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 감사원, 책임도 없다

완전무결 감사원, 책임도 없다
과잉감사 피해자 속출해도 책임지는 이 없어

김동규 기자 ppankku@gmail.com

“정부는 방위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감사원장들은 취임할 때마다 방산비리를 거론하는데 이 자체가 문제입니다. 금년에 있었던 흑표 전차 파워팩 조달과정에 대한 감사같은 비전문가의 무조건 털기식 접근은 개선해야합니다.”

지난 12월 11일 이태원 캐피탈 호텔에서 열린 방산정책 심포지엄에서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감사원을 강하게 질타했다. 흑표 전차 파워팩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이 조달과정에 책임이 있는 것이 명백한데 한기호 의원은 왜 감사원을 지적했을까. 행사에 참석했던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번 흑표 감사 결과가 방위산업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감사원이 또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기호 의원이 저렇게까지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것처럼 현재 방산업계 일각에는 흑표 파워팩과 관련해 감사원이 오류를 범했을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감도는 게 사실이다. 

방위사업청은 말을 아낀다. 감사원 감사에 관련된 <디펜스21>의 질의서에도 답변을 거부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 <디펜스21>은 흑표 전차 파워팩 감사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의 입장을 묻고 향후 대응방안을 알려 달라고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을 거절당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흑표 관련 감사 결과는 2급 비밀로 간주되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능하다. 비밀이 아닌 부분도 현재 감사원과의 관계, 검찰로 수사가 넘어간 점 등을 고려해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지금까지 방위사업청은 청 입장에 불리한 취재에 대해서도 성실히 답변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흑표 파워팩 감사가 방위사업청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위사업청 관계자에 따르면 감사 이후 노대래 청장을 비롯한 고위직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이번 기회에 감사원과 한 번 붙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참석자들 대부분이 “정권 말기에 정부기관끼리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는 바람에 일단 조용히 대응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또 “흑표 파워팩 감사 때문에 방위사업청 내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며 감사원에 대한 불만도 가득하다”고 전했다. 

흑표사업관리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8개월에 걸친 감사 과정에서 몸이 망가져 감사가 끝난 지금도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회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관계없이 여당 단독으로 독일제 파워팩 수입을 통과시켰지만 예결위는 관련 예산을 보류시켰다. 파워팩 문제는 현재 감사원의 고발로 검찰에 넘어가 대검 중앙수사부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방위사업청은 독일제 파워팩 수입을 강행했다. 감사 결과 때문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방위사업청을 향한 지금 이렇게 무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감사원이 문제를 지적했다가 검찰 수사로 결과가 뒤집힌 경우가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방위사업청은 검찰수사로 감사 결과가 부정당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감사 결과를 뒤집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방위사업청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감사원 감사를 받은 후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A 예비역 대령의 사례부터 보자.

감사원만 “문제있다”는 혐의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

방위사업청 항공기계약팀장으로 근무하던 A 예비역 대령은 2006년 1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감사원은 A 대령이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한국항공)이 달러화로 입찰한 해상초계기 2차 성능개량 사업의 계약을 진행할 때 과도하게 높은 환율을 적용하는 바람에 업체에 최소 400억 원에 이르는 부당이득을 챙겨줘 국고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감사로 인해 A 대령과 부하 B 중령은 정직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A 대령은 보직해임을 당한 뒤 9개월간 무보직으로 방위사업청에 대기하다가 모군으로 복귀했다.  군에 복귀한 뒤에는 배임 혐의로 군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6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군 검찰이 내린 결론은 무혐의. 중징계를 내린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는 전혀 딴판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감사원과 군 검찰 중 한 기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게 분명했다. 군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일까?

2010년 9월에는 감사 결과에 따라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항공에 대해서도 방위사업청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방위사업청이 주장한 부당이득금은 640여억 원이었다. 결과는 1심과 2심 모두 한국항공의 부당이득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군 검찰에 이어 이번에는 법원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군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고려하면 결국 감사원이 잘못된 감사를 벌였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법원과 군 검찰이 문제없다고 본 계약에 대해 감사원만 다른 판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감사원이 내놓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짚어보자.

감사원은 A 대령이 한국항공이 4억 2,750만 달러를 써내 낙찰한 사업비용을 원화로 산정할 때 입찰 당일 환율인 1,055원을 적용하지 않고 1,150원을 기준으로 달러당 100원 정도 더 비싸게 계약하는 바람에 4백억 원이 넘는 국고손실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사업기간 중 평균 환율인 950원을 적용하면 약 853억 원에 이르는 부당이득을 업체에 챙겨준 셈이 된다며 중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따져보면 감사원 지적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애초 입찰을 추진하던 국방부 조달본부가 기준환율을 입찰 당일 환율로 따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A 대령이 입찰 당일 환율을 적용해야 할 근거가 없었다. 사업기간 중 평균환율도 업체와 입찰 조건으로 합의한 바가 없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었다. A 대령이 업체와의 입찰 조건을 무시한 채 임의로 국방부에 유리하게 계약을 바꾸는 것은 국가계약법을 어기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A 대령이 계약할 때 적용한 1,150원 환율은 국방부가 그해 재정경제부 외자부문 환율 지침에 따라 설정해 예산 집행을 승인한 것으로 A 대령이 예산 절감을 위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기준이었다. 결국 A 대령이 진행한 업무절차는 적법했고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러한 정황은 인정하지 않고 ‘계약담당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입찰 당일 환율 대신 비싼 환율을 적용해 업체에 부당이득을 안겨줬다’는 틀에 갇혀 끝까지 중징계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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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CK ⓒ 대한민국 해군

무혐의 처분에도 징계 요구한 감사원

감사원은 A 대령이 업체와 합의한 ‘달러화 상한가 조건과 누적정산 조건’을 설정하지 않은 점도 문제삼았다. 감사원은 입찰을 달러화로 했으니 업체에 한화로 대금을 지급하더라도 업체가 한화를 다시 달러화로 환산해 얼마를 썼다는 것을 보고하면 그것을 누적정산해 최종적으로 달러화로 사업비용을 따져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렇게 하면 예산이 절감되는데 A 대령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고가 낭비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의 문제제기와는 달리 업체와 누적정산 조건을 합의했다는 사실은 없었다. A 대령은 “업체와 누적정산 조건 합의를 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고 국내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달러화로 환산해야 할 이유도 없고 국내업체와 그런 식으로 계약한 사례도 전무하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A 대령의 전임자 대령과 국방부 담당자에게 “업체와 사전에 누적정산 조건을 합의했다”는 진술을 듣고 A 대령이 의도적으로 누적정산을 계약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 대령에 따르면 당시 감사원은 합의서나 합의 당사자인 업체에도 관련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두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했다고 한다. 그러나 군 검찰 수사 결과 두 사람의 감사원 진술은 허위로 밝혀졌다. 

군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입찰 당시 조달본부가 기준환율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A 대령에게는 떨어진 환율만큼 계약 금액을 삭감하고 최종 계약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에 누적정산 합의가 있었다고 진술한 전임 대령은 군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했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던 A 대령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수사 결과를 토대로 감사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여전히 “달러화로 입찰한 건을 계약 맺을 때 원화로 환산하는 바람에 국고손실을 초래했다”며 A 대령에 대한 징계요구를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A 대령은 재심도 구제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징계를 받아야 했다. A 대령은 당시를 회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은 마치 자신들의 감사가 완전무결한 것으로 여기는데 국방 획득사업의 계약조건에 대해 무지한 그들이 제대로 감사를 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A 대령은 징계로 인해 30년 넘게 군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 등록을 할 수 없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그와 함께 징계를 받은 부하 B 중령은 진급길이 막혀버렸다. 죄 없는 두 군인은 하소연할 곳 없는 억울함을 홀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은 법원이 업체의 부당이득이 없다고 판결한 후에도 감사 결과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들처럼 징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감사원의 과잉감사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또 있다. 이 감사 결과로 인해 검찰이 7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낭비해 감사원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검찰이 뒤집은 감사원 고발

“국가를 위해 한 일입니다.”

담당 검사는 어이가 없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1억 1,000만 달러에 이르는 국고손실을 입힌 것으로 드러나 검찰 조사까지 받는 사람이 국가를 위해 그랬다는 말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조사를 받는 모든 사람이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감사 결과를 부인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사가 7개월을 갔다. 담당 검사는 긴 수사를 통해 왜 이들이 국가를 위해 일했다는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사 결과 그들은 1억 1,000만 달러짜리 손실을 입힌 게 아니라 오히려 국고 1억 달러를 절약한 예산절감 공로자임이 드러났다.

2004년 6월 18일 감사원은 T-50 양산 과정에서 한국항공이 록히드 마틴사에 지급해야 할 권리보상금을 정부에 전가해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며 관계자들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이 산정한 국고 손실액은 1억 1,000만 달러. 이 금액은 한국항공이 록히드 마틴사가 맡은 T-50의 주익 생산권을 가져오는 대가로 지급한 8,000만 달러와 그에 따른 세금을 원천 징수하지 않아 발생한 세수 손실 3,000만 달러를 더한 금액이다. 그러나 2005년 1월 13일 발표된 검찰 수사결과는 “한국항공이 국가에 손실을 입힌 것은 없고 외려 최소 1억 달러가 넘는 예산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며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 결정했다. 감사원의 고발 내용과 완전히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감사원과 검찰이 다른 결론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출발은 T-50 개발 계약을 맺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7월, 차기 전투기 사업 때문에 돈가뭄에 시달리던 정부는 T-50 개발재원 마련을 위해 한국항공과 공동개발사 록히드 마틴이 개발비 30%를 부담하면 양산시 이를 환급해줄 것을 제안했다. 참여업체들은 이를 받아들여 한국항공은 개발비의 17%를, 록히드마틴은 13%를 부담하게 됐다. 록히드 마틴은 개발비 선부담 조건으로 국내외 양산물량 20%에 대한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록히드 마틴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던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록히드 마틴은 T-50의 주익 생산권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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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 한국항공우주산업

이후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2002년 T-50 시제 1호기가 나왔다. 그러나 예상보다 비싼 단가에 국방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내물량으로 정해진 94대를 구매하려면 어떻게든 대당 가격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주익 생산권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미국이 아니라 인건비가 싼 한국에서 주익을 생산하면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록히드 마틴은 한국항공과의 협의에서 자신들이 T-50 주익 생산으로 기대한 이득이 1억 1,000만 달러이므로 이 금액을 주면 생산권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항공은 국내획득물량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이므로 국내분 94대에 해당하는 3,100만 달러만 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감사원은 완전무결하다?

록히드 마틴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고 양측은 팽팽한 협상 끝에 8,000만 달러에 합의했다. 한국항공은 이 정도 수준의 금액을 지급하더라도 T-50 주익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고 공군과 국방부도 당위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지켜보던 록히드 마틴 주재관 이모 공군 중령이 부패방지위원회에 투서를 접수하면서 순탄하던 사업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 중령은 당초 한국항공이 제시한 3,100만 달러를 적정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입장에서 한국항공이 8,000만 달러나 지급하고 이를 생산원가에 반영한 데는 숨겨진 내막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부패방지위원회에 제보한 것이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이를 바로 감사원으로 이관했고 감사원은 한국항공 관계자들이 혹시 뇌물이라도 받지 않았나 의심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원은 먼저 록히드 마틴에 지급한 권리포기금은 원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원가 인정을 부정했기 때문에 한국항공이 부담해야 할 돈이라는 것.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2003년 5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한국항공에 정책결정을 하거나 원가규칙을 개정하면 권리포기금으로 지급한 돈을 사업비용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T-50 사업은 국내 최초로 수행하는 국제공동개발사업이자 업체 개발비 분담 사업으로 원가규정상 권리포기 대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감사원은 록히드 마틴이 받아간 8,000만 달러는 기타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법에 따라 세금을 30% 이상 원천 징수해야 하는데 한국항공이 제대로 하지 않아 세수 손실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세금 3,000만 달러도 한국항공이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총 1억 1,000만 달러의 국고손실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항공은 주익 생산권을 넘겨받아 록히드 마틴에 비해 저렴하게 생산해 최소 1억 달러에 달하는 국고를 절약했다. 이는 검찰 수사에서도 인정된 사실이지만 감사원 때문에 다시 1억 1,000만 달러를 토해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밖에도 감사원은 한국항공이 제시한 예산 절감효과가 실제로는 미미하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관계자들을 강하게 압박했으나 검찰 수사 결과가 감사 결과와 완전히 반대로 나오는 바람에 더 이상 한국항공을 붙잡고 늘어질 수 없었다. 감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한 T-50 개발 참여자는 “감사원이 국방 획득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감사를 벌인 탓에 오류투성이 감사 결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당시 상황을 평가했다. 반드시 정부가 개발비 100%를 내야하고 개발된 무기의 모든 기술을 정부가 소유하는 무기개발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 하면 록히드 마틴의 권리포기 대가를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이유를 모를 수밖에 없다. 한 공군 예비역 장성은 “감사원은 만약 한국항공이 주익 생산권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단가를 낮출 수 없어 공군이 획득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간과한 듯하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05년 2월 1일 <주간동아> 이정훈 기자가 쓴 ‘T-50 과잉감사는 누가 감사하나’ 제하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검찰은 한국항공 등이 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해준 것이지, 감사원의 판단이 틀렸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A 대령 사례와 마찬가지로 감사원의 감사는 완전무결하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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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흑표 ⓒ 현대 로템 

피해자 양산해도 감사원은 ‘책임없음’

앞서 살펴본 감사 사례의 공통점은 감사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지만 이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이 감사 결과를 뒤집어도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다. A 대령의 경우 5년에 가까운 시간을 감사에 끌려 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 피로가 심했다. 규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을 뿐인 A 대령은 난데없는 감사에 따른 징계로 군생활 30여 년 이상 한 장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국훈장도 받지 못하고 국가유공자 등록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감사원이 재심을 기각하는 등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어 평생 불명예를 지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T-50 주익 감사에서 피감자들은 정신적 피해는 물론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느라 많은 비용을 써야만 했다. 한 군인은 변호사 비용이 부족해 사관학교 동기생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비용을 대주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손해를 입었다. 감사원이 고발할 당시 한국항공은 아랍에미리트와 멕시코를 상대로 대규모 항공기 수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검찰 수사 때문에 협상 일정이 밀리는 등 피해를 봤다. 만약 수출이 성공했다면 한국 공군은 더 저렴한 가격에 T-50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잘못된 감사의 원인을 제공한 이모 중령을 포상하는 등 피해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T-50 개발에 관여했던 한 예비역 장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동료들은 감사를 받느라 지친 상태에서 감사원이 내부에서 포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분개했다”고 회상했다. 이 예비역은 “감사원도 잘못된 감사 결과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제도를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감사의 최종 결과를 해당 감사관이 책임지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법원이 무죄를 주든 검찰이 무혐의를 주든 감사관은 포상받는 행태는 너무한 것 아닌가. 특히 수사기관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부실 감사는 반드시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감사를 똑바로 할 것이다.” 

A 대령과 T-50 주익 감사에 대해 감사원의 목소리도 듣기 위해 감사원 국방감사단 앞으로 장문의 질의서를 접수했지만 감사원은 답변하지 않았다. 

복지부동 조장하는 과잉감사 개선해야

감사 피해자들은 감사원이 국방분야를 감사할 때 전문성을 갖출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감사원 감사를 수차례 받은 경험이 있는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감사관들이 국방 획득사업의 절차와 기본 개념부터 알아야 하는데 공부가 부족하다”며 “국방 분야를 감사할 때는 전문성을 갖춘 감사관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나마 검찰이 방위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다행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흑표 파워팩 감사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도 감사원의 전문성을 질타했다. 

“감사원이 국방 획득 분야를 감사할만한 전문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흑표 전차 감사도 전문성이 부족해 외부 인력을 동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스로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집단이 어떤 사안에 반드시 비리가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감사에 들어가는 건 큰 문제다.”

한편 감사원은 2011년 5월 국방감사단을 신설해 방산군납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발표했는데 한기호 의원은 여기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감사원이 방산분야를 보는 시각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 있다. 감사원장이 부임할 때마다 취임사에서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한다. 아예 방산분야는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라고 전제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만들어진 부서가 국방감사단이다. 왜 방산분야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방 분야 문제를 다른 정부기관과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무리한 감사가 방위사업청 조직원들의 복지부동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한기호 의원은 “흑표 담당자들은 파워팩 하나로 8개월에 걸친 감사를 받았는데 이런 과잉감사는 담당자들에게 일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아무도 책임지고 업무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위사업청 내부에는 과잉감사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모습을 지켜본 조직원들이 감사가 두려워 업무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실수도 감사원이 문제를 제기하며 징계를 요구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복지부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획득 담당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태에 대해 한 공군 예비역 장성은 이렇게 말했다.

“획득 담당자들이 복지부동으로 일하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 민간 조달 사업에 비해 변수가 많고 과정이 복잡한 국방 획득사업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도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T-50 주익 생산권을 과감히 가져와 1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절감한 건 상을 줘도 모자란 일인데 오히려 감사원의 칼날에 관계자들이 상처를 입었다. 전력화 시기를 맞추기 위해 독일제 파워팩을 채택한 것도 육군 기동 전력을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었는데 감사원이 막는 바람에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감사원은 무엇이 진정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길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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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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