 낳아두는 공식 장소, 닭장 속 나무상자 안에 암탉 한 마리가 깃털을 한껏 부풀리고 앉아 눈꺼풀만 끔뻑끔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암컷 중에서도 몸집이 제일 작은 폴리시 애완 닭이었다. 조상님이 폴란드 출신인 이 닭은 수컷 암컷 할 것 없이 몸집이 일반 토종닭의 절반만 하고, 달걀 역시 일반 알의 2/3 정도밖에 안 한다.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이 커플 닭의 백미는 수컷 이마에 볏 대신 솟아 있는, 인디언 모자 같은 하얀 털인데 아마 그 독특한 외모 덕분에 애완 닭으로 길러져 온 행운을 누린 게 아닌가 싶다.

푸석한 털, 매가리 없는 눈. 모이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안 그래도 작은 몸집이 거죽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진통을 할 때, 내 엄마가, 내 남편이 나를 보던 심정이 이랬을까. 몇 개는 날개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을 만큼, 제 품으로 감당할 수도 없이 듬뿍 쌓인 알을 어떻게든 품어 보려고 납죽 엎드려 안간힘을 쓰는 게 안쓰러워서 난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다시 한 번 3주가 흘렀다. 곧 때가 되었다며 며칠 전부터 초조히 닭장 주변을 맴돌던 남편이 소식을 전해 왔다. 마침 둘째 딸 세례성사를 받던 날 아침이었다. 양쪽 부모님이며 아이의 대모님 부부, 우리 부부의 증인 부부까지 제법 큰 손님상을 차리고 있던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단숨에 닭장 앞으로 달려갔다.
구구구구 하는 어른 닭들 틈에서 나지막하게 삐약삐약,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생명의 소리, 탄생을 찬양하는 소리. 초췌한 어미 옆에 보송보송한 병아리 한 마리가 서 있었고, 그 주위를 폴리시 수컷이 엄호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병아리는 그 한 마리가 전부였다. 어미 닭이 떠난 뒤 상자 속에 남겨진 알을 헤아려보니 무려 18개나 되었다. 몸집이 큰 일반 닭도 보통 12개 안팎으로 품는다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8개의 알은 남편이 뒷마당 구덩이를 파고 정성스럽게 묻어 주었다.

막 태어난 병아리는 제 어미 곁에 꼭 붙어서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어미도 마찬가지다. 새끼 주변만 맴돌며 혹시라도 다른 닭들이 가까이 올라치면 날개를 펼쳐 들고 날카롭게 달려든다. 지극한 모성이다.


흥미로운 건 이 병아리는 진짜 엄마는 따로 있다는 거다. 알을 품었던 애완 닭은 온몸이 까만 반면 병아리는 하얀 바탕에 거뭇거뭇한 작은 무늬가 좀 있을 뿐이고, 더 확실한 건 크기인데, 병아리의 커다란 덩치를 보면 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씨’가 아니, ‘알’이 다르다.
남편과 내가 판단하기에 이 병아리의 생물학적 어미는 우리가 부화시킨 닭 중의 하나이다. 털이 하얗고 유난히 매끄러워서 오직 이 닭에게만 이름을 붙여주며 편애했다(이름도 예쁜이). ‘예쁜이’로 말할 것 같으면 외모만 출중한 게 아니다. 수탉들이 서로 올라타려고 난리를 치면 슬그머니 빠져나올 정도로 머리가 좋고, 그래서 다른 세 마리의 암탉에 비해 머리와 등이 깔끔하다. 하지만 아무리 명석한 예쁜이라도 남의 품에서 까고 나온 제 새끼는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제 자식인지도 모르고 틈만 나면 병아리를 공격하려 드니 말이다. 물론 그런 예쁜이를 어미 닭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작고 까만 엄마 닭과 덩치가 커다랗고 하얀 병아리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낳은 정, 기른 정. 내 자식, 남의 자식. 만약 내 딸들이 내 딸이 아니라면. 내가 품고 젖을 주고 키우기만 했지 정작 생모는 따로 있다면. 흥!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나도 폴리시 암탉이랑 똑같다. 내 품에 있으면 그게 누구든 내가 목숨을 다해 지키고 사랑할 존재다. 그 사랑이 널리 널리 퍼지려면…. 나, 폴리시 암탉. 우리 집에서 ‘어미’로 불리는 유일한 존재들의 임무가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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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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