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에서 만난 팔색조 숲 곁에서

새가 번식할 곳이라면 들어가지 않았던 숲이 없었습니다. 대나무 숲, 딱 한 곳을 빼고는 말입니다. 숲이야 기본적으로 울창하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먹이를 물고 분주히 둥지를 드나들어야 하는 일정이 번식인데, 바람도 스며들기 힘겨운 빽빽한 대나무 숲을 번식 장소로 선택할 새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었습니다. 생각이 그러하니 번식의 계절에 대나무 숲으로 눈길을 준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자연이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예단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 곳은 다른 곳보다 천적의 간섭이 거의 차단된 아주 좋은 번식지였습니다. 게다가 대나무 숲에서 팔색조가 번식을 치르고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서조차 나타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호이잇, 호이잇’. 분명 팔색조 소리였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숨마저 잠시 멈춘 채 소리의 중심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것 참팔색조 소리는 겹겹이 늘어선 대나무 사이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 지역에도 팔색조가 살고 있네.” 하는 혼잣말을 흘리며 대나무 숲을 지나 더 깊은 숲으로 발길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 대나무 숲의 끄트머리를 막 지날 때였습니다. , ‘호이잇, 호이잇팔색조 한 개체의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쪽에서 바로 호이잇, 호이잇소리가 이어집니다. 팔색조는 한 개체가 아니라 두 개체, 곧 한 쌍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 그 대나무 숲에 말입니다. 대나무 숲은 모기의 소굴이지만 모기에 뜯겨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니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대나무 숲을 비집고 들어가 봅니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보니 속 모습은 겉모습과 또 달랐으며, 새는 내가 들어서는 경로가 아니라 하늘 쪽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대나무 숲에서 번식을 치를 새는 없으리라는 생각은 그날로 멈춰야 했습니다. 대나무 숲에서 새가, 그것도 팔색조가 번식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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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의 팔색조>

 

팔색조는 숲의 요정이라 불립니다. 학명과 영명 모두에 요정을 뜻하는 nympha‘fairy’가 들어가기에 붙여진 별명일 것입니다. 팔색조는 여덟 가지 색을 지닌 새를 의미합니다. 색깔을 어떻게 세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는 그보다 색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또 적어 보이기도 합니다. 숫자 8은 분명 여덟을 뜻합니다. 하지만 숫자 8여러 가지라는 뜻도 있으니 굳이 팔색조가 여덟 가지 색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팔방미인의 팔방(八方)이 꼭 여덟 가지 방향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팔색조의 영어 속칭은 일곱 빛깔의 새(seven-colored bird)입니다. 몸길이는 약 18cm입니다.

세계의 미조(美鳥) 중 하나로도 꼽히는 팔색조는 우리나라의 여름 철새입니다. 5월 중순 경 우리나라에 와서 여름을 지나며 숲에서 번식을 하고 찬바람 술렁이는 가을이면 떠납니다. 이렇듯 팔색조는 분명 우리나라의 숲에서 여름을 지냅니다. 그러나 마주하기 쉬운 새는 아닙니다. 탐조가의 만나고 싶은 여름 철새 목록 첫줄에 자리 잡을 새이지만 그 만남이 성사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 몇 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우선 개체 수 자체가 적습니다. 전 세계의 서식 개체를 최소 2,500 개체에서 최대 10,000 개체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나마 서식지 파괴로 인하여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적색목록에 올라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한라산 둘레에 위치한 남사면, 거제도 동부면 학동, 전라남도 진도 등의 섬에서 번식하는 희귀한 새로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전라도 내륙, 충청도내륙, 경기도, 심지어 강원도 지역에서도 번식 개체를 확인한 바 있으니 서식 범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되었다 여겨집니다. 그렇더라도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에는 그들의 서식환경 또한 한 몫을 합니다. 팔색조는 인적이 지극히 드물거나 아예 끊어진 깊은 산 속 음습한 지역에서 삽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제대로 열린 한낮에도 컴컴할 정도의 숲이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깊은 산 속을 더듬듯 뒤지다 호이잇, 호이잇팔색조가 내는 울림이 큰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들은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팔색조는 까칠한 새를 대표할 정도로 무척 경계심이 강합니다.

 

팔색조는 이미 대나무 숲 경사면에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일단 철수합니다. 대나무 숲에서 이뤄지는 관찰이니 제대로 전략을 짜야할 상황입니다. 움막을 짓는 것은 기본인데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게다가 대나무 몇 개는 잘라야 하겠으니 소란을 떨지 않고 움막을 지을 길은 없겠습니다. 움막을 짓는 시간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둥지를 막 짓기 시작했을 때 움막을 짓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 차선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팔색조의 포란 기간은 17일 정도입니다. 언제부터 알을 품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알 품는 일정을 간섭하는 것은 피하기로 정합니다. 부화한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까지는 약 18일 정도가 걸립니다. 부화 초기도 간섭은 피하기로 합니다. 먼발치서 위장천 뒤집어쓰고 지켜보다 부화가 일어난 후 5일째 되는 날 미리 정한 곳에 가능한 빨리 움막을 짓기로 합니다.

 

움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짧은 소란도 끝나 이제는 원래 대나무 숲의 고요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행스럽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자 팔색조가 경계심을 풀고 먹이를 문채 둥지 앞 대나무에 내려앉습니다. ‘호이잇, 호이잇’.

 

팔색조가 어린 새를 키우기 위해 잡아오는 먹이의 95% 정도는 지렁이입니다. 거의 지렁이를 먹인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나머지 5% 정도는 애벌레와 거미를 포함하여 번식지의 환경에 따라 다양한 곤충을 잡아옵니다. 성체의 주요 먹이 역시 지렁이입니다. 주식이 지렁이다 보니 둥지는 지렁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습하고 음침한 숲에 자리합니다. 번식 시기 또한 우리나라의 장마철과 겹칩니다. 모두 주요 먹이가 지렁이인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팔색조의 둥지는 낮에도 음침한 숲에 위치하는 데다 장마까지 겹치니 번식 일정에 동행하는 관찰자로서는 최악의 조건일 때가 많습니다. 둥지는 경사진 땅, 굵은 나뭇가지 사이, 바위 위에 나뭇가지를 엮어 짓는데 어느 곳이라도 모양은 윗부분이 둥그런 돔(dome) 형태입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팔색조의 체형 또한 지렁이를 잘 잡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땅을 헤쳐 지렁이를 잡아야 하니 다리가 무척 길고, 꼬리 깃은 땅에 끌리지 않을 만큼 짧습니다. 화려한 몸 색에 비해 꼬리가 너무 짧아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부리 역시 땅을 뒤져 지렁이를 잡는데 맞춤형입니다. 팔색조가 지렁이를 잡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땅바닥에서 통통 튀듯 이동하며 낙엽을 헤치고 지렁이를 잡으며 옆으로 던져놓습니다. 그렇게 금방 예닐곱 마리의 지렁이를 잡은 뒤 땅 위로 던져놓은 지렁이를 한꺼번에 수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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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를 키우는 주요 먹이인 지렁이를 물고 대나무에 앉은 팔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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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이외의 다른 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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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서 지렁이를 잡는 팕색조>

 

 

먹으면 나올 수밖에 없는 배설물입니다. 성체 새들의 배설물은 거의 액체 수준이지만 어린 새의 배설물은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부리로 물어 처리하기 위한 생리학적 배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미 새들은 먹이를 준 뒤 잠시 기다립니다. 먹이를 먹으면 먹이가 장을 자극하여 바로 배설을 유도하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먹이를 받아먹은 어린 새는 엉덩이를 살짝 둥지 밖으로 돌려 배설을 하여 어미 새들의 배설물 처리 수고를 덜어주고 도와줍니다. 먹이를 주고 배설물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부모 새는 고개를 돌리고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이미 먹이는 다 주고 빈 부리인데 먹이를 받아먹지 못한 어린 새는 계속 먹이를 달라고 고개를 내밀며 보채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팔색조뿐만 아니라 다른 새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 새에게서 받아낸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둥지에서 가능한 멀리 가져다 버리는 방법이며, 또 하나는 부모 새가 먹어버리는 방법입니다. 배설물을 먹는 것이 좀 그래 보일 수 있지만 어린 새는 아직 소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먹이에 담긴 영양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은 채로 배설되기 때문에 아직 영양의 가치가 충분한 것이 이유입니다. 팔색조는 부리로 받은 배설물을 멀리 가져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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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을 처리하는 과정>

 

 

어린 새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큽니다. 부화 16일째가 되니 이제는 둥지가 좁아 보일 정도입니다. 그렇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가느다랗고 긴 나뭇가지를 엮어 돔 형태로 지은 팔색조 둥지는 역학적으로 완벽해서 마치 풍선이 부푸는 것처럼 부피만 늘어날 뿐이며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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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서 하루가 다르게 크는 팔색조 어린 새>

 

부화 19일째입니다. 오랜만에 비가 없는 날입니다. 시간도 찰만큼 찼고 날씨도 좋고, 오늘이 둥지를 떠나는 날이겠다 싶은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새가 하나씩 하나씩 둥지를 떠납니다. 둥지에는 모두 4마리의 어린 새가 크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둥지를 떠나고 막내까지 둥지를 떠나는 데에는 6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걸어서 떠난 새도 있었고, 둥지 입구에서 휙 날아 둥지를 떠난 새도 있었습니다. 팔색조 어린 새는 하루 안에 모두 둥지를 떠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부모 새가 골고루 잘 키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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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

 

팔색조의 경우 둥지를 떠난 어린 새는 이틀이나 사흘 쯤 부모 새의 돌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둥지를 떠난 어린 새를 추격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둥지를 떠나면 그것으로 만남은 끝이었는데, 어린 새들이 큰 선물도 안겨줍니다. 둥지를 떠난 어린 새들이 멀리 가지 않고 움막 앞에서 이리저리 통통 튀며 자주 오가는 것입니다. 어린 새가 움막 근처에 있으니 부모 새도 움막 가까이 다가와 어린 새에게 먹이도 건네주며 돌봅니다. 비좁은 둥지를 벗어난 어린 새는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며 날개와 근육에 힘을 붙입니다. 그 날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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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난 어린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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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난 어린 새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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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의 스트레칭>

 

다음 날입니다. 하루 종일 움막을 지키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소리만 들릴 뿐 어린 새의 모습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린 새의 생존확률은 2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확률로 말하면 어린 새 넷 중 하나만 살아남기 쉽습니다. 그 하나라도 제대로 살아남아 내년 여름 대나무 숲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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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의 팔색조 어린 새>

 

대나무 숲에서 팔색조의 번식일정에 동행할 수 있었던 이번 여름은 특별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은 내가 생각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 가장 특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나무 숲에서는 팔색조뿐만 아니라 긴꼬리딱새도 번식을 치르고 있었고, 호반새도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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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에서 번식을 치르고 있는 긴꼬리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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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의 호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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