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문턱에 서있는 가시연꽃 들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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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대상이 있어 항상 곁에 있거나, 곁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거리에 있거나, 멀리 있더라도 나의 수고로 움직여 가면 항상 그 곳에 있기에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행복입니다. 그러니 곁이나 가까이나 멀리라도 틀림없이 있었던 그 대상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없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지구촌에서는 매일 136종의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당연히 예외일 수는 없어서 매일 1종의 생명체가 우리를 영영 떠나는 멸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고 또 알아도 눈앞의 일이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체들은 모두 피하거나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 종의 멸종은 필연적으로 다른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며, 그 순서의 끝이 아닌 어디쯤에 결국 인간도 줄을 서고 있다 믿고 있습니다. 멸종의 문턱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제 간신히 그 고비를 넘긴 식물 중에 가시연꽃이 있습니다.

산림청은 우리의 땅에서 자라는 소중한 식물자원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217종의 식물을 희귀식물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시연꽃은 보전 우선순위 1순위로 정해진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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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꽃은 수련과(Nymphaeaceae)에 속하는 일년생 수생식물로서 잎이 무척 크고 넓으며 가시가 많이 달려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시연꽃의 잎은 완전히 펴졌을 경우 지름이 1m 정도가 되는 것은 보통이고 때로 2m에 이르기도 하며, 줄기는 물론 잎의 윗면과 아랫면 모두에 손을 댈 수도 없게 사나운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심지어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마저 온통 가시로 뒤덮여 있으니 식물전체에서 가시가 없는 곳은 오직 보랏빛의 꽃잎뿐입니다. 꽃이 피는 시기는 수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때문에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으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8말에서 9월초에 주로 피어나며, 꽃 하나하나의 수명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로 피고 지기를 달리하기에 한 달 정도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시연꽃은 잎이 상당히 넓은 편이라 서식지의 수면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꽃대는 이미 펼쳐져 있는 잎을 뚫고 한 뼘 정도 올라와 꽃을 피워야 하기에 잎보다 훨씬 강한 가시로 뒤덮여 있습니다. 꽃은 밝은 보라색으로 5㎝ 정도의 크기이며 아침 일찍 벌어지기 시작하여 오전에 활짝 피어나지만 활짝 피어있어도 수줍은 모습으로 있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대부분의 꽃들은 다시 오므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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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꽃이 피어 있던 자리 아래에 있는 타원형의 씨방이 익어 터지면서 재미있는 모양의 열매가 쏟아집니다. 딸기 모양을 닮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대추 모양을 닮기도 한 작은 밤톨 크기의 열매는 미색 바탕에 붉고 짧은 선분 모양의 점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다시 터지면 마치 개구리의 알처럼 젤리 같은 투명한 우무질이 감싸고 있는 씨앗이 나옵니다. 이 구조는 씨앗이 맺혀진 자리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작은 배가 되어 이틀 정도 수면을 둥둥 떠다니다가 자리 잡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게 하는 것은 물론 씨앗이 물길을 따라 한참을 더 넓게 퍼지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자신을 퍼뜨리기 위한 좋은 장치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연꽃이 사라지고 있는 종이 된 것은 생육조건이 조금 까다롭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간섭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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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남원에서 순창 방향으로 이동을 하다 깜짝 놀라 뒤도 살피지 않고 차를 멈추었습니다. 이 길은 15년 동안이나 지나는 길이고 분명 가시연꽃이 없던 저수지였는데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가시연꽃이 수심이 깊은 가운데를 빼놓고는 저수지 가득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립형의 작은 저수지이기에 물길을 따라 올라가 보아도 다른 곳에서 씨앗이 스스로 옮겨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적어도 15년 동안을 씨앗들이 다 알 수 없는 지금의 환경조건이 올 때까지 기다려 준 것입니다. 가시연꽃의 씨앗은 껍질이 상당히 단단하며 발아까지 휴면기간을 가지는데 그 기간이 50년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또 하나는 누군가가 씨앗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궁금증은 접기로 했습니다. 이 순간 바로 나의 눈앞에 예전에는 없었던 가시연꽃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아무런 실질적인 노력도 없이 그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만 가졌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의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 곳 가시연꽃의 작은 지킴이가 되는 것과 씨앗이 맺히면 싹을 틔워줄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 씨앗을 옮겨주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가슴 설레는 소망과 기대의 길이니 최소한 내년 초여름까지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되는 일을 찾은 것입니다. 환경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중 열 번째가 가시연꽃밭에 쏟아지는 폭우소리입니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주변에서 쉽게 이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그 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또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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