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산만 보이는, 남원 산내 부운마을 그(그녀)를 만나자!

춥고 눈 많은 겨울날, 지리산 북쪽에 있는 남원 산내 부운마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가을 ‘지리산국립공원 보전관리계획 중간보고회‘에 갔을 때 부운마을에서 온 주민이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를 향해 했던 말들이 나를 향한 말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쏟아낸 말들의 여운이 해를 넘기지 말고 그를 만나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었다.

50살 전후의 그는 ’국립공원,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사유지를 보상하던지, 아님 뭔가 할 수 있도록 해주던지, 이도저도 못하게만 하면 어쩌겠다는 겁니까?‘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쌩 나가는 그를 잡아 핸드폰 번호를 받았다.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부운마을은 와운, 반선마을과 함께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속한다. 마을 여기저기에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에서 설치한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방지 전기울타리’가 있어 밭 근처에서 얼쩡거리다보면 반달가슴곰과 멧돼지, 고라니를 만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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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마을은 상부운, 중부운, 하부운으로 나눠지는데 보통 부운마을 하면 하부운을 말한다. 하부운은 오래된 마을 터인 중부운이 한국전쟁 때 소개되면서 생긴 마을이다. 지금 하부운엔 12가구가 살고 있고, 상부운엔 3가구 정도가 산다. 하부운과 상부운은 모두 부운마을에 속하지만 상부운 사람들의 삶과 생활 방식이 독특하여 하부운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중부운, 상부운은 어떤 모습일까? 하부운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길옆엔 감나무가 천지이고, 감나무마다 까치들이 먹기엔 너무 많은 감들이 홍시가 되어 달려있었다. 도시 사람들이 봤다면 아깝다며 난리가 났을 텐데, 눈길 머무는 곳마다 감이 달려있으니 원래 이곳의 겨울은 감나무에 감이 달려있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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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운을 가는 초입, 부운생태마을 생태관광 체험단지라 되어있는 곳이 하부운의 원 터 중부운이고, 이곳에서 한 20분쯤 걸어가면 상부운이 나온다. 상부운은 길도 애매하고, 안내판에 마을 표시도 없어 자칫 부운치로 올라가기 쉽다.

상부운으로 가는 길, 작은 개울을 건너 어디로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는 안 보일만 하면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고, 어디로 갔을까 찾으면 컹컹하며 존재를 알려줬다. 개를 따라가니 집이 보이고, 개와 닭, 도끼, 곶감 등 사람의 흔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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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하고, 뭔가 특별함이 있을 것 같아 사람을 찾아 문을 두드리고, 큰 소리로 불러도 봤지만 아무도 만날 수는 없었다. 다들 산 너머로 일을 나간 모양이다. 상부운에 사는 사람들, 궁금하였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아쉬울 때마다 되뇐다. 다음에 봐요, 다음에 하면 되지요, 이번 생에 안 되면 내생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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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운은 현실의 마을 같지 않았다. 상부운에서 하부운으로 내려오는 길은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내려오는 길이기도 했다. 하부운 한복판에서 민박과 식당을 하는, 나에게 핸드폰 번호를 건넸던 남자, 부운마을 이장 김형식 님(54세)은 이곳에서 태어나 2~3년간 외지에 나갔다온 것 말고는 50년을 이 마을에 산 사람이다. 그에게 부운마을은 애증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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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마을엔 마을회관이 없지요. 국립공원 안이다 보니 마땅한 터가 없고, 기금도 부족한 상황이라서, 아쉽죠, 어르신들이 마땅히 만날 곳이 없으니까요. 국립공원이요, 8부 능선 아래는 사유지인데,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재산세는 내는데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정부 지원사업도 못하고, 화나지요.’

그의 화는 충분한 동의 없이 집과 논밭, 산을 어느 날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국가에서 이주계획을 수립하면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한다.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국립공원, 국립공원 보전운동을 하는 나로서도 속상한 상황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국립공원에 분명히 반대하였다. 생태계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예전엔 농사를 짓기 위해 산에 불을 냈었죠. 그러니 산딸기다, 머루다 뭐 이런 것들이 많아 야생벌도 많았고, 곰도 많았지만 지금은 산이 울창해서 먹을 열매가 없어요. 그러니 벌도 없고 곰도 없고 그런 거지요. 공원 안에 사는 주민들, 특히 고로쇠물 받는 주민들이 산을 지킵니다. 왜냐? 나무가 잘못되면, 나무가 사는 산에 뭔 일이 있으면 돈을 벌 수 없으니까요, 살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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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은 폐교가 된 덕동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덕동초등학교 학생이 160명쯤이었다니 뱀사골에 사람이 많이 살았었나 보다. 덕동초등학교까지 3.5km, 산내중학교까지 8km를 걸어 다닌 그에게 어릴 때 꿈을 물으니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스트롱의 달 착륙 소식을 들으며 진실로 우주로 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산속에 파묻혀 살던 소년이 우주로 나가는 꿈을 꾼다,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꿈을 간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산골소년은 남원에서 열린 큰 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니까 지금은 그림 그릴 시간이 없지만 더 나이 들면 다시 그림을 그려볼까 한다고 했다. 중학교 다닐 때 수험료를 못내 정학 처분까지 받았던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였지만 행복하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논 한 평이 없어서, 국유지에서 나무 베어서 담배 농사지어서 연명하였지요. 먹는 것만 해결하는 삶이었는데, 중학교 졸업 후 아버지, 형이랑 야생벌을 만나면서 살림이 좋아졌어요. 아버지가 산에서 야생벌을 발견하고, 야생벌 번식에 성공하면서 우리집만이 아니라 산내지역 농가들의 수익을 창출하게 되었지요. 결혼할 즈음엔 꽤 잘 살았어요. 이곳 뱀사골도 88도로가 뚫리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장사가 잘되었고, 지금은 관광객 줄었어요. 심각한 상황이지요.’

야생벌 사업이 번창하고, 관광객이 몰려오던 시기, 살림이 좋아졌고 그 때 그는 남원 사는 어린 처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88년 1월에 결혼하여 24년째 부운마을에 살고 있는 그의 아내는 결혼하면서 지리산을 봤다고 한다. 남원에 살았지만 지리산, 말만 들었지 본 적이 없었다고, 결혼해서 뱀사골도 와보고 출세했다며 피식 웃는다.

결혼하며 처음 본 지리산, 병풍처럼 산만 보이는 뱀사골계곡으로 들어온 그녀는 암담했단다. 한 달 동안 울었다고, 바로 아래 여동생이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매로 한 결혼이었으니 원망도 많았을 것 같다.

‘여기요? 결혼식 며칠 전 짐 들이면서 처음 와 봤어요. 짐 들어놓고 나가려 하는데 눈이 많이 와서 나갈 수 없는 거예요. 이 집을 지은 게 96년이었고요. 그 전엔 이 터에 집이 다섯 채 있었어요. 화장실에 돼지가 사는 그런 집이었죠. 민박 오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니 대출 받아서 집을 지었고, IMF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때부터 손님이 끊겨서, 대출한 돈 갚는 게 힘겹죠 뭐’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울컥했다. 중학교 때부터 남원 친척 집에 아이 둘을 맡겼다는 그녀는 밥 먹을 때마다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사는데 연연하다보니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가 싫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여기로 들어와 사는 건 반대한다고, 그냥 쉬러 들르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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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아버지는 입담이 좋은 분이었다. 시아버지는 와운에 살다가 한국전쟁 때 와운이 소개되자 하부운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그녀는 시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해줬다.

어느 날 산을 돌아다니다가 산막으로 돌아오니 엉덩이가 누런 것이 막사 안을 들여다보고 있더란다. 해서 불쏘시개를 만들어 엉덩이를 쑤시니 막사 담을 넘어 도망갔다고, 한국전쟁 직후의 일이라고. 엉덩이가 누런 것, 이건 호랑이였다.

예전엔 소문난 이야기꾼들이 있었다. 이야기꾼이 오는 날이면 동네사람들은 마을 밖 소식과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밤새워 들었다. 그녀의 시아버지도 그랬던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그와 그녀가 사는 부운마을은 오늘 마을총회를 한다. 중요한 날이라고, 마을 이장을 뽑고, 마을사람 모두가 마을 밖으로 나가 밥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그는 이장을 내놓을 생각이라 하였으니, 어느 날 부운마을을 방문하면 그는 더 이상 이장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마을사람으로 마을 안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부운마을엔 이곳에서 태어난 그와 결혼하면서 지리산을 처음 봤다는 그녀가 산다. 그들은 기회가 되면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하였으나 반백년을 살아온 마을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립공원이 모든 사람을 떠나보내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지리산이란 인연으로 만나, 지리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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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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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