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싶은 애엄마, 송년회 분투기

     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평소의 나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이 있는 곳! 송년회에 왜 안 간단 말인가? 약속이 겹치지 않는 이상, 송년회를 마다해본 역사가 없다. 그런데 2012년 송년회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게는 내게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시야에서 엄마만 사라지면 세상 끝난 듯 울어대는, 그야말로 껌딱지 같은 아기가 생겼으니 말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펼쳐 이런저런 송년회 날짜를 표시하다가 결심했다. 그래, 웬만하면 가자. 그날 아기 상태 봐서, 내 상황 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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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엄마 가슴에 살랑 바람이 분다

    호르몬 탓인가 눈물이 났다. 일하다 말고 말이다. 만삭, 산전후휴가 돌입 직전의 일이다. 당시 신문 오피니언면의 ‘논쟁’이란 코너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주의 논쟁 주제는 ‘나는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는가’였다. 그러니까 벌써 까마득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과 나경원의 대결에 관한 이야기다. 그날은 두 후보의 지지자 중 30~40대 여성의 글을 받아 실었다. 그 글 중 하나를 받아 편집하는데 글쎄 눈물이 났다.   박원순을 지지하는 ‘아기엄마’의 글은 첫 문장부터 절절함이 느껴졌다. “서울에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부러운 사람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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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그걸 꼭 해야 하나요?

  “애 돌잔치는 어떻게 할거야?” 놀랐다. 이 질문을 처음 들은 건 아직 임신 중이었을 때다.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뭐? 돌잔치! 요즘 엄마들 사이에 ‘핫’한 돌잔치 플레이스는 임신 중에 예약해놔도 원하는 날 할 수 없을지 모른다나. 이런 이야기를 한두 명에게 들은 것이 아니었으니, 나중에는 이 질문을 받고 놀랐던 내 자신이 촌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걸·꼭·해·야·하·나·요.” 결혼부터 시작해서 출산·양육에 이르기까지 이런 질문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돌잔치 질문에 가슴속 깊숙이 쑤셔 넣어둔 불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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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쌩쌩, 아기 안고 승차거부 당한 날

    원래는 집 앞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아기띠에 아기를 넣어 앞으로 안고 날이 추우니 싸개를 두른 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전철역까지 걸어갔을 즈음 아기가 잠들었다. 집에서는 한참을 보채더니 산책하자고 그랬구나, 이제 난 뭘 할까 하는데 때마침 나처럼 홀로 애를 보던 동생한테서 연락이 와 ‘벙개’를 하게 됐다. 벼락같이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에 새로 들어섰다는 한 쇼핑몰로 향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늘도 높고 단풍도 예뻤다.   여기서 잠깐. 아기를 낳은 뒤 대개는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을 한다. 임신을 하고서 한동안은 버스를 타고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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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의 캠핑, 곤란하지 않아요

마지막 캠핑은 임신 6개월 때였다. 그러니까 1년 전 가을, 10월이었다. 그때 우린 당분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오롯이 둘이서 텐트를 펼쳐놓고 앉아 함께 먹을 밥을 지었다. 임신 뒤 고기 굽는 냄새를 싫어하게 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무생채를 무쳤다.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있으니, 이제 곧 만삭이 되어 출산을 하게 되면 이런 둘만의 여유 있는 시간도 갖기 어렵겠지 싶어 아쉬움이 밀려왔다. 밤늦도록 둘이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너무 추워 덜덜 떨며 ‘이놈의 캠핑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하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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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모계사회, 꽃보다 친정

    “내가 지금 남편 옆에서 뭐하는 거야. 완벽한 친정을 놔두고!”   출산 뒤 서울에서 헌신적인 친정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남편의 직장 문제로 지방에 내려간 한 선배가 푸념을 했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빴다.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선배는 하루 종일 홀로 아이를 돌보곤 했다. 남편은 늦게 들어와 아이가 깨어 있는 모습조차 보지 못하곤 했다. 하루 종일 보채는 아이 때문에 밥도 허둥지둥 먹으며 선배는 친정을, 아아 젖과 꿀이 흐르던 아름다운 그곳을 떠올렸다.   아기 낳고 8개월, 애엄마 동지들과 수다를 떨 때면 갈수록 양상이 뚜렷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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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싸며 고향 앞으로~!

꾸르륵 쭈르륵 뿌직. 귀를 의심했다. 내일이면 추석 명절을 보내러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데 아기의 배와 엉덩이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난 것이다. 새벽 3시의 일이었다. 남편이 아기의 겨드랑이를 들어올리고 내가 바지와 기저귀를 내렸다. 오옷, 콧물 같은 곱똥에 피까지 보이는 설사다! 몇 시간 뒤 아기는 똥을 또 쌌다. 부랴부랴 병원에 갔더니 그 지겨운 장염, 또 장염이란다. 태어나고 처음 맞는 명절, 추석을 맞아 아기의 할머니·할아버지가 계신 경남 창원에, 증조할머니가 계신 통영까지 먼 길을 가야 할 참이었다. 고속철도(KTX) 표 구하는 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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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아이는 어쩌나

  “넌 엄마 없니? 엄마 없어?” 쇠창살 너머를 바라보며 도준 엄마(김혜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자기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알면서도 저기 저 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저기 저 아이는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 누명을 썼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에게는 엄마조차 없다. 여기서 ‘엄마’는 최소한의 돌봄, 방어막의 다른 이름이다. 영화 <마더>다. 이 영화에는 엄마 없는 아이가 한 명 더 나온다. 여중생이다. 가난한 아이다. 아이는 먹을 쌀을 구하려고 몸을 판다. 아니, 아이는 ‘몸을 판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부터 동네 남성들에게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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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이가 잘 곳은 어디인가

결혼이란 제도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발끝을 대고 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로운 밤, 쓸쓸한 밤, 피곤한 밤, 무서운 밤, 길고 긴 밤에 자고 있는 남편의 몸 어딘가에 슬며시 내 발끝을 갖다댈 때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전하고 따뜻한 느낌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난다. 남자와의 잠자리와 남편과의 잠자리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결혼 생활 6년 동안 이 안온함이 깨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곤란이가 태어났을 때도 예상하지 못했다. 막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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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에 울고 죄책감에 더 울고

똥은 7월2일에 시작됐다. 이제 와서 보니 그건 똥이 아니라 설사였지만, 아무튼 그때는 설사인 줄 몰랐다. 3~4일에 한 번씩 똥을 싸는 곤란이가 그날은 하루에 6번이나 똥폭탄을 날리기에 ‘아,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재밌어했다. 모유만 먹는 아기는 하루에 15번 똥을 쌀 수도 있다 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음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F4(한겨레 출산 동지 모임, 지난호 참조)의 출산 뒤 2차 회동이 있는 날이었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아침부터 F4와 함께 먹을 과일을 준비하고 집을 치우느라 곤란이가 계속 똥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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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