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재입북, 남북 소통의 단초가 될 수도

최근 논란이 되었던 탈북자들의 재입북 문제에 대해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이 본지에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앞으로도 김형덕 소장은 본지를 통해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디펜스21+>를 통해 계속 기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 atbeagle@naver.com

지난 6월 28일, 북한의 조선중앙TV가 탈북한지 6년 만에 재입북한 박정숙(박인숙)씨의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북한이 탈북자의 기자회견을 중계한다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남한에서 6년씩이나 살던 사람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기자회견에서 남한 사회를 맹비난했다는 것이 남한 사회에는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7월 한동안 탈북자들의 재입북 사례에 대해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이런 저런 보도들을 쏟아냈다. 개중에는 심지어 재입북자가 올해만 100명을 웃돈다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도 있었다.

박정숙씨 사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 박씨는 기획탈북자들에 의해 남한에 사는 아버지를 찾아 탈북한 경우이다. 전쟁 중에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려는 간절함이 그로 하여금 남한으로 오게 만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남쪽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박씨의 아버지는 남한에서 재혼하였고 슬하에 여러 자식을 두었는데 그중에는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있다고 한다. 박씨는 남한에서 아버지와 재회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곧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남한에서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북에서 태어나 거의 한평생을 자란 박씨가 남한에서 자란 이복형제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으리라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박정숙씨의 재입북은 자연스러운 일

남한의 영세민아파트에서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했던 그녀는 물질적으로는 북에서보다 조금 더 행복했을지 모르겠지만 심정적으로는 고독하기 그지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에 있는 아들이 평양음악대학의 교원이라고 하니 북한 사회에서는 나름 상류층이었을 테지만 남한에서는 '탈북자'라는 딱지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박씨의 아들이 평양김원균음악대학 교원이라고 하면 남한으로 치자면 서울대 음대 조교수에 해당하는 지위이다. 남한에서의 유일한 연결고리나 다름없던 아버지가 곧 세상을 떠났으니, 북에 있는 아들이 더욱 그리워졌으리라.

북한 당국의 계산된 의도가 숨어있는 '예상 밖의 환대'에, 남한 사회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여 증언한 점은 있지만 박정숙씨가 앞으로 북에서 살아가야 함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행동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북한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본인의 강력한 의지보다는 기획탈북에 의해 남한에 온 경우, 남한 사회에 적응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이나 어려움을 스스로에게서 보다는 남한 사회의 구조적 원인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고, 상황에 따라서는 재입북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한 사회를 떠난 남한 사람들조차도 미국에서 만나보면 남한 사회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데, 남한을 떠난 탈북자들은 어떻겠는가.

스스로의 적극적인 의지에 의해 자력으로 남한에 온 탈북자들도 남한 사회에서의 정착에 실패하면 남한을 떠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10년쯤 전에 강화도를 통해 자전거 튜브를 타고 남쪽으로 넘어온 탈북자는 남한에서 3~4년 정도를 살다가 다시 월북했다. 정부의 주선으로 농협에 취직해서 5~6천만 원 정도를 모았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북에서는 아주 잘 살 수 있다. 중국 가서 북에 살고 있던 아내를 한두 번 만나더니 아주 월북해버렸다. 그는 지금 개성에서 살면서 남한에서 배운 컴퓨터 기술을 전수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 모은 돈 일부를 제외 하고는 북한 당국이 회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처자식이 있는 몸이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월남한 경우이다. 이 사례 외에도 조용히 넘어왔다가 조용히 돌아가 살고 있는 새터민 출신 월북자들이 적지 않다.

북한 당국이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하여 지금처럼 탈북자의 과거를 용납하는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보다 많은 새터민들이 재입북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연좌제가 완화된 시기는 2000년쯤으로 보인다. 아마도 1997년 이후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주원인이 정치적(북한 체제 반대)인 것이 아닌 경제적인 것임을 북한 당국도 인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생존을 위해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대로 처벌한다면 북한 내부의 체제불만 세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밖에 얻을 것이 없기 않은가?

과연 재입북은 나쁜 것인가

개인적으로 남한 사회를 상당 기간 경험한 분들이 재입북하는 것이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북은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남한을 경험하고 북으로 돌아가게 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초기에는 물론 북한 정부의 의도대로 행동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남한의 문화를 전하는 메신저가 될 수 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남북의 국민 사이에 왕래가 자유로울 정도로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일 테다. 탈북자의 재입북 문제는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중국인이 한국으로 탈출하지 않고 한국인이 중국으로 탈출하지 않듯이. 아직은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와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도 영구히 고립으로 갈 수는 없기에, 교류를 통해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국민 의식을 발전시키면 지금의 인권 기준과 환경 등도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 인권에 대해 접근하는 남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과연 정부가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좀 의심스럽다. 북한 인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남한 역시 통일 한반도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법에 진정성 안 보여

그러나 그 방법은 압력 또는 정치적 이슈화 보다는 대화와 교류를 앞세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먼저 대화를 통해 북한 인권의 현실과 그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북한에 외부의 우려를 부드럽게 전달하고, 우리가 개선을 위해 필요한 협력을 할 용의가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보다 올바른 수순이 아닐까?

내가 개인적으로 북한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고통과 괴로운 기억이 아주 많다. 나는 종종 그런 경험에 대해 강의나 특정 장소에서는 진지하게 설명하곤 하지만, 공론장에서나 또는 나의 발언이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될 수 있는 장소에서는 가급적이면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일부 남한 사람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등의 이념 공세를 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남북의 제도와 경제력 격차를 고려해 볼 때, 북한의 모든 문제들은 남한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 굳이 공개적으로 이를 밝히면서 북한을 비하하면 남북 관계의 개선에 과연 도움이 될까? 듣는 남한 사람들조차 얼굴을 찡그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과연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되겠느냔 말이다. 서로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서도 고언(苦言)은 늘 조심스러운 것이다. 하물며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 누가 그 의견을 수용하려 들겠는가? 북한에서 인권 유린을 당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면 나 또한 몹시 불쾌해진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방식은 개인이나 일부 단체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남한의 진정성 있는 북한 인권 개선의 노력을 촉구한다.

남한의 자신감 있는 대북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 인권에 대한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대북 전략에서 전반적으로 자신감이나 적극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은 일관되게 북미 평화협정과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다. 미국은 대외정책 이념으로 세계평화, 민주주의 확산을 내세우면서도 북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남한 역시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갈 뿐, 미국을 설득하거나 단독으로 남북 평화협정을 위해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 체제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양보를 받아내기도 어려운 태도이다. 다들 평화를 말하면서 왜 그토록 원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나서지 않는가? 미국은 북한의 여러 문제에 대해 말하기 전에 북미 평화협정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원하고 남북 화해를 지지하는가? 미국이 제시해야 할 것은 바로 그에 대한 대답이다. 남한 또한 미국의 정책만을 따라가는 현재의 모양새로는 북한을 탓할 자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굳이 최근 <포린 폴리시>에서 소개한 '2011년 실패 국가 지수(Failed States Index)'를 들지 않더라도 북한은 충분히 실패한 사회이고,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도 적절한 정권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이로움도 얻어낼 수 없다. 북한을 비판하는 노력보다는 장기적 전략 차원에서 북한의 변화가 한반도의 평화에 유리하도록 관리하고 통제해 나가는 성숙함이 남한에 필요하다. 국력으로 보나 사회의 일반적인 발전 상황으로 보나 북한은 더는 남한의 경쟁 상대가 못 된다. 그런 만큼 적극적 의지와 철학을 가지고 북한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리드해 나가야 한다.

통일과정에서 북을 어떻게 리드해 할 것인가에 대한 남한 사회의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는 여야간의 합의, 보다 크게는 국민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통일정책은 국민들에게 혼란을 줌은 물론이고 통일문제를 '귀찮은 일'로 여기게까지 만든다.

북한 정부를 물리력을 사용하여 극복하는 것은 적어도 국민주권이 강화된 남한의 사회구조상 어려워 보이고 한반도가 처한 국제적, 지정학적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불가능한 옵션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점진적 통합 노력이 최선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인내심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북한에 무상 증여성의 지원을 하기 보다는 북한 경제를 시장 경제로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에 식량을 차관 형식으로 건네기 보다는 광물자원이나 산업개발권을 받는 조건으로 나가야 한다. 중국은 북을 지원하면서 북한의 대표적 대외 개방지역인 나선항 개발, 이용권을 확보하였다. 또 북한의 세계적인 철광산인 무산광산에서 광물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남한도 그런 방식을 진지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남한의 기업을 부흥시키는 노력을 하면 좋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리고 북한의 지배세력에게 신뢰와 안정을 담보해 주어야 한다. 남한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지배세력과 인민을 분리시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야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남한에서 5.16 쿠데타가 발생하고 1980년 군부 정권이 수립되었던 당시, 미국은 남한 정부를 불신했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군부를 대체하여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세력이 없었기에 미국 또한 현실을 인정하고 교류와 지원을 계속하였다. 외부와의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남한의 국민의식이 고양될 수 있었고 마침내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게 되지 않았는가? 나는 남한의 일부 논자들에게 이러한 남한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다. 북한의 지배세력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북한 주민을 상대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은 현재로서 없지 않은가?

북한에 대한 고립, 외면 정책은 북을 경제적으로 더욱 일그러지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심화시켜 향후 북한 시장에서 남한 기업의 기회 선점 효과를 저해할 수 있다. 또한 지금처럼 예측을 불허하는 남북 관계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갈등을 다시 낳을 수도 있다. 남한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전략적 개입을 통해 북한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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