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기술로 패트리어트 연동 성공한 우리 공군

호사가들에게 체계통합(SI: System Integration)이란 참 심심한 소재다. 수백억을 들인다 한들 휘황찬란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MCRC와 패트리어트의 연동이 우리 공군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성공했다는 소식은 그다지 큰 반향을 울리지 못했다. 백억 원이 넘는 예산을 절감하고 전력화 시기를 앞당겼다는 성과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공군이 향후 네트워크중심전 수행에 필수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방부가 10월 24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패트리어트 PAC-3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다시금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과 우리 군의 대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때맞추어 공개된 "현재 한국군의 PAC-2 체계로는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40% 이하"라는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의 연구 결과 또한 이에 대한 논란을 부추겼다. 분명 PAC-3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 능력은 높아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무기체계는 도입하고 난 이후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도입 자체에만 매달려 군수 지원 등을 비롯한 후속 조치의 부실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도입한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꼴을 많이 목격했다. 기존의 무기체계들과 제대로 통합을 시키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과연 패트리어트는 우리 군의 방공무기체계와 잘 융화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개발하고 미군이 운용하던 무기체계이니 당연히 잘 되지 않겠느냐고 막연하게 여기기 쉽다.

미군과 우리 군 작전환경의 차이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미군이 방공작전을 수행하는 환경과 우리 군이 방공작전을 수행하는 환경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군은 지속적으로 이동을 하는 가운데 주둔하고 있는 지역을 탄도미사일과 적 항공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방공작전에서 기동성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을 떠올려 보라. 포대는 신속하게 전개 또는 이동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장비는 차량에 탑재되어 있거나 적어도 차량으로 수송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호크부터 패트리어트, 그리고 현재 개발 중이나 결국 실전 배치가 안 되는 비운에 빠질 것으로 보이는 MEADS까지, 대부분의 미국 방공무기체계에서 항시 고려되어 왔던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의 방공무기체계는 주로 대대 단위로 작전을 수행한다. 이는 미군의 작전환경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를 우리 작전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MCRC(Master Control and Reporting Center: 중앙방공통제소)를 중심으로 통합 방공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으로 패트리어트 무기체계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에도 개발업체인 레이시온(Raytheon)이 제시한 한국형 체계 배치도에서는 패트리어트 대대와 MCRC가 서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패트리어트 작전통제 체계는 크게 대대급 작전통제소인 ICC(Information Coordination Central)와 포대의 교전통제소인 ECS(Engagement Control Station)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대대급 통제소인 ICC와 우리 MCRC를 연동시키는 것이 우리 작전환경에 적합한 체계 통합을 위한 중대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우리 군에서는 이러한 연동을 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그리하여 방위사업청은 2011년 2월, MCRC와 ICC 연동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조를 미국 정부측에 요청했다. 이를 위한 예산으로는 약 129억 원이 책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난관이 발생했다.

우리의 작전정보와 노하우를 누출시킬 것인가

수차례 회의를 거치고 미국 정부와 업체(레이시온)는 2011년 6월경 우리 MCRC 체계의 핵심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source code)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소스코드란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개발할 때 사용한 명령어들이 담긴, 일종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이는 MCRC와 패트리어트 ICC를 연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요구였다. 그러나 MCRC 소프트웨어에는 우리 군의 주요 작전정보는 물론이고 수년간 MCRC를 운용하면서 발전시킨 여러 가지 기술적인 노하우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우방국인 미국이라지만 이러한 정보와 기술을 그대로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도 3개월 가까이 소프트웨어 제공방식에 대한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 MCRC 소프트웨어의 전부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소프트웨어의 일부만을 미국 측에 제공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국 측에서 개발한 부분적인 소프트웨어를 다시 우리 MCRC에 이식하기로 하는 절충안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작전정보와 노하우의 유출은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반면, 작전 측면에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전반적인 구조를 모른 채 일부만 개조를 하면 그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혹여나 문제가 발생하면 MCRC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영공 방위를 책임지는 MCRC에서 이러한 상황이 용납될 리 만무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었다.

작전정보통신단 "독자 개발 추진" 제안

한편, 당시 공군 내에서 MCRC와 패트리어트 체계의 연동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조직이 있었다. 항공우주작전과 IT의 융합을 통해 네트워크중심전(NCW) 환경을 조성하고 공세적인 항공우주작전 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5월 창설된 공군 작전사령부 소속의 작전정보통신단이었다. 당시 창설된 지 1년을 조금 넘긴 상태였으나 부대 요원들은 과거 MCRC 체계 전력화 당시 2년간 전문교육을 받았던 소프트웨어 개발요원을 포함하여 조종, 항공통제, 방공포병, 정보통신 등의 항공우주작전에 필요한 모든 병과가 모여 있어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부대장이 전술데이터링크와 무기체계 연동기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연구자 및 발표자로 직접 참가하는 등 무기체계 연동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로 전문적인 기술을 축적하고 있던 작전정보통신단은 곧 공군 본부에 연동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연히 공군 본부와 방공포병사령부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자체개발 착수를 위해 공군 참모총장 보고자료를 준비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작전정보통신단장(대령 구정, 공사 30기)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들이 '과연 작전정보통신단이 할 수 있을까?' '누구도 해본 적 없는 대형 프로젝트를 공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라며 걱정과 우려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연구개발 성과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 제기한 우려는 상당했다. MCRC와 패트리어트를 연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것은 우리 군이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대형 사업이었다. 만일 개발이 실패로 끝날 경우, 그만큼 패트리어트의 온전한 전력화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패트리어트의 조기 전력화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던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작전정보와 기술 누출의 우려와 조기 전력화 실패에 대한 우려.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군은 고민에 빠졌다.

"리스크 없이는 획기적인 발전도 없다" 독자개발 결정

마침내 2011년 9월 27일, 참모총장 대면 보고가 끝나고 연동 소프트웨어를 작전정보통신단 주관 하에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나아가는 데에 부담이 없었을 리 없다. 기자의 질문에 작전정보통신단장은 이렇게 답했다. "물론 리스크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리스크 없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장님께서도 우리를 믿고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개발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작전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소프트웨어인 만큼 개발조건이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3,000여 개의 점검 항목에 대해서 단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될 수 없었다. 여기서 개발요원들이 받았을 부담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개발 실무를 담당했던 한 공군 관계자는 개발 당시 가장 난감했던 점으로 연동통제문서(ICD, Interface Control Document)의 부재를 꼽았다.

모든 무기체계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체계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으려면 서로의 데이터 처리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통역가가 양측의 언어를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데이터 처리 방식을 설명한 문서가 바로 연동통제문서이다. 그러나 패트리어트의 연동통제문서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개발요원들은 패트리어트 체계에서 나오는 모든 데이터들을 일일이 분석하고 대조하는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돌파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수학 시험에서 수열 문제를 일일이 숫자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푸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다.

개발기간 77% 단축, 작전개시 이상무

9월초부터 시작된 패트리어트 연동 소프트웨어 개발은 개발요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11년을 넘기기 전인 12월 9일에 완료되었다. 미측 업체에서 제시한 기간의 23%만 투입한 셈이다. 작전정보통신단은 이듬해인 올해 1월부터 수차례 MCRC와 패트리어트 ICC 간의 연동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 마침내 2월 9일 소프트웨어 개발이 완료되었음을 공군 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 현재 MCRC와 패트리어트 ICC 간의 연동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번 11월 5일 검열 결과 정상작전 가능 판정을 받았다.

작전정보통신단의 패트리어트 연동 소프트웨어 개발 성공으로, 미국 측이 제안했던 사항에 비해 개발기간은 10개월이 단축되었고 예산은 129억 원이 절감되었다. 이는 작년 국방 분야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아낀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덕택에 부대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 성과금 500만 원을 받았다.

공군, 네트워크중심전 원천기술 확보

그러나 작전정보통신단이 거둔 성과는 예산 절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의 성과는 공군이 장차전의 대표적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는 네트워크중심전 개념을 얼마나 실전에서 잘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미 미군과 나토군에서 전술데이터링크의 표준 프로토콜로 자리 잡은 Link-16을 사용하여 MCRC와 패트리어트 체계를 연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이 프로토콜을 사용한 여타 무기체계들을 공군 자체의 역량으로도 얼마든지 통합시킬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했음을 뜻한다.

바야흐로 체계간 통합이 화두인 시대다. 미군은 이미 작년에 조기경보레이더(AN/TPY-2)로 탐지 및 포착한 3,000km 바깥에서 발사된 항적에 대해 SM-3를 원격으로 발사하여 요격하는 실험을 성공시켰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조기경보레이더와 SM-3 체계가 서로 연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무기체계들끼리 연동이 가능하게 되면 놀랄만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조기경보레이더가 수집하는 제원을 기존의 방공무기체계와 통합하기 위하여 탄도유도탄 작전통제소(AMD-Cell)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군 내에서 자체 기술로 개발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운영유지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성과이다. 충남대 종합군수체계연구소 이희우 소장의 군 경영 실태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총 국방비 30조 원에서 무기체계의 신규획득에 드는 비용은 9조 원이나 운영유지에 드는 비용은 그 세 배에 달하는 21조 원이다. 단순하게 계산해 볼 때, 향후 3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성과는 우리나라의 군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뷰에서 구정 작전정보통신단장은 "공군은 무척 다양한 첨단 무기체계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런 복잡한 체계들에 대한 연구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높은 기술과 상당한 예산 규모를 필요로 하는 사업 같은 것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관할한다 하더라도 소규모의 연구개발에 대해서는 군에서도 각자 스스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장에서 사업을 지휘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중국 방위산업의 교훈

여기서 중국의 방위산업 발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중국의 방위산업은 같은 공산권인 소비에트 연방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연구개발과 생산이 동떨어져 있어 기껏 연구개발로 완성한 디자인을 생산 부서에서 제대로 구현을 하지 못하는 일도 잦았고, 관료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처이기주의의 만연으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중국의 방위산업이 급성장을 하게 된 것은 20세기말 들어 그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작은 방위산업을 정부 조직이 아닌 군이 총괄하도록 한 것이었다. “최종사용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해당 산업 분야에 대해 따로 담당자들을 두기 시작하면, 이들은 결국 자기네 조직의 이익만을 좇기 마련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의 타이밍 청(Tai Ming Cheung) 교수가 인도의 방산관계자들에게 해준 조언이다.

그 이후 중국의 방위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비록 그 실질적인 성능은 의심받고 있으나, 중국은 올해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를 선보이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한 중국 방위산업의 특허는 1998년에는 313개에 불과하였으나 2008년에는 11,000개, 그리고 2010년에는 15,000개가 특허 출원 중에 있을 정도로 부쩍 늘었다.

방위산업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소요군 자신 외에 없다. 타이밍 청 교수의 조언과 중국 방위산업의 놀라운 성장세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의 소요를 가장 적확하고 신속하게 획득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방위사업청을 반드시 국방부로 원대복귀를 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대형 사업이 아닌 경우라면, 각 군에서도 자체적으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인력을 양성하고, 또한 국방부에서도 이를 장려하여 주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 볼만하지 않을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체 기술 개발이라는 될성부른 ‘떡잎’을 틔워낸 공군을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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