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병역법 논란

병역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화약고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병역법 문제로 시민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원내 제1당이 연정을 탈퇴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병역 모범 국가' 이스라엘은 허구에 가깝고, 오히려 병역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닮았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의 대도시 텔아비브에서는 2만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16일에는 극정통파(ultra-orthodox)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일련의 시위들은 모두 같은 주제, 바로 이스라엘의 병역법 개정을 두고 벌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병역법 문제는 일부 시민들만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병역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자, 카디마 당의 대표이자 부총리인 샤울 모파즈는 17일(현지시간)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카디마 당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가장 많은 28석을 점하고 있는 중도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 당(27석)의 연정 최대 파트너이다. 카디마 당이 빠지더라도 연정이 근소하게 원내에서 과반을 유지하고 있어 네타냐후 정부에 당장은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내년 11월로 예정된 총선에서는 위태로울 수 있다.

병역기피자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한 이견차 좁히지 못해 결국 연정 탈퇴

문제의 발단은 이스라엘 대법원의 '탈(Tal)' 법에 대한 위헌 판결이다. 탈 법은 경전 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하레디 유대교인 남성에게 병역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이다. 유대교에도 다양한 교파가 있는데 이들 하레디 유대교인(보통 '하레딤'이라고 부른다)들은 가장 보수적인 극정통파 유대교인들이다. 경전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은 얼마든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제한이 없어 실제로는 병역을 이행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면서도 하레딤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받는다. 7일 텔아비브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미국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일도 하지 않고 병역을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돈(세금)을 원한다"며 분개했다. 많은 시민들이 비슷한 의견이다.

대법원이 탈 법을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의회는 8월까지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집권당인 우파 리쿠드 당과 원내 제1당인 카디마 당은 병역회피자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두고 끝내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평등한 병역 이행'을 주장하는 카디마 당은 병역회피자들에게 벌금형은 물론이고 심지어 징역형까지 구형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종교지도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리쿠드 당으로서는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카디마 당은 약 2개월 전 연정에 합류하면서 병역 관련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병역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연정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의무복무제도 개혁 위원회 의장을 지낸 히브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아비 벤바사트(Avi Ben-Bassat)는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하레츠>에 기고한 글에서 긴 군 복무 기간(남성 3년, 여성 2년)이 청년들이 노동에 투입되는 시기를 늦추고 있어, 개인의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의 성장을 늦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벤바사트 교수는 하레딤 청년들도 입대를 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늘어난 병력 자원 풀을 바탕으로 군 복무 기간을 줄이자고 제안한다. 실제로 그가 의장을 맡았던 의무복무제도 개혁 위원회에서는 남성 기준 현행 3년의 복무 기간을 2년 4개월까지 단계적으로 단축하는 안을 수립했다. 당시 정부는 이 계획을 승인했으나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이 발발하면서 실제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경제학자답게 벤바사트 교수는 이스라엘 방위군(IDF) 측이 병력 자원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원이 공짜로 제공되면 낭비되는 경향이 있다." 의무복무 자원은 유지하는 데에 비용이 얼마 들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개혁안에 병력 소요가 크지 않은 병과에서의 복무 기간은 2년으로까지 줄이되, (병력 소요가 많아) 4개월을 더 근무해야 하는 병과의 군인들에게는 해당 4개월 동안 21세 청년의 평균 임금을 지급하는 안도 제안했다. 이 4개월치의 임금은 재무부에서 특별히 배정하는 예산으로 충당하는데 군인들을 4개월 미리 제대시키면 이 예산을 장비 구입 등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군에게도 당장 필요하지 않은 병력 자원들을 줄이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입영 대상을 극정통파 종교인들로까지 확대(카디마 당의 개정안은 현재까지는 입영 대상이 아니었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인들도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디펜스21+> 9월호에서 다룰 예정이다)시키려는 것은 이스라엘에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보다 평등한 군 복무 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방송통신대학교(Open University of Israel)의 사회학과 부교수인 야길 레비(Yagil Levy)는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보다 평등주의적인 복무 제도를 수립하는 데에 실패하면 징병제의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지게 된다. 10~15년 내로 징병제가 폐지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의 병역 기피 문제도 심각

병역 기피는 비단 극정통파 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 또한 군 복무를 회피하고 있다. 레비 교수는 최근 10~15년간 중산층의 군 복무 비율과 전투병 복무 비율이 매우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젊은 이스라엘인들이 덜 애국적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중산층에서 군 복무와 전투 병과를 회피하고 있다는 현상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보다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군 복무보다) 자신들의 커리어를 개발하기를 선호할 것이다."

군대의 정훈교육이나 보수 인사들의 글 등을 통해, 남녀 모두가 의무적, 심지어 자발적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병역 모범 국가‘ 이스라엘에 익숙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런 이스라엘은 우리 국민들의 ’안이한 안보관‘을 질타할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신화는 아니었을까? 국가안보의 긴급성과 경제적 합리성, 국가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희생 사이에서 번민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의 ’모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와 함께 고민해야 할 동료에 더 가까워 보인다.

모병제는 과연 '해답'인가?

최근 국내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러 후보들이 ‘모병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의무복무로 사기가 높지 않은 군인들보다 모병제를 통해 전문적이고 보다 사기가 높은 군인들을 선발하는 것이 오히려 국방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우리와 안보 현안의 많은 면에서 닮아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모병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점화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내에서 모병제 논의는 보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보다 평등한 병역 이행을 위한 제안들이 각종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지역적인 안보 위협 때문에 모병제로 유지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큰 규모의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모병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LA타임즈>에 대한 레비 교수의 답은 우리에게 모병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모병제는 다른 이유에서 위험하다. (국방 문제에 관한) 중산층의 참여를 감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과거의 레바논 전쟁 등에서 군을 철수하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중산층이었다. 바로 이들의 가족들이 현역 군인으로서 전장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공개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조기에 레바논에서 병력을 철수시켰다.

미국과 독일의 사례는 징병제가 사라질 경우 정부의 파병 결정이 더욱 수월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만 하더라도 징병제를 시행하던 미국은 국내의 강력한 반전 여론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모병제로 전환된 이후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전쟁은 예전과 같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다. 이를 단지 9/11 테러로 인한 호전적 여론의 부상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레비 교수는 독일의 경우에도 징병제가 중단된 이후 평화유지군 파견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징병제가 사라지면 공중(public)의 개입과 여론의 반영이 줄어들게 된다”는 레비 교수의 주장은 모병제 논의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우리나라에도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평화’의 이름으로 군축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반전평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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