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시위 55일째(5월 20일)_ 그 길엔 쇠물푸레와 물냉이 꽃이 피었다 지리산케이블카백지화

성삼재도로라 불리는 지방도 861번(천은사~반선)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도로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지리산의 목재를 빼내기 위해 뚫었던 길이며, 한국전쟁 전후에는 빨치산 토벌을 위해 사용하던 군사작전도로였다.

성삼재도로가 지금과 같은 포장도로가 된 것 1988년이다. 당시 정부는 서울올림픽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지리산국립공원을 편하게 관광하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8m 포장도로를, IBRD 차관 등 68억 원을 들여 건설하였다. 정부는 성삼재도로 건설로 차량 통행이 많아지자 1991년 산 하나를 허물어 성삼재 주차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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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봉에서 바라본 성삼재도로

 

지리산국립공원을 둘로 쪼갠 성삼재도로는 지리산국립공원 이용행태도 바꿨는데 화엄사나 중산리에서 시작되던 지리산종주산행자들은 편하고 빠른 성삼재를 택하여 종주산행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성삼재도로는 지리산국립공원 생태계를 동서로 단절하고, 밀렵꾼과 산나물 채취꾼들이 야생동식물을 손쉽게 포획, 채취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또한 성삼재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으로 인한 자동차 배기가스와 소음, 냄새 등은 지리산국립공원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으며, 경사와 굴곡이 심하여 교통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성삼재도로는 지리산국립공원은 편하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는 관광지로 변화시켰으며, 지리산자락에 살며 민박, 식당으로 소소하게 돈을 벌던 지역주민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도로가 되었다. 도로든, 골프장이든, 케이블카든 자연을 훼손하며 들어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마치 큰 무엇인가를 줄 것 같지만 실은 자연과 함께 지역도 황폐화시킨다는 것을 성삼재도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지리산생명연대는 2003년부터 성삼재도로의 전망을 고민하기 위한 노력으로 성삼재도로 걷기 ‘걸어서 노고단까지’를 하였다. 성삼재도로 걷기는 1년에 한번이라도 성삼재도로를 걸어서 올라가며 성삼재도로의 문제점을 체험하는 자리였다.

그렇지만 성삼재도로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는 우리들의 노력과는 정반대로 성삼재도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연결하는 지방도라는, 그 도로상에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이런 와중에 지리산국립공원에 접한 4개 지자체는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고 경쟁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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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진행된 제4회 성삼재길 걷기

 

5월 20일,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엔 봄꽃이 한창이었다. 작년과 같은 꽃일 텐데, 꽃들은 언제나 지금이 제일 예쁘다. 바라보고, 사진 찍고, 가끔씩 도감을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노고단대피소 앞에 다다른다. 꽃들이 없었다면, 고개 숙여 바라보지 않았다면 힘들게 느껴졌을 길, 그 길엔 풀과 나무들이 살고 있고, 그들 덕에 내 발은 힘든 줄 모르고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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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물냉이, 쇠물푸레나무, 딱총나무, 신갈나무, 털잔대

 

3월 26일부터 시작된 산상시위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는 분도 있고, 달걀 농장에 바쁜 틈을 쪼개어 올라오는 분도 있다. ‘뭐야, 지리산에 케이블카라고, 이건 아니지, 하자, 지난번에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내려오며 할게요, 대체 어디다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건가요?’ 다양한 질문에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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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노고단대피소 앞에서 진행되는 지리산 케이블카 백지화 산상시위

 

‘4개나 추진 중이예요, 서명해주시면 힘이 됩니다, 국립공원이잖아요, 감사합니다!’ 햇볕에 눈이 아프고, 목이 마르고, 다리가 뻐근해도 산상시위를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길은 행복하다. 지리산과 함께 하였다는 뿌듯함,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마주했던 아이들의 보석 같은 눈빛, 잊지 못할 지리산의 초록빛, 우리들의 봄날은 지리산 안에서 깊어간다. 초록빛 속에서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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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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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