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피아골_ 4,5월 피아걸음 후기 피아골댐

지리산에 비가 온다. 풀과 나무는 뿌리와 줄기, 잎으로 빗물을 빨아들여 한층 생기를 더할 것이며, 풀과 나무의 힘으로 여름은 더 빨리 올 것이다. 어떤 빗물은 흙과 돌을 적시며 땅 아래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어떤 빗물은 계곡을 흘러 강으로 들어가 바다와 만날 것이다. 그러그러한 운명으로 한 순간도 지구를 떠나지 않고 순환하는 물이 있어 우리의 삶도 이어지고 있다.

3월28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사단법인 한백생태연구소가 주관한 강의 ‘물은생명이다’에서 김정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물 없이는 생명체가 만들어 질 수도, 만들어진 생명체가 생존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육상생물들이 비로 내리는 물과 그 물이 흐르는 강과 호수와 지하수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한다.

1960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물 좋다고 세계에 자랑하던 나라였다. 어느 강에서나 깨끗하고 맛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었고 멱을 감을 수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많은 개울물이 마르고 강들은 훼손되었으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시지 못할 정도로 전국의 물이 급격히 오염되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마시는 물만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맑은 물 대책을 여러 번 발표했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1991년 페놀사고 이후 맑은 물 대책에 총 30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했다고 하나 물은 더 나빠져서 지금은 안심하고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이 국민의 1%도 안 될 정도가 되었다.

홍수를 관리하기 위하여 1970년대 이래로 1000여개의 대형 댐을 지어 세계 제7위, 밀도로 따지면 세계 제1위의 대형 댐 보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오히려 홍수 피해액은 매년 백억 원 단위에서 지금은 조원 단위로 100배가량 껑충 뛰었다.‘고 하였다.

작년 12월 국토부가 피아골에 댐을 짓겠다고 발표한 후 물, 댐, 강 등에 대한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거짓과 협박으로 일부 토건업자와 관료들만 살찌우며, 국민들의 삶터를 빼앗고 죽음으로 내모는 국가에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시간과 자연의 기운이 있어야만 가능한 유형, 무형의 문화공간을 물로 덮겠다는,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들의 무지막지한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모순덩어리 국가에 대항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은 후 매달 한 번씩 피아골을 걷고 있다. 이것밖에 못하는 우리가 너무 안이한가 싶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매달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한다.

‘이곳을 걸을 수 있으니, 걸으며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걸으며 나누는 인사로 어르신들에게 작은 기쁨을 드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리라, 저녁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말소리가 흩어지는 공간 안이 잠시라도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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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피아걸음은 연곡분교에서 시작하여 기촌마을 솔숲에서 마무리하였다. 연곡분교의 정식 이름은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장이다. 1997년 3월 1일 토지동초등학교에서 분교로 격하된 연곡분교는 2000년대에 들어와 폐교 위기를 맞이했었다. 전라남도 교육지원청이 20명 이하의 학교는 폐교하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행히 등교시키는 학부모의 60% 이상이 폐교를 원하지 않는다면 학생 수가 폐교를 결정하는 잣대가 아닌 것이 되어 위기를 넘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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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곡분교로 온 후 매일이 행복하다는 최관현 선생님

연곡분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표정은 하늘만큼 맑고 밝았다. 크기를 정하여 기준 이하는 없애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화사함이었다. 피아골에 댐이 만들어진다면 연곡분교가 있어 가능했던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도, 아이들의 화사한 미소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획일화된 세상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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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분교를 나와 남산마을을 지나자니 건너편 평도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피아골 양옆에는 직전, 농평, 당치, 평도, 남산, 죽리, 신촌, 원기, 조동, 중터, 추동, 기촌 등 12개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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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마을에서 바라본 평도마을

오래전, 살만한 곳을 찾아 피아골에 들어온 한두 가족이 모이니 마을이 되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또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마을들이 피아골을 정겨움과 따뜻함이 흐르는 곳으로 바꿔 놓았다. 그게 지금의 피아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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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읍과 피아골을 오가는 군내버스, 1시간에 1대씩 다닌다.

원기마을 위 큰 나무 아래에 멈춰 혼돈의 세상에 대해, 초록으로 바뀌어가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호명된 피아골에 사는 장기영 님이 ‘보리밭’을, 구례읍에 살며 매달 피아걸음에 빠지지 않는 정태연 님이 ‘가고파’를 불렀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가 애잔해지는 시간이었다. 더 할 수 없이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노래하는 우리의 마음들이 모아지고 모아져 피아골을 지금처럼 흐르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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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마을에 사는 장기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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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읍에 사는 지리산학교 구례/곡성 교사 대표 정태연 님

산벚나무와 고로쇠나무가 꽃을 피우고, 꽃만큼 아름다운 층층나무 새잎이 세상과 마주한 날, 멀리 당치, 농평마을까지 보이는 길에 우리의 사연을 적어보았다. ‘2013년 어느 맑은 봄날, 목아재로 향하며 우리는 찡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참을 느꼈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은 피아골, 그곳엔 묘한 마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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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아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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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로쇠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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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아재 길에 걸으면 피아골 마을들이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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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아재에서 기촌마을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진달래가 가득한 길이었다. 산길에서 만나는 진달래 꽃빛깔이 마음을 빼앗는 길이었다. 동물과 사람이 다니는 길, 지리산 곳곳의 길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나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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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의 어떤 마을은 큰길에 접해있고, 어떤 마을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목아재에서 기촌마을로 가는 산길을 걷다 숨겨져 있던 추동마을을 만났다. 설마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었는데 보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추동마을은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뒷동산을 가진 마을로, 그 자체가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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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동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남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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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시게 빛나는 추동마을 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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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동마을길

4월 피아걸음 마무리는 기촌마을 솔숲에서 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신비롭고 경이로움 가득했던 4월 걸음에 감사하며 5월 걸음을 기다리겠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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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에 진행된 5월 피아걸음은 당치마을 입구에서 시작하여 당재를 넘어 목통마을까지 걸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피나물, 미나리냉이 꽃이 지천이었다.

5월 피아걸음은 걸어야만 느낄 수 없는 바람소리와 눈높이를 낮춰야만 보이는 들꽃들에 감탄한 걸음이었다. 물과 토종꿀을 선뜻 내어주고, 힘들게 뜯었을 산나물을 한 움큼 집어주시는 마을 분들의 따스함에 놀라며, 이런 세상이 아직도 남아있음에 흐뭇한 걸음이었다.

사진은? 사진은 없다. 5월 피아걸음은 마음으로 상상하시라.

피아골이 지금처럼 흐르길 소망하는 6월 피아걸음은 8일 노고단에서 시작하여 돼지령과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피아골까지 걷는다. 6월 피아걸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여름날 지리산의 초록빛이 삼삼히 그려진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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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