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좋아했던 늦가을 멧돼지 피 그(그녀)를 만나자!

* 이 글은 국시모 지리산사람들이 발간하는 계간신문 "지리산인' 2013년 봄호에도 실린 예정입니다.

 

대통령도 좋아했던 늦가을 멧돼지 피

 

글과 사진_ 윤주옥 사무처장, 그림_ 박은경 님

 

한창수 님(81세)을 소개해 준 최동기 님은 그를 한샘이라 불렀다. 그를 소개해주면서 최동기 님은 말했다. ‘한샘이 최고야. 구례에서 사냥이나 했다는 사람들, 다 한샘에게서 배웠거든. 귀가 먹어 잘 못 들으니 큰 소리로 물어봐야해. 그때 이야기, 곰, 멧돼지 어떻게 잡았는지, 누구랑 함께 다녔는지.’

한샘, 그를 만날 날이 다가오자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큰 키에 우락부락, 나이가 있으니 얼굴에 주름살이 많겠지만 눈매는 날카로운, 당연히 다리는 길고, 손아귀 힘은 무척 셀 것으로.

그를 만난 건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인 어느 봄날, 문척 옛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있는 최동기 님 사무실에서였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나는 예상을 빗나간 그의 모습에 순간 허탈해졌다. 그는 낡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투명한 그의 눈망울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굵은 주름살, 웃음, 손놀림, 연약한 몸매, 구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웃 농사꾼 어르신의 모습이었다.

나의 인사에 그는 눈을 껌벅이며 최동기 님을 봤다. 나와는 소통하기 싫다는 걸까. ‘한샘, 내가 얘기했던 사람이라, 한샘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신문에 낼 거야, 피해되는 일 없도록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 최동기 님이 소리치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는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목소리가 작아서 만이 아니라 서울말에 가까운 내 어투가 그에게는 낯설었으리라.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내 아버지보다 17일 빨리 세상과 만났다. 그와 나와의 작은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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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야기를 해달라는 최동기 님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그는 1948년 빨치산이야기를 했다. ‘반란’이란 표현을 쓰며, 문척지소 근처에서 보초를 서다 빨치산에게 끌려가 살아나온 이야기를 먼저 했다. 그는 뒤에서 총을 들이대는 빨치산에 못 이겨 문척 지소, 죽마리 사격장, 반냇골, 도실봉, 용지동을 돌아 백운산으로 들어가야 했다. 등에 쌀 반가마니를 짊어지고 맨발로 산을 올라야 했다. 그는 아픔보다 추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추웠다고 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되는 순간, 춥고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들, 그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냥이야기가 아니라 그해 겨울의 이야기였다. 3명이 끌려갔다가 2명만 살아온 이야기, 지리산자락 골골마다, 집집마다 간직하고 있는 그해 겨울, 그해 여름의 이야기,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온다는 기라, 멧돼지 피 먹으러. 전라도 포수들이 총 출동해서 산으로 향했는데, 칼빈으로 은어 잡는 양포와 몰이를 잘하는 정씨, 나 이렇게 3명이 한조가 되어 문척 뒷산으로 올라갔지, 멧돼지를 잡아가지고 내려왔는데.. 참, 남원에서 드시고 가셨다고. 동네 사람들하고 갈라 먹었지. 늦가을 멧돼지 피가 좋거든, 여름에 먹으면 큰일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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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야기를 끝난 후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뭔가 떠오르면 이야기를 했다. 사진을 놓고 설명하듯 이야기를 했다. ‘곰도 잡았었지, 백운산에서 3명이 함께 가서, 곰은 쓸개보고 잡은 건데, 그때도 곰을 잡으면 안 되던 시절이어서 몰래 숨겨놨다가 썩어서. 버렸지 뭐’

그는 멧돼지는 몇 천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사냥을 하러 구례 천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광주까지 갔었다고 했다. ‘내가 젊어서 돈을 알았으면 부자가 되었을 텐데, 아 몰랐지. 그냥 동네 사람들하고 갈라먹고, 그래서 할머니에게 지청구를 들어, 지금도. 산에 가라면 좋아서 뛰어갈 거라고 할머니가 말해.’ 할머니는 그의 아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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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그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다. 그에게 총을 주며 멧돼지를 잡아 달라 부탁한 사람도 많았다. 산동, 문수리, 피아골, 외곡, 하천리 곳곳을 다니며 사냥을 했다. ‘공양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발을 잘해, 동물 발자국을 따라가서 잡는 거지. 한번은 공양생이 곰 발을 따라 곰 굴까지 가서 곰 굴을 들어다보다가 그만 낯을 긁어 버린 거라. 피가 철철 흘러서. 곰이 몸을 건드려야 대들지, 그렇지 않으면 도망가는 동물이라.’

 

반달가슴곰, 멧돼지, 노루, 고라니, 삵... 야생동물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다. 고라니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는 낯설고 신비롭다. 그에게서 스펙터클한 사냥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안나, 많이 잡았지, 특별한 건 없어.’를 반복했다. ‘젊어서는 맥없이 돌아다녔지, 지금서야 농사짓고 있어. 늙은 께, 산에 못가니까.’ 그에게 사냥이야기는 농사짓는 이야기처럼 그냥 삶의 이야기였다. 특별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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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