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밥이냐? 태평육아

dfd617867e0c64191e7f7c9cd32a63a3.나는 웬만해서는 밥맛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아파도 먹고 아프자는 주의다. 심지어 아기 낳기 1시간전 진통을 하면서도 밥은 먹겠다고 밥상을 받아놓았다. 결국 못 먹고 출산했지만…^^ 그런데 요사이 밖에서 벌어진 밥쇼 때문에 식욕이 감퇴했다. 미수로 끝나서 다행이지, 정말 밥맛 없을 뻔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밥 잘 먹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먹성이 좋다. 젖 물을 때부터 아주 야무졌다. 밥을 먹이면서 어려움과 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거나 잘 먹고, 많이 먹는다. 일단 먹성 유전자를 타고났다. 먹는 건 3대 간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워낙 잘 먹는다. 셋이서 밥을 먹으면 완전 배고픈 삼남매 경쟁하는 거 같다. 같은 밥상에 앉아서 먹성 좋은 엄마, 아빠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잘 먹는 수 밖에…



왜 나는 ‘밥 잘 먹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내가 아직도 밥으로 보이니?’ 밥이 하는 말이다. 가끔 밥이 너무 과소평가되고는 하는데, 밥은 그냥 밥이 아니다. 나는 밥 잘 먹는 거만큼 훌륭한 인생도 없다고 생각한다.



d847c24b015066155a14cff85364b12f.밥은 건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밥심’이라는 말을 제대로 한 건 애 낳고 나서다. 애 낳고 젖 물리고 보니까 밥심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옛날에는 바쁘면 한끼 정도는 건너 뛰는 일들이 많았다. 애 낳기 전에는 밥 때를 놓치면 짜증부리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런다. 한 끼 더 먹었으면 먹었지, 한 끼 건너 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밥 때를 놓치면 짜증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성을 잃는다. 밥을 부실하게 먹으면 금방 휘청거린다. 점점 ‘밥이 보약’이라는 말도 깨닫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건강은 정말 벼락치기가 안 된다. 맨날 허술하게 먹다가 가끔 보양식, 보약, 종합비타민을 같은 거 챙겨먹는다고 갑자기 몸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나중에 시험은 벼락치기 하더라도 밥만큼은 평소 실력을 키워주고 싶다.



밥은 소통이다. 우리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여기에서 밥은 밥이 아니다. 밥을 매개로 한 대화, 소통, 어울림, 교류. 그러니까 관계다. 가족간이든 친구든 마찬가지다. 밥을 같이 먹을수록 관계가 더 좋아지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엔 식구(食口)들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기가 힘들어졌다. 더 이상 식구가 아닌 거다. 이러니 소통이 될 리 없고, 실질적 가족의 붕괴를 가져왔다. 나는 아이랑 아이아빠랑 밥상머리에서 자주 만나는 식구로 살고 싶다.



617da0810cbbaf8ea7e220204720bb04.밥은 생명이다. 쌀 한 톨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고 했다. 쌀 한 톨에는 하늘의 햇빛(달빛, 별빛도 물론.) 땅의 자양분(곤충과 미생물도 물론),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담겨서 밥상에 오르기 온 우주의 에너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땅을 죽이는 농사 말고, 살리는 농사였을 때 그 빛을 발한다.



나도 요즘에서야 쌀 한 톨에 담긴 우주를 느끼기 시작했다. 삼시세끼 밥을 지으면서,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아직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수준이지만, 서서히 쌀 한 톨의 우주를 만나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엉뚱한 우주를 찾아 안드로메다로 가지 말고, 밥상의 우주를 매일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자연히 생명, 환경의 소중함을 알게 될테니 말이다.



efc950cb2250b0f2be0acb6164df1b9c.밥은 생활이다. 하루는 삼시세끼로 이루어져있다.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이라고 하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이라고 한다. 꼬박꼬박 다가오는 밥 때를 잘 챙겨 먹고 있다는 것은, 생활의 균형과 리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균형 잡힌 생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인 것 같지만, 그 당연하고 기본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기본이 무너지면 결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거창한 꿈과 이상보다는 생활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앗! 그렇다고 꿈을 꾸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그야…)



밥은 인생이다. 우리는 직업을 '밥벌이'라고 한다. 가끔 직업을 두고 자아실현이니 더 나은 미래니 세상이니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까놓고 보면 우리는 잘 먹고 살자고 일한다. 그런데 요즘엔 밥벌이가 돈벌이가 되었다. 그러니 돈벌이 때문에 밥맛이 없다. 밥이라는 구체적 행복이 있는데, 돈이라는 추상적 행복을 추구하니 행복하지 못하다.



여담이지만, 친구의 가족 중에 10억 로또를 맞은 사람이 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살짝 부럽기도 하고, 신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30% 이상이 “10억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했다는데, 그런 생각대로라면 행복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부부 사이가 불안불안하고, 직장은 그만 두었고, 친구, 동료들과는 아주 척 진 상태라고 한다. 나는 아이가 허무한 돈벌이 말고 밥벌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이 밥벌이가 밥맛이 그냥 살아나는, 되도록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db9e970d25548bb19ca5dfa160c79725.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하자는 의미로 흔히 이런 말 한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 아니냐고!’ 맞다! 정말 잘 먹으려고 산다. 그런데, 밥그릇을 두고, 밖에서 한창 시끄러웠다. 밥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 건데, 밥상머리 교육이 잘못 됐나 보다. 정말 밥맛이다.



 밖에서 밥 때문에 소란스러운 사이, 딸이 밥 숟가락질을 혼자 하기 시작했다. 제 힘이 닿는 만큼 밥을 떠서 퍼 올리는 모양이 아슬아슬하다. 저도 저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는 게 신통하고 재미있는지, 어른 밥그릇으로 한 공기를 해치운다. 저도 한국사람이라고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고, 각종 토속음식을 좋아하는 촌스런 입맛을 자랑한다. 동급 최강이다. (우리 아빠는 농담으로 애가 비싼 걸 안다고...ㅋㅋ) 물론 밥 먹고 나면 흥부 새끼처럼 밥알투성이! 아직은 흘리는 게 더 많지만, 그래도 스스로 해보겠다는 진지함에 그냥 놔두게 된다.



이렇게 밥맛을 알게 된 우리 아이가 밥 가지고 소란 피운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겠단다. “내가 니 밥이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모두 ‘밥 잘 먹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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