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주세요

'자폐적인 신앙을 탈피해야 한다'

'그의 자폐적인 문학 언어는.... '

'자폐적인 정부는....  ''

 

신문 기사나 책을 읽다 보면 '자폐적'이란 단어를 종종 본다.  문맥상, '타인의 비판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견이 다른 이에게 극도로 배타적이고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배타적이다거나, 폐쇄적이라는 단어보다 어감이 더 '쎄고' 더 '희소성 있는' 단어라고 필자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특히 문학에서 '자폐적'이란 말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멋부리기 위해 쓰는 말 같다. 나는 이런 표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쿵 내려앉는다. 말이란 살아있는 생명처럼 그 의미가 성장하고 변한다지만, 이 사람들이 과연 '자폐'가 뭔지 알고 과연 썼을까 궁금하다. 위의 세 개 예문은,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자폐'란, 의학적 의미에서, 전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떨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장애이다. 결국에 끌어안고 힘들어도 살아내야 하는 정체성의 일부이다. 그 고통을 저들은 알까.

 

나는 정말 걱정스럽다. 뭔가 색다르고 어감이 강한 표현으로 '자폐적'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면서 자칫 '진짜 자폐인'들이 이기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이며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할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라고 오해받을까 두렵다. 말이란 단순한 소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큰 힘을 지니기도 한다. 나에게 저 '자폐'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무겁고 버거워서, 아이가 처음 진단받고 일년 넘게 그 단어를 입에 제대로 올리지도 못했다. 대신, 좀 더 부드럽고 중화되어 들리는 공식 의학진단명칭인 ASD(Autism Spectrum Disorder 자폐스펙트럼 장애)라고 불렀다. 어차피, 만나는 사람들이 의사, 치료사, 같이 치료받는 아이들의 엄마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ASD라는 영문 진단명이 익숙했고, 그 암묵적인 의도를 단박에 이해했다. 우리는 서로 '자폐'라는 단어를 되도록 삼가하면서 대화했고, 그 와중에는 물론 아이가 자폐는 아닐 거라 부정하려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이 진단 받은지 얼마 안된 시점에는 '자폐'라는 단어를 내 입으로 말하는 순간,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통증마저 느꼈다. 말이란 그토록 무섭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듯, 자폐성 장애인도 모두 성격이 다르고, 장애라는 장막을 걷어내면 그 속에 진짜 '사람'이 있다. 레이는 성격도 섬세하고 예민하여 불안과 긴장도가 높지만, 자존심이 강해 강압적인 지시는 단호히 거부하며, 반면 조금 친해지면 한없이 애교스럽고 사람들 속에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된다. 레이는 사람들을,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같이 어울려 대화하고 놀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어눌하게나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청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인사도 하지만, 또래와는 상호작용이 매우 어렵다. 친구가 먼저 안녕~ 인사해도 레이는 대답하기 어렵다. 그건 마치, 시속 150킬로미터로 날아오는 강속구를 받아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타자와도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인 나마저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나는 레이가 또래 친구에게 관심이 아예 없는 줄 알았다.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계획안을 보내주는데, 생일 파티 사진이 있었다.

 

나: 레이, 네 옆에 이 친구 이름이 뭐야?

레이: 준서.

나: 그럼, 여기 웃고 있는 이 친구는?

레이: 경민

나: 그럼, 얘는? 여기 키 큰 애는? 여기 머리 묶은 여자친구는?

레이: 철수, 민준, 미경...

 

레이는 열다섯명 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고 있었다. 아아. 친구들에게 관심이 있구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구나.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이미 알고 계셨단다. 친구들이 놀 때 혼자 주로 놀긴 하지만, 가만히 친구들 놀이 모습을 한참씩 바라보기도 한다고 알려주셨다. 아아. 그랬구나. 아가. 너도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구나. 작년에 처음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을 무렵, 레이는 밤에 자다가 흐느껴 우는 일이 잦았다.   다섯살 사내아이답지 않게 너무나 서러운 그 흐느낌에 잠에서 깬 나는 아이 손을 가만히 잡고 어둠 속에서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앉아 있곤 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쯤이면, 내 얼굴도 젖어 있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서야 알았다. 우리 애기 많이 힘들었구나. 지금도 힘들겠구나.

 

올해 4월이었나, 또다시 생일 파티 사진이 왔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무심한 듯 물었다.

나: 와, 생일 파티 했구나..이번 달 생일은 여자 친구들이 많네..근데 레이, 너네 반에 좋아하는 친구 있어?

레이: 이히히히히히~~~

아이가 갑자기 웃고 몸을 배배꼬며 얼굴을 가리고 소파에 뛰어들었다. 어마나? 이 녀석 보게. 있긴 있구먼.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나: 어서 말해봐~~~ 엄마한테 알려줘~~ 얘야? 이 친구야? 아님 노란 옷 입은 이 친구?

레이는 내 손길을 뿌리치다가 자꾸 캐묻자 사진 속의 예쁘장한 여자 친구를 손으로 짚더니 다시 도망가버렸다. 그렇지. 이 맘 때면 남자 여자 구분하고, 여자친구 남자친구 서로 의식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지. 우리 아들, 잘 자라고 있구나. 나는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이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 초여름, 언어치료 시간에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에 대해 공부한 날이 있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주변 가족,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감정을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얼굴 표정이나 비언어적인 감정 표현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눈치 없다고 오해받기 십상인데, 이는 뇌 신경 관련 부분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학습'해서라도 익혀야 하는 것이다. 레이의 언어치료 선생님은 처음 치료를 시작한 30개월 무렵부터 계속 가르쳐 주신 선생님인데, 엄마인 나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아이의 컨디션이며, 언어 발달 상태를 짚어내는 분이다. 아이를 마음으로 이뻐하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아이도 없는 처녀 선생님이 어쩜 저렇게 아이들에게 잘하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레이도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나 눈맞춤이 잘 안되는 날에도 씨익 웃으며 선생님 목을 꼬옥 끌어안으며 애정을 표현한다. 수업이 끝나고 상담시간이 되었다. 35분 수업에 5분 상담인데, 얘기하다 보면 상담이 10분이 훌쩍 넘어가는 바람에 선생님은 쉬는 시간도 거의 없다.

" 레이 어머님, 오늘은 감정표현에 대해 공부했는데요, 제가 '레이는 언제 행복해? 언제 슬퍼?'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림책 볼 때 행복해요. 엄마랑 놀이터에서 놀 때 행복해요. 그렇게 대답했어요. 그럼 언제 슬프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안놀아 줘서 슬퍼요'라고 얘기하더라구요."

 

물론 이맘때 아이들은 서툰 친구관계 때문에 상처도 받고, 싸우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자기랑 안놀아준다고 서운해한다. 그러나, 레이는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뭔가 다름을 자각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가슴이 시큰해졌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어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 고통, 머리 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데 입으로 나오지 않는 아픔을 엄마인 나조차 막연히 짐작할 뿐,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다. 선생님이 덧붙여 말했다.

" 그래서 제가 '레이, 같이 놀고 싶으면 먼저 같이 놀자~ 이렇게 말하는 거야. 친구 이름 부르고, 누구야 같이 놀자~ 이렇게. 알았지? 라고 말해줬어요. 집에서도 그렇게 지도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신이 나서 길가의 간판을 줄줄이 읽고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처음 진단받을 때 머리 속에 떠올랐던 내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이 다시 생각났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인구 십만의 '도시'로 이사온 후 일주일만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베이비붐 시대, 학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수업했고, 어느 오후반 등교날, 나는 똑같은 창문, 똑같은 문이 여러 개 있는 드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길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 지 몰랐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교실로 데려다 주었는데, 예순명이 넘는 반 아이들 얼굴이 다 똑같이 보이고,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몰라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자리에 앉아서 집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레이가 자폐라는 진단을 받은 후, 나는 내 아들이 한 평생 그 느낌으로 세상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그 첫번째 순간이 지금 온 것이다.

 

부랴부랴 사회성 수업을 알아보고, 선생님께 레이가 한 얘기를 알려드리고 친구들과의 놀이에 참여할 때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거듭 부탁드렸다. 레이를 예뻐하시는 통합 담당 선생님께서는 안타까와하시면서도 그만큼 친구에게 관심도 많고 사귀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이니 좋게 생각하자며 나를 오히려 격려해주셨다. 그 날 이후, 레이는 친구에게 먼저 'OO야 같이 놀자~' 말을 걸기도 하고 (물론 그 뒤에 대화는 이어지기 어렵다),  선생님의 중재 하에 같이 놀이에 참여하며 즐거워하며, 친구가 먼저 '레이, 어서 밥먹자~' 하면, '그래~' 라고 대답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상의 대화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는 눈부신 성취이며, 믿기 어려운 기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폐성 장애인 중에 자폐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은 없다. 그 고통을 말로 표현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사람을 향하고, 사랑받고 사랑하길 원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제발 '자폐적'이란 말을 엉뚱한 곳에 함부로 쓰지 말라. 알고 나면 당신도 차마 쓰지 못하는 말일 테니.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레이와 하루 일과를 얘기하고, 마지막에 '레이, 엄마는 레이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답으로, 레이가 '엄마 사랑해'라고 먼저 얘기한 적은 내 기억에 딱 한 번이다. 꼭, '엄마한테도 인사해야지~'라고 촉구를 줘야만 한다.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하면서도, 먼저 '나도 사랑해요, 엄마'를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자폐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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