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다녀가셨다
뽀뇨가 보고싶어 하루에도 열 두번 영상통화를 거는 외할머니. 마침 단체여행이 있어 제주로 오셨다가 집에 며칠 묵으셨다. 첫 손자다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신듯 자연스럽게 ‘뽀뇨 천재만들기’ 작업에 들어가신다. 아빠인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한데 동화책을 펼쳐놓으면 모르는 동물이 없고 모르는 과일이 없다. 한번쯤은 손가락을 짚어 알려주긴 하였을 텐데 어떻게 그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지. 할머니는 뽀뇨와의 대화를 110% 복원하여 “천재났다”며 하루에도 몇 번을 그대로 전해주신다. 장모님 이야기만 들으면 분명 뽀뇨의 천재기가 느껴지는데 실제 두 ...
아빠랑 광합성 할래요
밖이 춥다.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섬 어느 곳이나 바람 안부는 곳이 없으니 체감하는 온도는 클 수 밖에. 마침 어제 비까지 내려 낙엽까지 떨어지고 바람이 슬슬 불기시작하면 따뜻한 햇볕 한줌 그리워진다. 어릴적 할아버지들이 동네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햇볕을 쬐던 그 시절, 그 때는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데 오늘은 그 햇볕이 생각나 딸아이와 볕이 잘 드는 거실에 앉았다. '오늘 하루는 잔뜩 거드름을 펴야지'하는 맘으로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하며 둘이 마주 앉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구나. ...
천사아빠는 밉상남편?
요즘 아내가 뽀뇨를 심하게 혼내는 일이 가끔 있다. 아빠는 "돼요, 안돼요"하다가 한방 얻어맞거나 혼내는 척 하지만 엄마는 뽀뇨가 펑펑 울 정도로 리얼 100% 혼을 낸다. 아내가 화를 내며 혼낼 때는 옆에 있는 나조차도 움추르게 될 정도의 포스다. 온순한 성격의 아내에게서 어떻게 저런 '사자후'가 나올까 의아할 정도인데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이름을 부를 때는 '아이유'의 삼단고음이 따로없다. 이런 순간이 오면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가로막는 아빠. 첫째, 아내의 다그침이 자칫 화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둘째, 아이에게...
무엇이 아내를 춤추게 하는가
이 글을 읽는 남편분, 혹시 있다면 아내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거나 찔린 적이 없나? 이미 집에서 살림하는 육아아빠들을 만나보았고 그들과 다른 위치에서 돈을 벌면서도 살림을 챙겨야 했던 직장맘들도 만났다. 그들 중에 살림하는 육아아빠라는 이름표를 달고 방송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인 직장맘에게 집안일을 맡기는 남편도 있었으리라. 아내에 대한 잘못으로 치면 나는 원죄가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도와줄 줄 사람이 없었던 제주로 3년전 이주하게 된 것은 전적인 나의 의지였고 또 1년전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며 아내를 생활전선으로 내...
“되요 안되요?”를 “왜요”로 KO시킨 사연
며칠 전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로 자랑을 했다. “수미씨, 나 뽀뇨를 말로 울릴 수 있어요”, “어떻게요?”, “오늘 하루 종일 어지르고 다니길래 ‘혼 좀 나야되요'를 몇 번 했더니 막 울먹 울먹하는거에요. 어찌나 귀엽던지” 기고만장해진 아빠에게 복수라도 하려는듯 뽀뇨에게 이상징후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뽀뇨 둘이 있는 어느 낮시간, 열심히 청소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용, 어찌되었나 하고 집안을 살피는데 냉장고 옆 틈새에 숨은 뽀뇨가 미숫가루를 쏟아서 먼지 낀 방바닥에 어질러 놓고 있는 것이다. 뒤돌아서서 또 어질고 있는 모습에 ...
아빠의 역사? 모기와의 투쟁사!
모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이름. 지키기 위해서 물지만 또 지키기 위해 막아야 하는 숙명. 아빠에겐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요놈의 모기다. 어떻게 우리의 투쟁이 시작했을까? 원래부터 몸에 해로운 성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한 아내이다보니 그 흔한 킬러도 향도 피워보질 않았다. 방충망 안의 방, 방안의 모기장을 쳤는데도 모기는 웽웽 거리며 모기장에 붙어 피를 빤다. 지켜줄 사람이 생겨서인지 웽웽거리는 것이 생기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전자 모기채를 들고 한 시간이나 잡으니 이건 본능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천천히 어릴적을 복기해보면 ...
니가 고생이다 아빠를 잘못 만나서
지난 봄 그 땡볕에 뽀뇨를 안고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을 잊은 걸까? 무슨 베짱인지 몰라도 이번엔 한라산 등반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뽀뇨를 데리고 윗세오름 정도는 갈수 있겠지? 세 살아이를 데리고 세계여행도 하는데 뭐 대수람' 하고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대절버스는 오고 버스를 탄후 1시간도 안되어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출발지에 도착했다. '과연 잘 오를 수 있을까? 분명 안아달라고 할텐데 그땐 어떻게 할까?' 한라산 기념관을 도는 내내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 함께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
애딸린 아빠, 장점도 있다
벌써 베이비트리에 글을 쓴지 1년이 지났다. 작년 5월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유모차를 끌고 나왔을때 아빠의 모습은 결코 눈부시지 않았다. 일터가 아닌 도심에서 유모차를 끌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오후 4시가 지나서야 붐비는 동네 놀이터는 온통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일을 다니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나 엄마의 존재를 아이에게 묻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는 뽀뇨를 대신하여 “엄마, 돈 벌러 갔어요” 라고 대신 말해준 것이 아마 백 번은 되지 않을까? 애딸린 아빠에 대한 주위의 부정적 시선에 대해서는 이미 허다하게 말을 하였...
욕실테러, 아빠의 꼬리를 잡히다
아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화장실에서만이 아니었다. 힐끗힐끗 훔쳐보는 수준에서 진일보한 상태로 나아갔으니 이름하여 욕실테러사건. 이제 우리 부녀는 함께 목욕을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으니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이름은 목욕이지만 사실 물장난에 가깝다. (1)물을 튼다, (2)욕조에 물을 받고 물위에 놀이개를 띄운다. (3)놀이개를 가지고 논다. 정해진 순서와 공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풍덩풍덩 목욕시간’이지만 세 살 딸내미의 호기심에 아빠는 생각이 많아진다. 우선 힐끗힐끗 훔쳐보던 그 무엇이 놀이개감 사이 저 아래 보일랑 말랑 하고 있다. ...
아빠와 딸, 둘만의 비밀이야기1 - 그녀와 함께 한 화장실
나는 참 순진했다. 아니 우린 그때 못 볼 것까지 보여주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으리라. 뽀뇨가 갓 돌을 넘길 때 함께 외출을 하였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거의 동시에 머리가 아파왔다. ‘뽀뇨를 어디다 맡겨야 하지? 누구 잠시만 봐줄 사람 없나?’ 근처 여성문화센터 화장실을 이용해야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뛰기 시작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경비실, ‘경비아저씨는 절대 안봐준다고 하시겠지?(역시 남자들은 쓸데가 없어)’ 하며 현관 앞에서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전시안내를 맡고 계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너무 반가워서 ‘할머니 화장실 갈 동안만 애기 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