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발견 비만유전자, 비만엔 실제 영향 얼마나? 과학칼럼


미연구팀, ‘배 부르다’ 뇌에 알리는 유전자의 ‘변이 메커니즘’ 규명

한두개 유전자가 결정?... 결정적 영향은 아닌듯 환경 요인도 중요


00obesity1시민들이 '비만 체험복'을 입고서 운동하고 있다. 2010년 7월 촬영. 한겨레 자료사진/ 이종찬 기자




<상특급>이란 미국 드라마가 국내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초자연 현상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준 드라마인데, 그중 한 에피소드에 식욕을 참지 못해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극 후반, 어느 후미진 중식당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이 사람 손에 ‘행운의 과자’가 쥐어지고, 그 안에선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란 으스스한 글귀가 나온다는 내용이다.


배가 부르지만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끊임없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비만으로 치닫는 자신의 체형을 미약한 의지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던 이들에게, 최근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논문 하나가 새로운 변명거리를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배가 불러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이 망가졌을 때 생길 수 있다는 것. 미국 조지타운대학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뇌 유래 신경영양 인자 BDNF (Brain-derived Neurotropic Factor, BDNF)’에 관한 연구1)를 통해 이 유전자가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뇌의 시상하부에 전달하는 메카니즘을 비교적 상세히 규명했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배가 부르다는 화학신호를 적절히 뇌에 전달하지 못해 결국 과식과 비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 비만과 ‘비만 유전자’


만과 유전의 상관관계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과제 중 하나이다. 일란성 쌍둥이 중 한쪽이 비만일 경우에 나머지 한쪽도 비만일 확률이 이란성 쌍동이의 경우보다 훨씬 높다던지, 부모와 친자 간의 비만 상관관계가 부모와 양자 사이의 관계보다 강하다는 통계는 비만이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는 오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유전자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데, 위에 소개된 BDNF 유전자의 경우도 그 중 하나로 볼수 있다.


BDNF 유전자의 구체적 메카니즘이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실 이 유전자가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이란 물질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는 것은 이미 실험용 쥐(마우스)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식욕을 억제하는 물질 생성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비만 유전자’라는 별칭과 함께 스포트라이트을 받던 이 유전자는 인류의 비만마저도 유전적 치료로 해방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와 함께 보도되기도 했다. 이번에 BDNF 유전자의 메카니즘을 규명한 바오지 수 박사도 최근 영국 언론매체 <데일리 메일>과 한 인터뷰2) 에서 자신의 목표는 BDNF 유전자를 제어해 비만을 억제하는 약을 만드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쉽게 살을 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욕구는, 유전자를 이용해 비만을 치료하고자 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지금도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쉽지 않은 유전자 치료의 길


렇다면 과연 유전자를 이용해 비만을 효과적으로 억제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가장 최근 발표된 예인 BDNF 유전자도 이를 이용해 비만을 치료할수 있는지에 대해선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인간의 비만은 실험용 쥐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소크연구소(Salk Institute) 연구팀은 피파델타(Peroxisome Proliferator-Activated Receptor Delta, PPARδ) 유전자가 지방 축적과 지방 연소의 균형을 잡아주는 메카니즘을 보고한 바 있다.3) PPARδ 변이 유전자의 보유 여부에 따라 같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지방으로 축적되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비만 체형이 될 가능성도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다양하며, 대략 100여 가지 이상의 유전적 요인이 결합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 비만은 단지 한두 가지 유전자로 쉽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비만은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피마(Pima) 인디언’을 상대로 행해 진 연구는 비만의 원인이 단지 유전적 요인에만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9세기~13세기 사이에 미 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들 네이티브 인디언들은 멕시코와 미국 두 나라로 나뉘어 살게 되는데, 이중 멕시코 영토에 거주한 이들은 보통 멕시코인들과 큰 차이가 없는 체형을 지니는 반면, 미국 영역에서 거주한 인디언들은 64%이상이 비만 체형을 지니게 된다.

 

00obesity2비만과 당뇨병 연구와 실험에 자주 이용되는 비만 형질의 쥐(왼쪽)와 당뇨병 형질의 쥐. 사진/ 미국 국립오크리지연구소(ORNL)

 


■ 같은 유전자, 다른 체형


골로이드 계에 해당하는 이들 피마 인디언들은 비만 관련 유전자로 알려진 PPARγ, UCP 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미국 대륙 이주 초기에 건조한 사막 기후에 적응해가며 밀, 콩, 호박 등의 식물성 음식을 주로 섭취해야 했던 이들에게 이 비만 유전자들은 적절한 지방을 체내에 축적하여 기아에 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속하게 된 인디언들이 다른 미국인들과 똑같이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식생활의 단기적 변화는 이들 체형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세계 최고의 당뇨병 발병을 보이는 민족이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겨주게 된 것이다.


내게도 비만 유전자가 있을까? 이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의 예에서 설명했듯이 비만 유전자의 보유 여부가 실제로 비만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의 유전자 때문에 비만이 될 만큼 인간의 몸은 단순하지 않다. 이 사실이 비만 유전자 보유자들에겐 희소식이 되겠지만, 유전자를 통해 비만 퇴치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겐 아직 가야할 길을 요원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있기도 하다.




1) Liao GY, An JJ, Gharami K, Waterhouse EG, Vanevski F, Jones KR, Xu B., "Dendritically targeted Bdnf mRNA is essential for energy balance and response to leptin",  Nature Medicine, Mar 18 2012.comment_arrow.gif

2) http://www.dailymail.co.uk/health/article-2116792/Georgetown-University-Medical-Centre-Scientists-discover-greedy-gene-makes-eat-full.htmlcomment_arrow.gif

3) Chih-Hao L, Ajay C, Ned U, Debbie L, William A. Boisvert, Ronald M. E., "Transcriptional Repression of Atherogenic Inflammation: Modulation by PPARδ",  Science 302 (5644): 453-457.comment_arrow.gif


조태호   l  (한겨레 사이언스온 기고 칼럼, 2012.04.02)

원문: http://scienceon.hani.co.kr/32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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