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영산도와 꿈꾸고 싶다_ 낯선여행 1탄 후기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하 국시모)에게 2013년은 특별하다. 2013년은 국시모가 창립한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국시모는 창립20년을 맞이하며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하 낯선여행)도 그중 하나이다.

낯선여행은 혼자서는 나서기 힘든 곳으로 문뜩 떠나는, 국시모 창립 후 최초로 기본경비를 국시모가 지원하는, 회원 전체를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하여 선택된 회원만을 초대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여러 이유로 낯선여행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기다려지고, 설레는 아사사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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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2일, 낯선여행은 ‘바다에 뿌려진 360개의 보석’이라는 제목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영산도-흑산도에 다녀왔다. 진행자를 포함하여 12명이 참여한 낯선여행을 위해 무작위로 추출된 100여명의 회원에게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보냈다. 100명 중 10명은 함께 가겠다고 했고, 30명은 가고 싶으나 시간이 안 되어 아쉽다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했으며, 60명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낯선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오고 후기를 쓰는 지금도 반응 없던 60명의 회원은 ‘목의 가시’처럼 자꾸 걸린다. 국시모와 회원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목의 가시’ 덕분에 국시모의 회원활동은 더 자상하고 촘촘해지리라 기대한다.

 

<낯선여행 1탄_ 첫 날>

 

# 6월 1일 12시30분

‘목포여객선터미널 앞인데 어디로 갈까요?’ 낯선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진행자, 윤주옥 사무처장, 무작위 추출에 어떠한 감정과 정치적 압력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국시모 13년차 상근활동가)를 제외한 모두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목포여객선터미널(이하 터미널)로 들어섰다.

그녀(그)는 터미널에 들어서서도 나를 찾지 못했다. 나는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그)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매점 앞, 하늘색 잠바, 현수막도 있어요. 아! 여기요?’ 어렵게 만난 11명은 이야기를 하며, 지도를 보며 배 시간을 기다렸다.

 

무안에 살고 있는 김영덕 님은 목포 가까이 사니 특별히 선택된 것 아니냐고 했다. 낯선여행이 공지되었을 때 무작위 추출이라 하여 별관심이 없었는데 초대장을 받고 너무 기뻤다고 했다. 섬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때 신안 앞바다에 있는 섬들을 여행했지만 섬들이 돈을 따라 변해가는 모습에 실망하고 발걸음을 멈춘 상황이었다.

김민정 간사가 구태여 다시 설명했다. ‘아닌데.. 엑셀로 되어있는 회원명부를 무작위로 돌려서(이건 전문용어이다!) 추출한 거예요. 제가 한 게 아니니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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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여행 현수막을 들고 참가자를 기다리는 김민정 간사와 김영덕 님(오른쪽)

 

무작위라니, 그럴 리가 없어, 뭔가 판단의 근거가 있겠지 등 낯선여행에 대해 오가는 회원들간의 말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신선하게 느껴졌다. 낯선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백호림 님은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요, 저기 안내판에 영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요. 저기 가는 게 맞아요?’

무인도? 그럴 리가! 뭔가에 홀린 듯했다. 서둘러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안내한 판넬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영산마을, 엑기미마을로 형성된 이곳은 지도군 흑산면의 지역으로서... 신안군지에 따르면 봄을 맞는 꽃이라는 영산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 하여... 주민이 차츰 줄어 지금은 마을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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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호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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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안내판에 적혀있는 영산도에 대한 설명

 

‘하하.. 잘못 기록된 거지요. 주민 수는 적지만 학교도 있는데, 잘못 기록된 걸 텐데.’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영산도는 처음이니 영산도가 무인도일 수도 있었다. 낯선여행을 함께 기획한 오창영 님은 전화로 영산도에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그가 없는 상황에서, 영산도가 무인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됐다. 그를 만날 때까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낯선여행은 진짜 ‘낯선’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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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영 님

 

# 6월 1일 15시10분

배를 타고 깜박 졸았는가 싶었는데 흑산도라 했다. 흑산도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산도로 들어가는 배는 흑산도항이 아닌 저쪽 어디 굴다리를 지나 마을 배를 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영산도 마을선착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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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마을선착장으로 가는데 오창영 님이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휴우, 이제는 영산도가 무인도여도 상관없다고 생각됐다. 그는 배 안에서 영산도를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는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영산도가 가까워질수록, 흑산도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잠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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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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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선착장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영산도를 명품마을로 지정했다. 국립공원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협력하여 난개발로부터 지역을 보전하기 위한 시도였다. 2013년 5월 현재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정한 명품마을은 영산도를 포함하여 관매도(다도해해상), 상서(다도해해상), 평촌(다도해해상), 내도(한려해상), 함목(한려해상), 골뫼골(월악산), 구산(덕유산), 죽령(소백산) 등 9개이다.

언제부터인가 중앙정부 각 부처는 농산어촌에 생태산촌마을, 효사업특구, 가고 싶은 마을, 행복마을, 이 마을, 저 마을 등을 지정하여, 수십, 수백억 원을 퍼붓고 있다. 그 결과, 농산어촌의 모든 마을들에 요상한 건물과 생뚱맞은 안내판이 걸리며 점점 보기 흉한 곳이 되고 있으니, 영산도가 명품마을로 지정된 것이 잘된 일인지는 가보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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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도에는 영산마을과 엑기미마을이 있었는데, 지금 엑기미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터미널 안내판에 있던 ‘지금은 마을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엑기미마을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기록한 것이었다.

이제 영산도엔 영산마을만 있고, 영산마을은 영산도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그러니 마을주민들은 평생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다독이며 살아야 한다. 발가락 사이 티눈이 커지고, 흰 머리가 늘어가는 사연까지 공유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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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앞바다에서 본 영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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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뒷산에서 본 영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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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마을 그림

 

우리를 마중 나온 최성광 이장은 영산도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가 국립공원 명품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향 영산도가 무인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며 무조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육지에서 100km 떨어진 섬을 찾아온 사람들이라면 여기 사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그럼에도 왜 이곳에 계속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애틋한 꿈에, 마을주민들의 소박한 바람에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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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광 이장

 

영산마을 뒷산 전망대에 올라 영산도가 왜 영산도란 이름의 섬이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영산화가 많이 핀다하여? 나도 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산도엔 영산화가 없다고 한다. 마을 뒤 산세가 신령스런 기운이 깃든 곳이라 하여서? 이 이야기는 다른 곳에도 있는 밋밋한 이야기다.

전망대에서 홍어 모양의 주민 공동경작지를 보며 여러 추리가 오갔다. 추리의 결론은 대강 이렇다.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실시된 ’공도‘정책으로 영산도(그땐 이 이름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육지와 큰 섬으로 이주되었다. 일부 주민들이 영산강 하구 영산포에도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섬을 잊지 못해 잠시 평온해진 시기에 다시 섬으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영산포에 살던 주민들이 다시 섬으로 들어오면서 영산도라 불린 게 아닌가 싶다. 홍어는? 영산도 주민들은 삭히지 않은 생물(막 잡은) 홍어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영산도에 살던 주민들이 홍어가 먹고 싶은데 생물 홍어를 먹을 수는 없고, 어찌어찌 영산도에서 잡은 홍어가 영산포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삭았는데 먹어보니 맛이 괜찮아 삭힌 홍어로 먹게 된 것이다.’

우리의 추리가 정확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잡학다식으로 국시모 회원 중 으뜸인 고영석 님과 백호림 님이 적극 참여하여 만들어진 추리니 50%의 신뢰도를 갖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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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란 이름의 유래에 단서가 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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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모양의 주민 공동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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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석 님

 

영산도 뒷산은 육지에 있는 큰 산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산세와 쭉쭉 뻗은 소나무, 후박나무, 다정큼나무 등의 상록활엽수, 땅에 붙어사는 석위, 부처손, 마삭줄, 콩자개덩굴 등이 협동하며 예쁘게 살고 있었다. 고영석 님은 나무 이름은 물론, 나무에 붙어사는 풀, 나뭇잎이 누렇게 뜬 원인 등 나무와 관련한 우리의 질문에 막힘없이 특유의 길고도 세심한 대답을 해줬다. 그는 광양에서 나무병원를 한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나무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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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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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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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삭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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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자개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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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대봉과 마을로 내려가는 탐방로 삼거리에서

 

우리는 오창영 님을 따라 마을입구에서 시작하여 전망대에 올랐다가 마을뒷산을 한 바퀴 돌아 영산분교를 거쳐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을 돌담은 바람으로부터 집만이 아니라 파와 감자, 고추 등도 막아주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돌이 없었다면 영산도에 사람이 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오여주 님은 낯선여행에 참여하게 된 것을 당첨이라 표현하며, 이런 당첨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영산도든, 지리산이든 이제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싶다고, 곧 그리 될 거라 했다.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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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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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 길을 걸어나오는 오여주 님(왼쪽)

 

영산도를 걸어보니 영산도는 흑산도와 떼어놓고 얘기하기 힘든 섬이었다. 흑산도로서는 영산도가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니 늘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고, 영산도에게는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큰 섬 흑산도가 의지처 였을 것이다.

영산도 주민들은 의지처가 되어준 흑산도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흑산도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섬에 들어온 우리들도 흑산도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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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홍도, 영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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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뒷산에서 바라본 흑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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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마을 앞 해변에서 바라본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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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표지판

 

# 6월 1일 18시40분

마을공동식당 ‘부뚜막’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거북손’이라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바다 먹을거리를 오물오물 먹으며, 섬에 살면 굶어죽진 않을 텐데, 사람들은 왜 섬을 떠나는 걸까 싶었다.

영산도는 한때 98가구 450명쯤이 살았다고, 그때는 학생이 1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22가구 43명이 사는데 그나마도 해마다 3~4가구씩 줄어든단다. 영산도 명품마을위원회 구정용 사무장은 명품마을이 영산도를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 것이라 믿고 있었다.

영산도가 명품마을로 지정되면서 작년 한 해 동안 섬에 찾아온 사람보다 5월 한 달 동안 섬을 찾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했다. 그래서 정신이 없다고, 그렇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섬이 변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44살로 두 아이의 아빠이며, 마을 어른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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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공동식당 ‘부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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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손과 홍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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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용 사무장

 

# 6월 1일 20시10분

저녁밥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와 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구동성으로 ‘특별히 선택된 줄 알았다, 영산도가 너무 아름답다, 영산도도 초대해 준 국시모에 감사한다.’고 했다. 거북손에 음료, 과자, 이야기, 바닷바람, 그렇게 영산도에서의 첫 날을 보냈다. 우리 앞에 흑산도가 있음을 기억하며 잠에 들었다.

 

<낯선여행 1탄_ 둘째 날>

 

# 6월 2일 5시

날이 밝아 오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마을 뒷산에 올랐다. 사람 다닌 흔적조차 분명히 않은 숲길엔 후박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인천 섬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최중기 님은 직업은 바다이고, 취미가 산인데, 영산도엔 바다와 산이 함께 있으니 아주 맘에 든다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도해 섬들도 다녀보고 싶다고 한 그는 주민들의 이야기, 길에서 든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낯선여행 최고의 열혈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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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기록하는 최중기 님 (오른쪽)

 

숲에서 길을 헤매다 이미 떠버린 해를 바라보며 마을로 내려왔다. 영산도 마을 곳곳엔 미소 짓게 하는 그림들이 많다. 화가는 주민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영산도에 찾아온 사람들의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림인데도 이곳에 있으니 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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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9시 30분

아침밥을 먹고 배를 기다리며 바다에게서 낚시를 배웠다. 흑산초교 영산분교 4학년인 바다는 영산도에 사는 단 한명의 학생이다. 바다는 최성광 이장의 아들로 낚시 고수이다. 바다는 낚시대를 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이렇게 해야죠, 풀고 잡고 던지고 다시 잡고.’ 그런데 그 순간 정말 숭어가 잡혔다. 놀랍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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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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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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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그냥’ 던진 낚시대에 걸린 숭어

 

영산도를 나가기 위해 한 명, 두 명 배에 타고 배 엔진소리가 심해지니 ‘이제 영산도와 헤어지는 구나’ 싶은 섭섭함과 아쉬움에 가슴이 시려왔다. 유난히 짙은 비취빛 바다 위에 떠있는 영산도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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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광 이장이 뱃머리에서 뭐라 했다. 바람소리, 물소리, 배 엔진소리에 최성광 이장의 말이 이어졌다 끊겼다는 반복했다. 최성광 이장이 선장실을 향해 구정용 사무장에게 손짓을 하자 흑산도로 향하던 배가 갑자기 뱃머리를 돌렸다.

굳이 영산8경이라 부르지 않아도, 탄성이 나오는 영산도의 비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석주대문, 비성석굴, 용생암굴, 천연석탑, 비류폭포, 영산등대 등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며 긴긴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것들은 영산도의 또 다른 주인이었다.

영산도에 아니고는 볼 수 없는, 배를 타고 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절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흑산도-홍도, 거문도-백도 등 이름난 섬들로 사진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니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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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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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대문 앞에서

 

석주대문을 배로 통과하면서는 아프리카 어느 협곡을 지나는 듯했고, 영산도 수직 절벽은 칼로 자른 듯 날카롭게 바다와 마주하고 있었다. 영산도를 배로 한 바퀴 돌고 흑산도로 가는 배안에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영산도를 바다에서 가까이 보고나니 영산도를 떠나면서 들었던 서운함, 섭섭함, 아쉬움, 그 어떤 감정도 일지 않았다.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섬을 지켜준 주민들께, 우리에게 영산도를 소개해 준 오창영 님께, 영산도의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최성광 이장에게,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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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얼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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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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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로 나오는 배에서 바라본 영산도

 

있는 듯, 없는 듯 그윽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김영희 님이 나를 봤다. 곡성에 살며, 섬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산도를 나와서도 내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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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희 님 (가운데, 군청색 잠바)

 

김시미 님은 흑산도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영산도로 가겠다고 했다. 여러 명이 함께 한 여행에서 일정에 없던 개인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니 당연히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나는 그리하라고 말하고 말았다. 바다와 함께, 영산도 해변에서 고동을 줍고 싶다고, 영산도 바다에 사는 고동을 엄마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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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미 님 (오른쪽)

 

# 6월 2일 11시

낯선여행이 흑산도에서 찾은 첫 방문지는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이하 철새연구센터)였다. 철새연구센터는 흑산항에서 배낭기미 해변으로 가는 길에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흑산도에 철새연구센터를 설립한 이유는 흑산도, 홍도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일대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요한 이동 경로이며, 먼 바다를 건너 온 철새들에게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철새들은 이곳에서 긴 여행으로 지친 몸을 쉬면서 먹이를 섭취하여 에너지를 충전한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전체 종의 약 70%가 흑산면을 거쳐 간다니 흑산도, 홍도는 철새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며 철새연구를 수행하기에도 최적의 장소이다. 철새연구센터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립된 철새 전문 연구기관이다.

권영수 님은 날아가는 새만 봐도, 새의 소리만 들어도, 둥지만 봐도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새와 대화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철새연구센터의 여러 일 중 밴딩작업을 상세히 설명했다.

새는 국가 간 이동을 하는 동물이어서 철새 보호를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에서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이 이뤄져야 하는데 밴딩작업은 철새 보호와 이동 경로 확인을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했다. 철새연구센터에서는 연간 10,000개체의 새들에게 밴딩작업을 한단다.

광주에서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는 정봉남 님은 철새연구센터가 하는 일, 특히 밴딩작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다시 오자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밴딩작업을 도와주고, 흑산도에 사는 새도 만나자고 했다. 회원이 하자는 일이니, 더구나 의미 있는 일이니 국시모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마도, 우리는 10월 어느 날 흑산도에서 새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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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딩에 쓰이는 가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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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딩작업 기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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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연구센터 방문 후 권영수 센터장(앞 줄 가운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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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봉남 님

 

# 6월 2일 13시 30분

배낭기미습지를 돌아보고, 흑산도항 근처에서 낮밥을 먹은 후 김남식 계장과 흑산도 관광을 했다. 흑산도분소에서 내어준 미니버스를 타고 흑산도성당, 열두고갯길,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상라산성, 최익현 유허비, 유배공원, 사촌서당, 칠형제바위 등을 돌아봤다. 김남식 계장이 없었다면 차만 탔다고 해야겠지만 그의 설명 덕에 흑산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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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기미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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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촌서당. 손암 정약전이 유배되어 개설한 흑산도 최초 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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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일주도로 준공기념공원에서 김남식 계장(맨 오른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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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형제바위

 

# 6월 2일 16시 20분

흑산도항에서 목포로 나오며 낯선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영산도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있는 어느 섬보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영산도엔 단 한명의 학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학교가 있으며, 영산도를 무인도로 만들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낯선여행에 다녀온 우리는 영산도가 사는 사람들과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이 오가는 섬으로 남아주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가까운 날에 영산도를 다시 찾게 되길 희망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주민들의 꿈과 우리들의 희망에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영산도흑산도_20130602_0870.jpg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덧붙임. 영산도와 우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없이 1박2일을 보낸 허명구 님에게 영산도는 어떤 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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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